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성 편향 표현 대체법안 통과에 즈음하여
기사 두 개, 미국과 한국
며칠 전 뉴스에서 기사 두 개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외신으로 미국 워싱턴 주가 주(州)법 조항에서 경찰관을 뜻하는 단어 ‘policemen’과 신입생을 의미하는 단어 ‘freshmen’을 없앴다는 소식[☞ 관련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승무원의 복장을 치마로 제한한 아시아나 항공에 유니폼 바지를 허용하라고 권고했다는 뉴스[☞ 관련 기사]다.
마침 고정희의 시 <우리 동네 구자명 씨>를 배운 뒤끝이라 아이들과 이 상반된 기사 두 건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주법 조항의 모든 단어를 ‘성(性) 중립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제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와 이제야 국가기구가 민간기업의 성차별적 관행에 제동을 건 나라의 차이는 어떨까 하고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경찰관을 ‘policemen’에서 ‘police officers’로, 신입생을 ‘freshmen’에서 ‘first-year students’로 대체했다. 소방관은 ‘firemen’에서 ‘fire fighters’로 바꿔 표기한다. 이유는 기존 단어의 ‘men’이 남성을 뜻하므로 양성평등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파수꾼(watchman)’은 ‘safety guard’로, ‘어부(fisherman)’는 ‘fisher’로 ‘옴부즈맨(ombudsman)’은 ‘ombuds’로, ‘서법·필적(penmanship)’은 ‘handwriting’으로 바꿔 쓰게 된다. 이밖에도 ‘그(he)’는 ‘그 또는 그녀(he or she)’로, ‘man’이 들어가는 단어는 아예 빼거나 ‘human’으로 바꾸는 것까지 포함된다.
워싱턴주에서 성 편향적 단어를 ‘성 중립적’으로 바꾸는 작업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주도한 시애틀 시의원 샐리 클라크(Sally Clark)는 이 작업의 의미를 ‘사고를 반영하는’ 언어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작은 순간들이 모여 커다란 변화가 된다”
단어를 바꾸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it’s not a big thing)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워싱턴주 외에도 플로리다, 미네소타주 등도 이 단어 교체에 참여했고, 미국 주의 절반 이상이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언어학자 크리시핀 설로(워싱턴주 보셀대 교수)의 평가는 이 작업의 의미를 명확히 규정한다.
“단어를 바꾸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작은 순간들(tiny moments)이 모이면 커다란 변화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성 차별적 언어는 넘친다. 관련해 국립국어원의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나 그게 다인 것 같다. 성격이 미국의 예와 다르긴 하지만, 이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움직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개별 어휘에 나타난 문제를 제기하고 언중들의 개인적 실천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대중의 언어를 선도하는 매스컴의 역할이 요구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관련 글 : 말에 담긴 ‘차별과 편견’ 넘기]
‘한국의 아름다움’과 ‘치마’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아시아나항공의 용모 규정에 대해 진정을 제기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진정의 요지는 이 회사가 여승무원들에게 치마 길이, 귀걸이 크기, 눈화장 색깔 등 구체적인 용모 규정을 적용해 오면서 바지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바지를 허용하지 않았다’며 ‘승무원의 용모와 복장은 서비스 품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이를 규정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회사 쪽에 ‘유니폼 바지를 허용하라’고 권고했다.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고 용모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해 획일적인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규범적인 여성의 모습을 전제하므로 성차별적 의미를 내포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치마만 입을 경우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다른 국내 항공사들이 여승무원의 바지 착용을 허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시아나 항공의 제한이 과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용모 기준을 규정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은 성차별로 인정될 수 있다며 특정 노동에서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전체 승무원 3500여 명 중 95%가 여승무원이라 한다. 바지 선택 착용은 여성 노동자의 업무 수행에 긴요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인권위의 권고가 어떤 방식으로 관철될지는 알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다음 유니폼 교체 때 의견을 모아 바지를 허용할지 결정하겠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였다니 말이다.
여성들에게 ‘유니폼(교복) 바지’를 허하라
‘여성에게 바지를 허하라’는 단순히 항공사 여승무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전임 여학교에서도 바지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 지역의 일부 중학교에서만 필요한 경우 바지 착용을 허락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경우, 바지를 허용하는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서라곤 볼 수 없다. 교육이라면 전문가 못잖은 학부모들도 이런 문제에 관해선 별 의견이 없다.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학부모들도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it’s not a big thing)‘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의 디자이너는 “한국의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승무원 이미지와 바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의 교복에서도 바지는 ‘여학생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통념이 관철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 편향적 낱말을 중립적인 단어로 대체하기 위한 입법 작업을 6, 7년째 계속하고 있는 미국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운운하며 여승무원에게 바지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계는 각각 몇 시일까. 무엇보다 그 간극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같은 객관적 지표 이전의 문제라는 걸 생각하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들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과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별로 유의미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된다. 당선인이 ‘여성의 인권’을 언급한 것도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할 때였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 게 우연만은 아닐 듯하다.
2013. 2. 13. 낮달
명절 가사노동과 관련한 문제 제기에 이어 이번 설날을 앞두고 그간 관습으로 쓰여 온, 성차별적 혹은 ‘성별 비대칭적’인 가족 내 호칭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2012)에 따르면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로, 아내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댁·처가’에서 보는 것처럼 남편 쪽의 호칭만 존칭으로 쓰이는 이 오래된 관습은 성차별적이고 성별 비대칭적이다. 이러한 호칭 체계에는 ‘처가 촌수는 개촌수’라는, 불평등이 당연하다는 오래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호칭 양성평등을 담은 2019년 건강가정 기본계획(2016~2020) 시행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부터 국립국어원·국민권익위원회와 가족 호칭 개선을 협의해왔다고 한다. 바야흐로 정부에서 이 문제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설 명절을 맞아 명절에 흔히 겪는 개선해야 할 성차별 언어·호칭 7건과 쓰지 말아야 할 속담 및 관용표현 TOP 7을 담은 ‘서울시 성평등 생활 사전_설 특집’을 발표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쓰지만 개선하여야 할 어휘들을 제시한 것이다.
성차별 속담 및 관용표현으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가 1위를 차지했다. ‘남자는 돈, 여자는 얼굴’, ‘남자는 일생에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 등이 뒤를 이었다. 모두가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의 성 역할을 대상화하거나 남성에게 요구되는 성 고정관념과 성 역할을 답습하는 속담 등이다.
국어원이 제안한 호칭으로는 기존에 남편 쪽은 ‘도련님, 아가씨’, 아내 쪽은 ‘처남, 처제’로 부른 배우자의 손아래 동기를 ‘oo(이름) 씨, 동생(님)’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처남님, 처제님’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한편, 재단이 작년 추석 특집 편 제작 당시 시민이 제안한 시가·처가 명절 방문 순서도 눈길을 끈다. 이는 ▶ 설에는 시가 → 처가, 추석에는 처가 → 시가 등의 순으로 방문하는 ‘교대 방문’, ▶ 설에는 시가만, 추석에는 처가만 가는 ‘1명절 1본가 방문’, ▶ 각자 자신의 본가에서 명절을 보내는 ‘각자 자기 집 방문’ 등으로 구성됐다.
어쨌든 2019년 설날을 앞두고 이러한 성차별과 성별 비대칭적 호칭 체계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만큼 세상은 바뀌었다. 일단 정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황이니만큼 일정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러한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일상적 실천으로 풀어가려는 시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2019. 2.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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