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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 여자의 ‘몸속 강물’을 노래하다

by 낮달2018 2019.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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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 ‘물을 만드는 여자’

 

여성주의 시를 검색하다가 문정희의 시 ‘물을 만드는 여자’를 발견했다. 읽고 나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이건 정말 압권이야. 나는 교내 메신저로 11명의 동료 국어 교사들에게 이 시를 전송했다. 문정희의 시를 즐겨 읽었지만 처음 만나는 시, 그런데 최고네요!

 

여자, ‘대지의 어머니’가 되다

 

이 시는 여성의 배뇨를 소재로 한 시다. 시인은 딸들에게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고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네 몸속의 강물’이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권한다. 그 소리는 ‘세상을 풀들’을 ‘무성히 자라’게 하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다. [시 전문 텍스트로 보기]

 

시인은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다며 딸의 편에 선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일수록 /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 올리고 / 보름달 탐스러운 네 화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라고 권한다.

 

▲ 시가 실린 시집 (2004)

그리하여 ‘쉬이쉬이 네 몸속의 강물이 /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여자가 제의(祭儀)처럼 자신의 화초를 대지에다 대고 만들어내는 그 강물 소리는 여자가 대지와 한 몸이 되는 소리고, 푸른 생명의 환호 소리다.

 

인류가 땅을 다산의 상징, 여성성의 상징으로 이해한 때는 역사시대 이전부터였다. 때는 주술의 시대, 인간들은 세계의 생성 원리를 남녀의 교접, 즉 성기의 결합으로 이해했던 시기였다. 천지간의 교합으로 세계가 생성되었듯 남녀의 교접으로 자식을 낳고 인간사회는 확대 발전했다.

 

대지를 지상의 모든 곡물, 그 생명의 원천인 지모신(地母神)으로 이해하듯 다산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여성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땅이 인격화된 여성으로 여겨진 것은 거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다. 여자는 몸속 강물 소리로 세상의 풀을 무성히 자라게 하고 푸른 생명의 환호를 낳는 대지와 한 몸이지만 세상의 편견은 완강한 바위 같다. 시인은 그 바위를 갈겨 주는 대신 조용히 보름달 탐스러운 네 몸을 대지에다 살짝 대라고 권한다. 시인은 그 여성성으로 바위를 넘으라고 말하는 것일까.

 

문정희의 시 세계는 흔히 세상의 모든 차별을 더 큰 눈으로 바라보며 생명의 존엄과 평등을 강조하는, 생태학과 여성주의가 결합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으로 설명된다. 그는 “무작정 여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본래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그것을 문학의 테마로 삼아”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 문정희 시인(1947~   )

이 시에는 “여성성 안에는 대지(大地)적인 무한한 생명력이 있는데, 거기서 여성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시인의 믿음이 굳건히 담겨 있다. 여성의 배뇨는 단순한 생리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은 ‘서서가 아니라 앉아서’ 볼일을 보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배뇨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 그 ‘몸속 강물 소리’는 세상의 풀들을 무성히 자라게 하고 여자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가 된다. 완강한 바위를 갈겨 주는 대신 보름달 탐스러운 화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면, 대지와 한 몸이 되고 생명의 환호가 들려오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시인이 딸을 ‘내 귀한 여자’라고 부르는 까닭도 거기 있다.

 

‘오줌 누는 소리’를 기꺼이 노래한 시인

 

나는 ‘꽃과 사랑’ 대신에 ‘오줌 누는 소리’를 기꺼이 노래하고 진찰대에 선 자신의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노래하는,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인 이 할머니 시인의 아름답고 넉넉한 눈길을 좋아한다. 비슷한 시기에 여성주의 시를 써 온 강은교 시인에 비길 때 부당한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데도 흔쾌히 동의하면서. [관련 글 : 문정희 시인의 몸과 삶’, ‘사랑의 성찰]

 

여성의 배뇨를 다룬 이야기로 선류몽(旋流夢) 설화가 있다. 대체로 높은 곳에 올라서 소변을 보았더니 그 물이 온 나라에 가득 찼다는 꿈 이야기다.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문희(文姬)의 꿈’도 같은 계열이다. 서형산(西兄山) 위에서 눈 오줌이 서라벌을 가득 채웠다는, 언니 보희의 꿈을 산 문희가 뒷날 김춘추와 혼인하여 왕후가 되었다는 것이다.

 

선류몽 설화는 모계 사회의 유산이라고 한다. 여성이 남성의 상징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성행위의 암시고, 그 결과 온 나라를 오줌으로 적시는 것은 나라를 다스릴 인물의 탄생을 예언한 것이다. 보희는 문명왕후가 되어 김법민(金法敏)을 낳았고 이 아들이 곧 삼국통일을 대업을 이룬 문무왕이다.

 

여자의 ‘몸속 강물’, 서라벌 대신 푸른 생명을 적시다

 

이 이야기에서는 문희와 김춘추의 야합을 신성화하려는 복선적 의식이 작용한 부계의 흔적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물의 창조성’과 인간 탄생의 지식이 결합하고 꿈의 신비를 빌려 만들어진 설화라는 점에서는 다른 선류몽 설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희의 오줌은 서라벌을 적시고 통일 대업을 이룬 김법민의 탄생으로 이어졌지만, 문정희의 시에서 딸의 그것은 세상의 풀들을 무성히 자라게 하고, 그녀를 대지의 어머니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여자는 마침내 푸른 생명을 환호하게 하는, 대지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나는 더 슬프게 우는 곡비가 되고 싶다. 안락한 땅 위에서보다 외줄 위에서 더 자유로운 줄광대, 알바트로스로 창공을 살고 싶다.”

 

어느 문학 강연회에서 시인은 ‘곡비(哭婢)’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곡비는 ‘양반의 장례 때 주인을 대신하여 곡하던 계집종’이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시인은 현대판 곡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시가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넘어 시대의 보편적 삶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일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시인이 더 건강하게, 더 용감하게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줄광대든, 큰 날개로 세상을 덮는 신천옹(信天翁, 앨버트로스)이든, 곡비보다 더 슬프게 울면서 오늘의 삶과 여성,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을 그려본다.

 

 

2015. 9.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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