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지 않은 봄의 벚꽃 행렬
오늘을 투표일이 아니라 흔치 않은 임시 공휴일로만 이해한 이들이 훨씬 많았나 보다. 11시쯤 가족들과 함께 인근 투표소로 가 투표를 했다. 노인대학 로비에 마련된 투표소는 한산했다. 선관위에서 예측하듯 투표율은 시원찮은 모양이다.
허리가 잔뜩 굽은 안노인 한 분이 힘겹게 투표소를 나서는 걸 보고, 딸애가 그랬다.
“할매, 집에서 쉬시지 않고선…….”
아내가 초를 쳤다.
“말조심해라. 그러다가 경친 일도 있지 않아?”
지난 2004년 총선 때의 촌극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노인이 던진 표의 무게가 내 그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노인의 위태한 행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오늘 아침 <경향닷컴>의 머리기사는 “총선 ‘계급 배반’의 오류 범하지 맙시다”였다. 노인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투표’를 했을까.
계급 배반 투표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투표를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해결을 제1정책으로 하는 진보당이 아닌 시장원리에 의한 해결을 해법으로 내놓은 보수당을 선택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계급 배반은 노동자·농민·서민층에서 흔히 발견된다. 실제 지난달 16일 한 여론조사 기관이 중도 보수 후보와 보수 후보가 맞붙은 서울의 한 접전지역을 조사한 결과 보수 후보에 대한 지지는 저소득층(42.8%), 저학력층(46.9%)에서 평균(32.0%)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서울 강남 지역은 계급 투표에 충실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 대선에서 부동산세 인하를 주장한 이명박 후보는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79.8%, 타워팰리스가 있는 도곡2동 제4투표소에서는 86.4%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 <경향닷컴>에서
날은 흐렸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반소매 셔츠에 잠바를 걸치고 나오다 도로 들어가 긴소매 셔츠로 바꿔 입고 나오게 하는 날씨였다. 비 소식이 있을 거라는 일기예보에도 우리는 낙동 강변의 ‘벚꽃축제’장에 들렀다.
안동에는 유난히 벚나무가 많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강변의 육사로(陸史路)에서 석주로(石洲路)를 거쳐 안동댐에 이르는 길의 가로수는 죄다 제주 원산 왕벚나무다. 안동시에 따르면 안동지역에 심어진 왕벚나무는 모두 8천3백 그루다.
벚나무를 굳이 배일(排日)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야 없을 터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이 반일의 고장이 온 동네를 벚꽃으로 뒤덮은 까닭은 여전히 궁금하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임청각 뒷산에도 영호루(映湖樓) 주변에도 하얗게 피어난 벚꽃의 물결이다.
축제장 주변의 옛길에 분홍 기가 도는 은빛 벚꽃의 물결이 눈부셨다. 제주 원산 왕벚나무는 산벚보다 꽃이 크고 흰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거기 머문 시간은 삼십 분 남짓, 간간이 듣는 빗방울을 피해 우리는 그 부신 벚꽃 거리를 떠났다.
오후 6시 30분 현재. 방송사의 출구조사는 여당의 압승을 예고하고 있다. 역대 최저라는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에 나간 사람들의 선택은 아무래도 ‘계급 배반’에 가까웠던 듯하다. 이미 그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현 정부의 정체성은 아무래도 다수 서민의 그것과는 멀다는 사실을 이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까.
시원찮은 사진이긴 하지만, 낙동강 강변에 당도한 봄 아닌 봄, 왕벚나무 꽃물결을 따라가며 잠시 머리를 비우시길. 때로 주춤거리기는 하지만 진보를 향해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는 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을 다시 확인해 보시면서.
2008. 4. 9. 낮달
예상대로 제18대 총선거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투표율은 17대 총선에 비겨 14.5% 포인트가 하락한 46.1%였고 한나라당이 37.5% 득표하여 41석이 늘어난 153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통합민주당은 25.2% 득표에 그쳐 무려 55석을 잃고 81석을 간신히 지켰다.
4월 초 벚꽃 개화기에 총선이 치러진다. 올해는 벚꽃 개화가 일러서 예년 같지는 않을 듯하다. 구미에 옮겨 와서도 4월의 벚꽃 구경은 다르지 않다. 구미의 벚꽃은 안동에 비기면 더 풍성하다. [관련 글 : 금오산 벚꽃 길과 금오천 인공 물길]
202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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