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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어느 평교사의 단식

by 낮달2018 202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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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내 선생님의 단식

▲ 단식 중 지회 사무실에서. 중앙에 ‘0교시, 우열 반대’ 글귀를 든 이가 선생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예순, 선배 평교사 한 분이 닷새간의 단식을 벌였다. 소내 김두년 선생님. 예천 출신으로 오래 예천지역에서 교육·문예 운동을 벌여 오신 분이다. 복직을 예천으로 하면서 나도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소내’는 선생의 필명이다. 고향에 흐르는 내[천(川)]인 ‘솔내’에서 따온 이름이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국어 교사로서 시집을 내기도 했고, 오직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천직으로 알고 교단을 지켜온 분이다.

 

선생이 단식 중이라는 걸 안 것은 지난 24일 아침이었다. 그는 지금 전교조 안에서도 어떠한 직책도 맡고 있지 않은 평조합원이다. 그는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이른바 방과 후 교육을 하루에 두 시간씩이나 편성하는 등의 학교 운영을 비롯,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뜻의 단식을 벌인 것이다.

 

선생의 단식은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의 교사로서 교육을 왜곡과 파행으로 몰아넣는 잘못된 교육 정책에 대한 거부다. 그리고 그것은 더는 그 정책의 무기력한 집행자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으로 보아야 한다. 그의 단식은 학교와 지역에 알려지는 데 그쳤다. 언론이 그것을 받아쓸 만큼 그는 유명 인사도 아니고, 그 며칠 간의 단식이 당장 어떤 변화를 가져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결단과 실천의 의미가 덜해지지 않는다. 계속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바라보며 혀나 차면서 그게 현실인 것 어쩌겠냐며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자신을 비롯한 많은 후배 교사들에게 그것은 통렬한 각성의 죽비로 다가온다.

 

수업을 병행하며 하는 단식이라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무사히 단식을 마치셨다. 일요일에 전화를 넣었더니, 복식 중이시라며 겸연쩍어하며 웃으셨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원로교사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북지부 누리집에 오른 선생의 사진과 선생이 단식에 들어가면서 쓴 글을 첨부한다. 17일간의 단식 끝에 병원으로 후송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진화 위원장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다. 언젠가 선생님을 뵈러 예천을 들러야 할 텐데…….

▲ 5월 24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베풀어진 전국교사대회

정진화 위원장님께

저는 오늘 지식 경쟁만 강요하여 인간성과 창의력을 갉아먹는 이명박 정부의 70년대식 교육 정책을 35년 교직 생활을 걸고 온몸으로 항의합니다. 또한 저는 이른바 4·15 교육 자율화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 무기한 단식 농성 중 건강 악화로 쓰러진 위원장님을 위로하며 지지합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의 경쟁 몰입,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이 아이들의 삶과 인권을 나날이 짓뭉개고 있음을 학교 현장에서 곧바로 보며 겪고 있는 교사로서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는 제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위원장님이 10만 조합원을 대표하여 4.15 교육 자율화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비인간적 경쟁교육을 강화하려는 이명박 정부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다가 쓰러졌는데도, 정부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무엇 때문에 왜 그러는지 알아보려 하기는커녕, 형식적인 위로 방문조차 없었다는 데 대하여 깊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정부가 섬겨야 할 국민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4.15 교육 자율화 조치 이후,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 시골 중학교에서도 이른바 자율화라는 허울 아래 다수 교사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0교시가 버젓이 시행되고 있음을 보고 이 나라 공교육의 존재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0교시는 어린 중학생들을 고3처럼 내몰아 잠자고 밥 먹을 시간도 빼앗으며 그들의 삶과 인권을 짓뭉개고 있습니다.

저는 35년 교사의 삶을 걸고, 학생 간 학교 간 성적 공개를 온몸으로 반대합니다.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우열반 편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실행된다면 경쟁의 불꽃 도가니에 빠지게 될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닐 것입니다. 지식 경쟁만 앞세우고 창의력과 인성과 삶을 부정하는 학교는 더 이상 있을 값어치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교사이기 앞서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온몸으로 영어몰입, 조기 영어교육을 반대합니다. 영어 광풍은 결국은 겨레의 얼을 빼앗고 민족 문화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3학년부터 가르치던 영어가 1학년으로 내려가자, 유치원생들까지 영어에 내몰려 난리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 주권 있는 나라가 모국어를 배우기도 전의 유아에게 외국어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잘못된 쇠고기 협상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고, 대운하 강행은 생명의 강을 죽게 만들 것임이 뻔하게 보이는 지금, 제 잘못은 숨기고 국민 탓만 하는 이명박 정부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을 닦달할 것을 강요하며 일선 교사들의 양심을 짓밟고 있습니다. 이는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반민주행위이며 규탄 받아야 하는 일이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가르치는 교사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낯을 못 들게 하는 일입니다.

2008. 5. 20.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교사 김두년

 

2008. 5.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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