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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1 텃밭 농사 ⑥] 첫 홍고추 수확의 감격

by 낮달2018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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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흘이 지났지만, 고추밭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랑에 붉은 빛이 조금 눈에 더 띄는 수준이다. (7월 20일)
▲ 사흘 후에는 포기마다 달리 홍고추가 제법이다.(7월 23일)

우리 텃밭의 고추가 익기 시작한 것은 7월 16일 무렵이다. 아내는 고추가 익을 때가 됐는데 하면서 홍(紅)고추를 은근히 기다렸다. 가끔 둘러보는 농사 유튜버들의 고추는 벌써나 익었더라고 하면서 아내는 우리가 고추를 심은 게 좀 늦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관련 글 : [2021 텃밭 농사 ⑤] 마침내 고추가 익기 시작했다)

 

내 반응은 원래 좀 뜨악하다. 아, 익을 때가 되면 어련히 익을까. 물론 내게 홍고추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우리 텃밭 농사에 아내와 같은 수준의 애착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20일과 23일, 일주일 새에 두 번이나 더 텃밭에 들렀다. 병충해가 들끓을 거라는 아내의 조바심 탓이었다.

 

텃밭에 오면 아내는 가장 먼저 고추 포기를 일일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병들고 시든 고추를 찾아내어 그걸 한데 모았다. 나날이 검푸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 밭 전체의 모습을 보면서 만족스러워하는 데 그치는 나는 노련한 농사꾼 못잖은 아내의 포스 앞에서는 꼬리를 빼어야 하는 이유다. 

 

▲ 밭에 갈 때마다 아내는 병든 고추를 골라서 따냈다. (7월 23일)

아내는 병든 고추를 한 바가지쯤 따내면서 연신 혀를 차고, 벌레들을 저주했다. 다음 할 일을 뻔하다. 아내는 약을 쳐야겠다고 하고, 나는 군말 없이 분무기를 가져와 방제 준비를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올 고추 농사에 지금껏 방제 횟수는 거의 여섯 번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는 방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해 보지 못했다. 약을 치고 나도 여전히 일정량의 병든 놈이 나오는 상황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방제를 이어가는 것은 그거로 병충해의 확산을 얼마간이라도 막고 있다는 걸 믿으려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마침내 이랑 전체에 붉은빛이 비쳤다. 포기마다 잘 익은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7월 27일)
▲ 아직 덜 익은 고추도 많다. 한쪽 면에는 빨간데, 그 뒷부분은 아직 덜 익은 놈들이다. 

20일에만 해도 익은 놈이 한둘 더 눈에 띄는 수준이었지만, 23일에는 이랑에 붉은빛이 훨씬 진해질 만큼 두드러졌다. 그리고 다시 나흘 뒤, 나는 탄성을 질렀다. 불과 일주일 전후하여 홍고추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었다. 우리는 소쿠리 하나씩을 들고 한 이랑씩 나누어 익은 고추를 땄다.

 

정작 따려고 보면 앞면은 빨갛게 익었지만, 뒤나 옆이 아직 덜 익어 검푸른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건 다음 주 몫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제대로 익은 놈만 땄다. 그러나 따고 보면, 뒷부분이 덜 익은 놈이 간간이 섞여 나왔다. 아내는 그 정도는 ‘후숙(後熟)작용’(과일이나 종자가 수확된 뒤에 익어 가는 생리적 현상)에 맡겨두면 된다고 했다.

 

워낙 텃밭이 작으니 홍고추 따기는 이내 끝났다. 아내는 따낸 홍고추를 밀가루, 식초, 식용 소다를 푼 수돗물에 넣어 여러 차례 씻었다. 그게 잔류 농약을 깨끗이 씻어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집에 와 달아보니 홍고추는 7kg 남짓. 아내는 이만큼씩 한 대여섯 번만 따내어도 건고추 열 근은 되리라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 이렇게 실하게 자란 놈들이 병충해의 습격으로 망가져 버린 모습을 바라보는 농사꾼의 마음은 착잡하고 안타깝다. 

지난해에 우리는 스무 근을 땄다. 물론 올보다 2배쯤 많이 심은 결과였다. 그래서 따로 건고추를 사지 않고도 김장을 하고 가용으로도 썼다. 올해는 작년과 품종도 같지만, 작황은 오히려 더 좋지 않나 싶기도 하니 작년만큼만 나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집에 돌아와 아내는 발을 펴고 거기다 고추를 널었다. 한 며칠간 그늘에서 말려 수분을 빼고, 덜 익은 놈은 마저 익혀서 본격적으로 햇볕에다 말릴 작정이었다. 작년에는 스무 근을 말리느라 식품 건조기 두 대를 돌리고, 아파트 마당에 내놓는 등 아내가 생고생을 했다. 올해도 9월까지 집에선 고추 냄새가 떠나지 않을 듯하다.

 

▲ 소쿠리에 담긴 모습은 조그맣게 보이지만, 모두 아래와 같은 굵고 실한 놈이다. 거의 다 15cm에 이른다.
▲ 갈대 발에다 넌 고추. 역시 조그맣게 보이지만, 위쪽처럼 크고 실한 놈들이다. 일단 그늘에서 말려 수분을 빼고, 후숙을 기다린다. 

아내는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겠다며 건조대를 만들어 달란다. 부지런한 유튜버들은 모기장을 댄 건조대를 만들어 위아래 바람이 통하는 건조대에다 고추를 말린단다. 지난해 아내는 농사짓는 친구 집의 대형 건조기에 고추를 얼마간 말렸는데, 빛깔이 검어졌다면서 올해는 볕에 말리거나 온도를 적당히 해서 집 건조기에 말릴 작정이다. 

 

조만간 재료를 사서 아내가 원하는 건조대를 만들어 줄까 싶다. 시골집에 아예 묵으면서 말리면 제일 좋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아내의 고추 말리기는 시작되었다. 8월 말까지는 꼼짝없이 우리 집은 고추 냄새가 밸 수밖에 없겠다.

 

 

2021. 7.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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