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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곡학아세’의 세월은 연면하다

by 낮달2018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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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로 점철된 역사

 

사전은 ‘곡학아세(曲學阿世)’를 “바른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하는 고사성어다. 학자가 ‘세상 사람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바른길에서 벗어난 학문’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원래의 뜻과는 달리 여기서 이르는 ‘세상 사람’은 흔히 말하는 ‘장삼이사’가 아니라 상징화된 권력이나 권력자다. 곡학아세는 결국 객관적 진리의 세계를 탐구하는 학자가 ‘세상 사람’이 원하는 주관적인 주석(註釋)을 서슴지 않는 일종의 변절이다. 기원전 중국 역사에서 유래된 이야기지만 곡학아세의 역사는 연면하다.

 

‘곡학아세’의 세월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것은 ‘친일 부역’의 형태로 나타났고 해방 이후에는 이들 곡학아세의 무리가 정권의 두뇌 노릇을 하면서 시민들을 억압했다. 가까이는 1986년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벌였던 초대형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에서 이들 무리는 조연 노릇을 착실히 했다.

▲ ‘불신과 낭비의 기념비적 상징물’로 밝혀진 ‘평화의 댐’ 관련 기사 ⓒ 환경운동연합

1986년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국민적 열망이 타오르던 때다. 군부는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금강산댐을 건설, 무려 200억 톤의 수공(水攻)을 펼쳐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는 허무맹랑한 발표를 하도록 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종일 63빌딩과 서울의 주요 건축물이 물에 잠기는 상황을 반복해 미니어처로 보여주었다. 여기에다 유명 대학 교수들이 출연하여 그럴싸한 설명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국민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코흘리개까지 ‘평화의 댐’ 건설 성금 대열에 줄을 서게 만듦으로써 이 사기극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불신과 낭비의 기념비적 상징물’(외신 보도)로 정리되었다.

 

전문가들의 ‘미필적 고의’와 ‘곡학아세’ 사이

 

정부의 사기극에 조연한 게 어찌 텔레비전에 나왔던 소수의 학자뿐이었을까. 그보다 훨씬 많은, 절대다수의 관련학자는 침묵함으로써 이 사기극을 도왔으니 말이다. 법률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미필적 고의’가 아니었던가.

뜬금없이 ‘곡학아세’를 뇌는 까닭은 어제(5.11.) 아침 <와이티엔(YTN)> 라디오(FM 94.5)에 출연한 전 국립환경과학원장 박석순(이화여대·환경공학) 교수의 인터뷰 소식 때문이다.

 

그는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작심 인터뷰에서 ‘녹조는 3년 연속 심한 가뭄으로 온 것’이고 최근 보도로 드러나고 있는 ‘큰빗이끼벌레’와 관련, ‘수질정화 기능’을 운운하고, ‘강바닥에 뻘이 형성된 것은 수질이 정화됐다는 의미’라는 둥, 주옥(!)같은 궤변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인터뷰 전문 바로 가기]

 

박석순은 4대강 인명록 편찬위원회에 의해 선정된 10명의 ‘S급 4대강 사업 찬동 인사’ 중 한 명이다. 학자로는 그 말고도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와 심명필 4대강 추진본부장, 차윤정 4대강 추진본부 환경 부본부장이 있다. 박석순 교수는 일찍이 ‘선박을 운행하면 산소가 공급돼 물을 깨끗하게 한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 사업이 끝난 지 이태가 지났다. 22조 원을 퍼부어 강을 호수로 만들어 놓고도 ‘녹색성장’을 자화자찬한 이명박도 퇴임해 ‘전직’ 권력이 되었다. 그러나 사업을 시행하면서 정부가 펼쳐 보였던 장밋빛 미래는 국토부가 제작한 동영상이나 포스터에만 있을 뿐 현실은 어둡고 칙칙하다.

 

‘뻘’과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박석순의 궤변

 

