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칸초네 번안곡 ‘마음은 집시’
어제 의성의 벗에게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마음은 집시’라는 옛 노래를 들었다. 70년대 초반, 고등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였는데 뜻밖에 그것은 정훈희의 목소리였다. 나는 칸초네 번안곡인 그 노래를 이용복의 높고 가느다랗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용복의 부른 기억 속의 노래에 비기면 정훈희의 그것은 밋밋하고 단조로웠다. 그러나 무언가 갈증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나는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반복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운전하는 내내 그걸 되풀이해 듣고 있었다. 익숙한 가락인데도 매번 새롭게 들려오는 노랫말도 마음에 감겨왔다.
70년대 칸초네 번안곡 ‘마음은 집시’
정훈희는 매우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가수다. 감미롭다고 할 만한, 가늘지만 높지는 않은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나는 그녀의 히트곡 ‘안개’와 함께 애틋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지금은 잊힌 어떤 친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거듭해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빠졌고, ‘이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 ‘참된 사랑’ 따위의 노랫말에 흠뻑 젖었다.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 아,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은 기억 속의 사랑, 우리는 ‘향기로운 입술’ 따위는 아예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적여 나는 ‘마음은 집시’가 1971년 산레모(Sanremo) 가요제에서 우승한 노래라는 걸 알았다. 니콜라(Nicola di Bari)와 나다(Nada Malanima) 듀엣이 부른 노래인데 인터넷에선 듀엣곡 외에도 나다의 솔로곡도 들을 수 있었다.
글쎄, 그 시절의 원곡을 듣지 못했던 탓인가, 나는 듀엣의 노래도 나다의 노래도 조금 건조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물론 전적으로 노랫말 탓이다. 우리 세대는 가락보다 노랫말을 더 친숙하게 받아들인 세대다. 이탈리아어 노랫말은 사랑과 그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별과 유혹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래하는 이가 ‘얽매려 하지 말아 달라’고 ‘마음은 떠도는 집시’라고 거듭해 말하는.
나치의 인종 학살로 80만 명이 죽은 비극의 역사를 가진 집시(Gypsy)는 북부 인도에서 기원한 유랑 민족이다. 쾌활하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이 민족은 문학 작품 등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랑’과 이어지는 ‘자유’의 이미지만 차용한다. 이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칸초네(canzone)는 ‘노래’ 또는 ‘가요’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아리아 같은 클래식 곡은 제외하고 널리 대중이 애창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대중가요다. 경음악으로 된 노래를 보통 칸초네라고 하며 정확하게는 칸초네 파폴라레라 한다.(<위키백과>)
칸초네 풍의 음악이 세계를 휩쓸고 유행하던 시기가 1960년대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유행한 칸초네로는 ‘라노비아(La Novia)’, ‘축제의 노래(Aria Di Festa)’, ‘비(La Pioggia)’ 등을 들 수 있다. ‘하얀 집(Casa Bianca)’ 같은 노래는 크게 히트해 패티 김이 부른 번안곡을 우리도 즐겨 불렀다.
노랫말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울림
1971년도에 발표되었지만 ‘마음은 집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태 뒤쯤에 김추자의 번안곡(1973)으로 소개된 것 같다. 김추자의 ‘마음은 집시’는 노랫말이 다소 다르다. 방송 매체가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내겐 김추자의 노래가 아니라 이용복의 목소리로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마음은 집시’는 정훈희 외에 펄시스터즈 등도 번안해 불렀다고 하는데 역시 내겐 그 기억도 비어 있다. 70년대라면 텔레비전도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기다. 우리는 고작 TV를 통해 대중문화를 접했는데 요즘처럼 채널도 많지 않았고, 음악 프로그램도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훈희(1952~ )는 어느새 예순을 넘긴 원로가수가 되었다. 그녀의 데뷔곡 ‘안개’는 상기도 내 애창곡 가운데 하나다. 70년대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 규제를 당했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그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이들이었다. 1975년 칠레가요제 입상곡 ‘무인도’와 80년대 이후 발표한 ‘꽃밭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컴퓨터에서 정훈희의 ‘마음은 집시’를 재생시켜 놓고 하염없이 그 노래를 듣고 있다. 은유가 사라진 직설의 시대, 값싼 감상과 탄식의 찌꺼기만 남아 있는 우리 시대의 노래와 비겨가며 노랫말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과 ‘참된 사랑’에 담긴 묵직한 울림을 되새기면서.
2014. 7.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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