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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민들, 삼백 번째 ‘촛불’을 밝혔다

by 낮달2018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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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민의 사드배치반대 촛불 300회

▲ 김천역 광장에서 열린 300회 촛불집회의 무대 앞에 촛불로 ‘사드 OUT 300’이란 글자를 새겨놓았다.
▲ 김천시민들은 지난해 8월 20일부터 오늘까지 무려 11개월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6월 16일 저녁 8시부터 김천역 광장에서 300회째 ‘사드 배치 결사반대 김천 촛불집회’가 열렸다. 김천역에 내렸을 때는 아직 8시 전,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역 광장 한쪽에 앉아서 광장의 시민들을 오래 지켜보았다.

 

300번째 촛불을 밝힌 씩씩한 시민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김천의 촛불을 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낙관적으로 전망되었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선을 앞두고 전임 정부에서 알박기 형식으로 사드를 기습적으로 배치한 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나쁜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려 열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집회, 지칠 만도 하건만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여유가 넘쳤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나지막한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가 거기 앉아서 안부를 나누었고, 파란색 풍선을 흔들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고 씩씩하게 구호를 외쳐댔다. 시민들의 낙천적 모습에 나는 이내 편안해졌다.

▲ 300회의 집회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데는 모여든 시민들의 봉사가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 역 광장 한쪽에 설치된  300회 특별 포토존에서 어린이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300일이나 달려왔으면서도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보다는 오히려 낙관적 활기를 보여주었다.

김천은 경북에서 가장 먼저 시로 승격(1949)한 서부의 오래된 도시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농산물 집산지로 성장하였지만 1970년대 인근 구미가 공업도시로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김천은 정체 일로를 걸었다. 2017년 현재, 구미시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인구(14만)로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있을는지.

 

김천은 경북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다. 시장(박보생)도 국회의원(이철우)은 물론 대부분의 선출직은 자유한국당 일색이고 이렇다 할 시민운동도 자라지 못했다. 마땅한 발전의 전기를 찾지 못한 채 정체가 계속되다가 참여정부 때 지정된 혁신도시가 김천의 성장을 이끌기 시작했다.

▲ 혁신도시는 김천 발전을 기약하는 듯했으나 소성리와 직선거리로 8km 떨어져 있다. ⓒ 경북매일신문 사진

김천시 농소면과 남면 일부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어 김천시 율곡동이 되었고, 여기에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기관 12곳이 이전하면서 줄고 있던 인구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혁신도시는 김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 지역 발전을 이끌어 갈 듯했다.

 

발전 동력 ‘혁신도시’에 찾아온 사드(THAAD)

 

그러나 호사다마, 혁신도시 율곡동에서 직선거리로 8.3㎞ 떨어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롯데 골프장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결정되면서 지역 민심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부가 미군의 사드 배치 터를 애초의 성주군 성산포대 대신 성주군 초전면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으로 바꾸기로 한 결정이 알려진 게 지난해 8월 19일이었다.

▲ 김천에서 첫 번째 촛불이 밝혀진 것은 지난해 8월 20일, 부곡동 강변공원 야외공연장에서였다.

이튿날인 8월 20일, 2014년에 결성된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민단협)’의 주도로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부곡동 강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이 첫 집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황급히 꾸린 집회였는데도 열기는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관련 글 : 사드(THAAD), ‘폭탄 돌리기’는 그만!]

 

그러나 김천 사람들은 끈질겼다. 8월 31일부터 김천역 광장으로 자리를 옮긴 촛불은 꺼지지 않고 무려 300일을 달려왔다. 그동안 촛불이 밝혀지지 않은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사람들은 김천역 광장을 ‘평화광장’이라 명명하고 지난 11개월 가까이 ‘사드 반대’를 외치고 또 외쳐 온 것이다.

 

300회 집회는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환경 영향 평가 등 법적 절차를 거치겠다는 방침에 따라 기습적으로 치러지던 사드 배치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가 장기전을 상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민대책위 대표들은 지치지 말고 강고한 연대를 통하여 투쟁의 열기를 이어가자고 역설했다.

▲ 김천대책위의 보물 제1호라는 ‘율동 천사’와 ‘율동 맘’들이 무대 위아래에서 신명 나게 율동을 펼치고 있다.
▲ 사드 배치를 반대해 온 이재명 성남시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김천시민들에게 응원의 뜻을 전해왔다.
▲ 혁신도시 부근인 농소면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역사 벽에 기대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젊은 어머니들과 아이들로 구성된 ‘율동 맘’과 ‘율동 천사’들의 춤으로 시작된 집회는 지역의 예술고 학생들의 연주, 이재명 성남시장의 영상 메시지, 권영국 민변 변호사의 연대사, ‘그네는 아니다’의 작사, 작곡자 연영석 씨의 노래 등으로 흥겹게 이어졌다.

 

시민들, 촛불을 이어오며 ‘연대’를 배우고 실천하다

 

김천대책위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는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원불교와 함께 연대 집회를 벌인다. 김천보다 39일이나 앞서는 성주 집회에 연대하면서 김천시민들은 이웃 성주 사람들과 막역한 동지가 되었다. 시민들은 300일이 넘게 지펴온 촛불을 통해서 연대를 배우고 실천해 온 셈이다.

 

말이 300일이지 단일한 집회를, 그렇게 장기간 끌고 온 힘은 무엇일까. 끝이 내다보이지 않는 투쟁이 일상화되면 긴장도 떨어지고 사람들은 쉽게 지치게 된다. 바깥 사람들에게야 촛불을 켜고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 그건 삶의 리듬을 완전히 깨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천촛불 소식지>에 실린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글’에 드러난 것은 그러한 고통의 절절한 고백이다.

 

“제발 사드가 물러가게 해 주세요.

촛불집회 나가는 대신 집에서 편안히 티비도 보고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도 많이 갖고 싶습니다.”

- 율곡초등학교 1학년 김민아

 

“제발 저녁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이 든 어른들은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하고 피곤해하면서도 집회로 나갑니다.

그리고 젊은 아기 엄마들이 애들을 데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정말로 안쓰럽습니다.”

- 농소면의 한 할머니

 

▲ 집회에서 나눠준 평화 나비

‘300일 김천 촛불’은 초전 소성리와 가장 가까운 혁신도시 율곡동과 인근 농소면, 남면의 주민들, 그리고 시내 거주 시민들이 지켜왔다. 지난 대선에서 율곡동 주민들과 김천시민들은 투표로 자신들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율곡동은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가장 높았고(50.2%) 김천시도 경북에서 두 번째(24.3%)였다. 문재인 득표율이 높았던 지역은 대부분 청장년 밀집 지역이었는데 비기면 김천의 그것은 사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관련 글 : 대구·경북 대선,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집회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혁신도시에 들어온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에서 성금과 물품을 보내왔고, 익명의 촛불 시민이 거액의 성금을 냈다고 했다. 300일이 넘게 촛불을 밝혀오면서도 지치지 않는 힘은 이들 시민의 도저한 낙관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일 날이 저물면 다시 이 광장에 모일 것이다. 이들의 낙관과 여유가 시민들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김천역 광장을 떠났다.

 

 

2017. 6.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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