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쌀’ 100t 북송을 요구에 정부는 불허, 쌀 지원 전면 중단
한쪽에는 남아도는 쌀을 주체하기 어렵고 다른 한쪽에서는 심각한 식량 부족이 예상된다. 분단 65년, 2010년의 한반도 상황이다. 이남에는 쌀 재고가 적정량(72만t)의 2배인 140만t에 이르렀고, 이북에는 올해 최소 100만t 이상의 식량 부족이 예상(한국농촌경제연구원)된다고 한다.
늘어나는 쌀 재고·쌀값 폭락과 ‘식량 부족’ 사태
쌀 재고가 늘어나면서 쌀값도 지난 1년 사이 15%나 폭락(80kg 13만 원)했다. 쌀 재고는 1인당 쌀 소비가 해마다 2%씩 줄고 있는 데다 연간 40만t씩 제공되던 대북 지원이 이태째 중단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140만t의 재고 관리 비용은 연 4200억 원에 이르고 쌀값 하락을 보전하는 직불금으로 약 7000억 원의 예산을 추가 지출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 6·15 공동선언 실천 남쪽위원회 농민본부와 시민사회단체가 통일부에 ‘통일 쌀’ 100t 북송을 요구한 것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통일부는 북송 당일 이를 불허했고 이후 정부는 ‘쌀은 전략적 물품’이라며 대북 쌀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쌀 재고 문제가 농민들의 불안으로 이어지면서 정부는 쌀을 ‘사료용’으로 공급하겠다는 비상 처방을 내비치는가 하면 가난한 나라에 쌀 가공품(쌀가루)을 제공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북한 문제 전문가인 미국 조지아대학(UGA)의 박한식 교수는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남한에서는 식량을 사료로 쓰자는 건 천벌 받을 일’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북에 재고 쌀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농민단체와 종교계, 정치권, 통일 단체에서 급속히 확산하면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 35개 단체와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5개 야당은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이들은 14일 기자회견에서 “민족에게 평화를, 농민에게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에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평화는 밥을 나누는 것’이라며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자고 제안했다.
일찍이 오래전부터 6·15 공동선언 실천 남쪽위원회 농민본부는 ‘통일 쌀 짓기’라는 사업을 통해 북한을 도와 왔다. ‘통일 쌀’은 모금사업 형식으로 꾸려가는 통일 쌀 짓기로 수확한 쌀의 반을 신청자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북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북한 지원사업의 하나다.
길 잃은 ‘통일 쌀’, 이번엔 길 찾으려나
‘절반은 내 밥상을 지키고 절반은 북녘 동포와 나누는 소중한’ 쌀, 통일 햅쌀 사업은 일반의 호응도 컸다. 우리는 저마다 한두 계좌씩 신청했고 한가위 무렵이면 갓 찧은 햅쌀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가 지은 통일 쌀은 휴전선을 넘지 못했다. 정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쪽위원회 농민본부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뒷문 앞에서 통일부에 ‘통일 쌀’ 북송을 허용하라고 촉구한 것은 지난 1월 초다. 그때 청사 앞에 세워 둔 통일 쌀 포대를 일러 <한겨레>는 ‘집 잃은 통일 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통일 쌀은 그때 집 이전에 ‘길’을 잃었었다. 농민들의 외침도,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정치권의 주장과 촉구도 쇠심줄같이 질긴 정부의 ‘모르쇠’ 대북정책을 뚫지 못했었다. 이 ‘길 잃은 통일 쌀’이 이번에는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길은 북녘으로 가는 길이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익어가’는 길이 될 터이다. 영그는 통일 쌀이 그 길을 열고,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치’울 수 있으리라고 국민운동본부는 말한다. 깃발을 올랐지만, 나머지 그 ‘통일 쌀독’을 채우는 것은 모두 온전히 우리의 몫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 결성 기자회견문]
“민족에게 평화를, 농민에게 희망을”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에 함께 해 주십시오.
지금 한반도에는 또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에서 기계가 돌아가고 다 방면에서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한반도에는 민족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고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2년 동안 남북관계는 냉전 시대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남북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길이 가로막히고 개성공단 사업이 정체되었습니다. 대북 쌀 지원을 비롯한 민간교류가 중단되었습니다. 특히 천안함 침몰 이후 정부는 5.24 조치를 발표하며 대북봉쇄정책을 선포하였고, 이에 북에서도 전면적인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하겠다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한반도 전역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북녘 동포들은 여전히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이북의 식량 부족량은 최소 100만 톤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통일부는 쌀은 전략적 물품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한 채, 대북 쌀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있습니다.
단지 쌀뿐만이 아닙니다. 의료 용품, 농업용품, 어린이 영양식 등 1990년대 중반부터 북녘의 자연재해와 식량난, 각종 질병에 대해 다방면의 지원활동을 해 왔던 대북 민간협력단체들의 인도적 지원마저 실질적으로 완전히 가로막고 있습니다.
남녘 농민들은 쌀값 폭락으로 인한 쌀 대란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북 쌀 지원은 남북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쌀값 안정에도 기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정부의 대북 쌀 지원이 전면 중단되면서 매년 40만 톤씩 지원되던 대북 쌀이 고스란히 국내 재고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쌀값이 25%가량 폭락하는 쌀 대란이 발생하였고, 넘쳐나는 쌀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비로만 연간 4,800억 원의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쌀은 우리 민족의 생명이며, 겨레의 자산입니다. 쌀농사를 계속 짓는 것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족의 주식인 쌀을 지키고 7천만 겨레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통일농업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국민들이 열망하면 정부도 움직일 것입니다. 온 국민이 나서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을 남북 화해 정책으로 전면 전환시켜야 합니다.
거꾸로 가는 한반도, 정부가 할 수 없다면 이제 국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5.24 대북 봉쇄 조치 발표 이후, 각계, 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5대 종단 524명의 종교인들이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지원을 촉구하였습니다. 대통령 통일정책 자문기관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도 남북관계의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전격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대통령에게 건의했습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소속 56개 대북 지원단체들도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 활성화를 촉구하며 나섰습니다.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평화는 밥을 나누는 것입니다.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합시다.
이제 남과 북은 분단과 대결을 끝장내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함께 나가야 합니다. 서로를 겨누는 총을 내리고 생명의 쌀, 평화의 쌀을 나누어야 합니다. 바로 통일 쌀 보내기 운동은 온 국민이 참여하며 민족 화해와 대단결을 실현하는 대중적인 통일운동입니다.
집집마다, 공장마다, 교실마다 통일 쌀독을 채웁시다.
농민들과 함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통일경작지를 일굽시다.
그렇게 수확한 황금빛 통일 쌀을 트럭에 가득 싣고 북녘 동포들에게 달려갑시다.
올가을, 통일 쌀이 영글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익어갈 것입니다.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으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치우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합시다.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 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
** 기자회견문 원문 보기
2010. 7.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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