해마다 기승을 더해가는 녹조와 물고기의 떼죽음, 페허로 변해 버린 수변공원 따위의 뉴스와 함께 올해는 ‘큰빗이끼벌레’와 ‘뻘’이 새롭게 뉴스의 머리에 올랐다. <YTN> 라디오에서 박석순을 부른 이유가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관한 앵커의 질문에 대한 박석순의 답은 뜻밖이다. 그에 따르면 ‘뻘은 수질이 좋아진 증거’이고, ‘큰빗이끼벌레는 수질을 정화’한단다. 그는 녹조의 원인도 4대강 사업과 무관하고 ‘3년 연속으로 심한 가뭄’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또 강의 본류를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정수처리도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무슨 말이냐면, 뻘이 생겼다는 게 뭐냐면, 물 위의 유기물들, 물 위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바닥에 가라앉는 겁니다. 뻘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물에서 내려온 거 아닙니까? 그래서 수질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수질 개선된 것은 통계적으로 나와 있고 제가 많은 분에게 보라고 통계 처리한 것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질 개선을 하기 위해서 정수, 먹는 물 만들고 폐수처리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뭐냐면 물에 있는 것을 가라앉히는 겁니다. 우리 충주호라든지 소양호 호숫물이 깨끗한 이유가 뭐냐면 황토물이 들어오더라도 거기에 고여 있으면서 위에 있던 것들이 다 가라앉는 거죠. 그래서 뻘이 생겼다는 게 뭐냐면 수질은 좋아졌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뻘이 거기에서 계속 유기물 같은 게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있다가 비가 크게 오면 씻겨 내려가는 거죠. 그게 반복되는 겁니다.

 

(큰빗이끼벌레가) 유속이 빠른데도 산다는 거 아니에요? 이걸 보니까 이게 아마 앞으로 연구를 좀 해야 하는데 우리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느냐, 안 주느냐를 조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원산지가 미국이거든요? 그래서 이것 때문에 제가 미국 문헌을 조사해보니까 미국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수질정화 기능이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 하더라고요.

 

(……) 외국처럼 식수 전용 댐을 만들어서 쓰든가, 일부는 유럽처럼 강가의 우물을 파서 간접 취수라고, 지금 창원 같은 데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강을 자유롭게 쓰는 게 필요하고. 그리고 왜 우리가 강물을 마구 끌어 쓰면 안 되냐면 위에 사고 날 위험이 상당히 있습니다. 9.11테러 이후에 미국 같은 데서는 테러의 가장 위험한 지역이 먹는 물, 상수원이고 정수장이라고 얘길 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4대강 사업 전에 낙동강 같은 데 수질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부산 같은 데도 고도처리라고 해서, 고도처리도 잘못된 겁니다. 물속에 있는 미네랄을 많이 제거하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아요. 그래서 저는 그전부터 우리가 강의 본류에서 물을 끌어서 먹을 게 아니고 식수 전용 댐을 만들어서 아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S급 4대강 사업 찬동 인사 10명 중에서 관련 학자는 모두 네 명이다. ⓒ 4 대강 인명록 편찬위원회

그는 종전에 줄곧 4대강 사업은 ‘수질 개선’을 위한 사업이라고 주장해 온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종전 자신의 주장을 간단히 뒤집는 발언을 아주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는 진짜 ‘전문가’라는 사실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정말 자신의 학문적 관점에서 4대강 사업에 찬성하였던 것일까.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국립환경과학원장을 맡은 것과 정부 사업에 대한 자신의 일방적 찬성과 동조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까. 그는 목하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후유증에 대해 학자로서 어떤 책임을 지려 할 것인가.

 

곡학아세는 학자가 자신의 학자적 양심을 세속적 욕망과 바꾸는 행위다. 그는 단지 한 사람 권력자에게 아첨했지만, 그 아첨의 결과는 절대다수의 사람에게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곡학아세가 사회적 공공성을 부정하고 훼손한다는 얘기다.

 

곡학아세의 본보기, 언론

 

곡학아세는 단지 학자들만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곡학아세의 본보기는 권력의 감시견이 아니라 애완견이 되기를 자처해 버린 언론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망가지기 시작한 공영방송은 빈사 상태고 그 구성원들의 자구 노력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을 포기하고 권력에 줄을 댄 방송과 신문, 그 ‘아세’의 결과는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의 파괴로 이어진다. 그것은 때로 민의를 왜곡하고 권력에 면죄부를 주며, 사회적 의제를 왜곡하는 방식을 통하여 대중을 교묘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청문회와 재선거,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특위 소식 등은 방송과 보수신문에 ‘나오지 않는 뉴스’와 ‘나오는 뉴스’로 크게 나뉘는 게 그 증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참칭하는 언론 자유의 뒤에 숨어 절대다수의 국민과 시청자, 독자를 기만하고 있다.

 

기원전 중국 역사에서 비롯된 곡학아세의 처세는 여전히 주류 사회의 삶의 방식으로 답습되고 있는 듯 보인다. 제2기 내각의 장관 후보로 천거된 이들이 뿜어내는 그 갖가지 위법과 탈법의 경력과 처신을 보라! 300명이 넘는 목숨을 바다에 가라앉히고도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시간으로 돌아가려는 2014년의 한국은 야만인가, 아닌가.

 

 

2014. 7.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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