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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안동 이야기

산에서 산을 보다, 천등산(天燈山)

by 낮달2018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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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봉정사’와 ‘개목사를 품은 안동 천등산

▲ 관음굴에서 내려다본 풍경 . 왼쪽 아래 봉정사 매표소와 주차장이 있다.

천등산(天燈山) 하면 ‘울고 넘는 박달재’의 천둥산(충북 제천)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천등산은 안동시 서후면에 있다. ‘봉정사(鳳停寺)’를 품은 산이라 하면 훨씬 알아듣기 쉬울 수도 있겠다. 2000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가 이 천년 고찰을 찾은 뒤, 이 고즈넉한 산사는 일약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전국에 알려졌다.

 

굳이 먼 나라 여왕의 방문이 아니었더라도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이 산사는 만만하게 볼 절집은 아니다. 의성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에 불과한 이 조그마한 산사엔 국보 하나(제15호 극락전)와 보물 두 점(제55호 대웅전, 제449호 고금당)이 전한다. 특히 극락전은 그 건축 시기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 봉정사 대웅전. 보물 제55호. . 국보인 극락전보다 훨씬 아름다운 건물이다 .
▲ 봉정사 만세루(萬歲樓). 현판과 목어가 보인다 .
▲ 영산암의 송암당(松岩堂)의 마루 . 단풍이 고울 적의 송암당 풍경은 봉정사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의 하나다 .
▲ 절집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숲길 .

봉정사 뒤 동쪽 산기슭에는 의상이 창건했다는 개목사(開目寺)가 있다. 처음엔 천등사(天燈寺)였으나 조선 초기 안동부사였던 맹사성이 중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전설에 옛날 안동지방에는 소경이 많았는데 여기에 절을 세운 뒤 눈병이 없어져 절 이름을 개목사로 고쳤다 한다. 원통전은 1457년(세조 3)에 지은 건물로 보물 제242호다.

▲ 개목사 전경. 돌담이 특이하지만 정겹다.
▲ 개목사 원통전. 온돌방을 들이고 툇마루를 둔 특이한 양식이다.

천등산은 안동시의 진산(鎭山)인 학가산(鶴駕山: 870m)과 마주 보고 있으며 안동시에서 서북쪽으로 16㎞ 떨어져 있다.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봉정사 창건주 능인(能仁)이 이 산의 바위굴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그의 도력에 감복한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천등(天燈)]을 내려 굴 안을 밝혀주었다 하여 천등산이 되었다.

 

천등산은 높이가 574m이니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다. 그러나 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래서 안동 사람들에게 이 산은 가장 무난한 산행 코스의 하나가 되었다. 거리에 따라 몇 가지 경로가 있지만, 가장 먼 코스로 돌아도 두 시간쯤이면 넉넉하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모든 산이 다 그렇겠지만, 천등산 산행은 햇빛을 피해 그늘로만 다닐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등성이까지 오르는 다소 가파른 산길은 물론, 산등성이를 따라 정상까지 낮고 높은 오르막 내리막도 우거진 잡목 덕분에 따가운 햇볕을 피해 갈 수 있다.

 

안동에는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산으로 갈라산이 있지만, 나는 천등산이 더 좋다. 갈라산은 시(市)의 손길이 두루 미처 등산로도 정비되어 있고, 곳곳에 쉼터도 있지만, 천등산의 등산로는 아직도 사람들의 발자취로 생긴 그대로의 길이고 쉼터도 저절로 생긴 게 고작이다.

▲ 천등산의 등산로. 대체로 사람의 자취에 따라 저절로 생긴 길이다.

산이 좋아진 건 근년에 와서다. 올해 학교 뒤 영남산을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나는 나날이 달라지는 신록과 그 현란한 물결에 눈물겨워졌다. 뒷덜미와 어깨에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산길을 돌아갈 때 문득 벅차게 달려드는 행복감 때문에 격하게 목이 메어오기도 했다.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론이나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본능과 감성의 영역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대상과 세계의 이해란 모름지기 그것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자연을 ‘타자’, 나[자아]와 대립하는 세계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그 가운데 존재하니 굳이 그런 경계나 구분이 필요하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그것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긴 전통적 자연관은 이 같은 생각에서 말미암은 것이리라.

 

‘산이 좋다’고 느낀 건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자연을 타자로 인식한 결과일 듯하다. 그것은 산이 일상의 질서와 조화에서 벗어나 내 앞에 비로소 그 알몸을 드러낸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비로소 나와 마주한 세계의 일부로 당당히 서 있는 산을 오래, 그리고 말없이 바라보았다.

 

산이 스스로 견딘 숱한 시간의 지층 속에 감추고 있는, 침묵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산이 나무와 숲을 통해 전하는 정직한 계절의 순환을 찬탄으로 바라볼 뿐이고 진부하지만, 한 포기 풀꽃이 말하는 생명의 신비와 진실을 두려움과 겸허로 받아들일 뿐이다.

 

어제, 아내와 함께 가장 먼 길로 천등산을 한 바퀴 돌았다. 이태만이다. 숨이 가빠 왔지만 우거진 숲을 지나는 바람은 청량했고, 어디선가 산새가 울어댔다. 그게 그거인 풍경 같지만, 산등성이와 비탈 어느 한 군데의 표정도 같은 곳은 없다. 거기 고이거나 불어오는 대기와 바람도 모두 다르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한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산에서 새로이 산을 본 셈인가.

▲ 하산길에 내려다본 봉정사. 이 절은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관음굴서 내려다본 봉정사 . 오른쪽 떨어진 건물이 영산암이다 .
▲ 관음굴 . 치성의 흔적이 역력하다 .
▲ 올해는 숲마다 담쟁이덩굴이 무성하다 . 숲은 예와 같은데 그걸 바라보는 내가 달라졌다고 하는 게 옳겠다 .
▲ 명옥대(鳴玉臺). 매표소 뒤 계곡에 있다 . 퇴계가 봉정사에 묵을 때 자주 쉬었다는 정자다.

 

2007. 6.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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