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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 행동과 참여

by 낮달2018 2019.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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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가 ‘현대 민권운동의 어머니’라고 기린 로자 파크스

▲ 미국 의회가 '현대 민권운동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바친 민권운동가 로자 파크스(1913~2005)

두 개의 우연, 안철수와 로자 파크스

 

구글의 기념일 로고를 검색하다가 로자 파크스를 만났다. 2010121일자 구글 로고는 그녀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55주년 기념로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자 뉴스에서 로자 파크스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방문해 전달한 지지 서한에서 안철수 교수는 그녀를 인용했던 것이다.

▲ 구글의 로자 파크스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55주년 기념 로고(2010. 12. 1)

안철수 교수는 예의 서한에서 56년 전, 미국에서 흑백 분리의 악법에 따를 것을 거부한 한 흑인여성의 작은 행동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낸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 놓았듯 선거는 그런 참여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는 미국 의회가 현대 민권운동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바친 민권운동가다. 우연은 반복되는가. 공교롭게도 오늘(10. 24)은 그녀가 6년 전 세상을 떠난 날이다.

 

1955121, 목요일이었습니다.

미국 앨라배마주의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퇴근길 버스에 올랐습니다. 잠시 후 비좁은 버스에 백인 승객이 오르자 버스 기사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녀는 이를 거부했고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 큰 전환점이 됐습다.

 

흑인에게 법적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1870년이었지만, 흑인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타는 데는 그로부터 85년이 더 필요했고, 그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바로 작은 행동이었습니다.

 

후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는 여느 날과 똑같은 날이었지만 수많은 대중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 놓았다.”

선거는 바로 이런 참여의 상징입니다.

 

          - 안철수 교수의 서한 중에서

▲ 로자 파크스가 승차 거부했던 몽고메리 버스. 포드박물관 소장.

안 교수의 서한에서 드러나듯 1955121, 로자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퇴근길에 버스에 오른다. 그녀는 유색 칸으로 표시된 좌석 중 가장 첫 줄의 빈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정거장을 거치는 동안 앞에 있는 백인 전용칸의 좌석들이 점차 차게 되었고 엠파이어 극장 앞의 세 번째 정거장에서 몇 명의 백인들이 승차하였다.

 

382일간의 버스 보이콧 운동, 그리고 승리

 

버스 운전사는 두세 명의 백인 승객들이 서 있게 되자 유색 칸의 표시를 로자가 앉은 자리 뒤로 밀어내고(이런 좌석 칸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표시를 옮길 수 있었다.) 중간에 앉은 네 명의 흑인들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하였다. 세 명의 흑인들은 일어났으나 로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사가 왜 일어나지 않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인종차별법인 짐크로우법에 따라 흑인은 일상생활에서조차 백인과 분리된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버스와 기차 따위의 대중 교통수단도 마찬가지였다. 버스 이용 인구의 약 75%가 흑인들이었는데도 말이다. 학교 버스가 아예 제공되지 않아 흑인 어린이들은 걸어 다녀야만 했다. 끔찍한 얘기다.

 

나는 매일같이 그 버스들이 지나가는 것을 봤어요……. 그러나 내게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그런 인생이었고 이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했지요. 그 버스는 내게 세상이 검은 세상과 하얀 세상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는 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 로자가 체포된 것은 흑백 분리들 규정한 짐 크로우법에 의해서였다.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는 바로 경찰에 체포된다. 이 사건은 382일 동안 계속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민권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분노한 흑인들은 카풀로 출근하거나 흑인이 운영하는 택시를 탔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서 출근했는데 심지어는 30km 이상의 거리를 걸어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당한 인종차별에 저항한 흑인들의 저항, 버스 보이콧은 1년이 넘게 지속하였다.

 

행동과 참여가 바꾼 세상과 역사

▲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에 동참하였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여기 동참하게 되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은 결국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과 권익을 개선하고자 하는 미국 민권운동으로 나아간다.

 

백인들의 갖은 탄압을 견뎌낸 흑인들은 19561213, ‘버스의 인종 분리가 불법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1220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운동에서는 승리했지만 정작 이 운동의 불씨가 된 로자는 다음 해 이 도시를 떠나야 했다. 몽고메리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리했지만 그것은 단지 조그만 시작에 불과했다. 제도적 인종차별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민권법(1964)과 투표권법(1965)이 제정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던 까닭이다.

 

▲ 미 의회가 로자에게 증정한 골드메달

로자는 1957년부터는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각지를 돌며 연설하였다. 1965년에 아프리카계인 미국 하원의원인 존 콘이어가 그녀를 비서로 고용하여 디트로이트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녀는 1988년에 은퇴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였다.

 

199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로사 파크스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했고 미 의회 역시 그에게 의회의 골드메달을 증정했다. 로자는 1997년 자서전인 <로자 파크스 : 나의 이야기>를 출간하였으며 1995년에는 회고록인 <조용한 힘>을 펴냈다.

 

그녀는 2005년 오늘,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5년이라면 아주 오래된 일처럼 생각되지만, 고작 56년 전의 이야기다. 새삼 반세기 전, 끔찍한 제도적·법적 모순을 깨뜨린 한 평범한 여성의 행동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따라 세상과 역사를 바꾼 사람들의 참여를 생각하면서 1026일 선거의 귀추를 기다려 본다.

 

 

2011. 10.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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