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밭에 들르다
며칠 전,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장모님께 들렀다. 숨이 막히는 더위에 노인은 지쳐 보였다. 저녁을 얻어먹고 일어서려니 또 고추 등속을 챙겨 주신다. 하우스에서 지은 고추인데, 그 크기에 입이 딱 벌어진다. 크기에 관한 한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놈이다.
품종이 뭐냐고 여쭈었더니 ‘부촌’이라신다. 길이가 20cm에 가깝고 굵기도 만만찮다. 부촌이란 품종이 원래 이렇게 큰가 했더니 당신께서 지으신 것만 유별나다고 하신다. 크고 실한 놈 한 줌을 얻어 돌아오는데 마음이 뿌듯하다. 고추가 저렇듯 훌륭하게 자라는 데 닿은 노인의 발길과 거기 머문 손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노인의 비닐하우스에 천장을 찌를 듯 서 있던 고추가 맺은 열매들이다. 선홍색 빛깔도, 미끈하게 빠진 몸피, 꼬부라진 꼭지도 예사롭지 않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과육의 두께가 마음에 넉넉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녀석들은 마치 풍작을 그리는 임자의 마음을 헤아린 것처럼 보인다. 주인의 발자국 소릴 들으며 자란 ‘생명’이니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무어 그리 어렵겠는가.
반쯤은 버려두었다가 자신을 뉘우치게 한 내 텃밭을 다시 찾은 것은 오늘 해거름 때였다. 볕이 따가웠는데도 우리 고추는 제법 검푸른 빛을 띠면서 그루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우리 내외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쑥스럽게 웃기만 했다.
밭고랑마다 새로 바랭이가 우거졌다. 내외는 볕을 등지고 앉아 반 시간가량 풀을 맸다. 며칠간의 비로 땅은 한결 눅눅해져 풀은 잡아당기면 수월하게 뽑힌다. 이내 온몸에 땀이 흐르지만, 매고 난 고랑은 시원하고 개운하다.
제법 웃자란 가지 대여섯 개와 함께 담은 고추는 얼추 광주리 하나에 넘친다. 수확이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도 잘 자라난 녀석들을 생각하면 마음에 애틋하다. 파종 이래, 날마다 하우스를 드나들며 고추를 가꾸어 온 장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우리 고추의 두어 배는 될 듯한 장모님의 고추를 사랑스럽게 만져 본다.
2008. 7.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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