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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대선, ‘말과 말’ 사이

by 낮달2018 2021.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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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의 ‘말과 말’

대통령 선거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레이스도 불이 붙었다. 연일 총이 아니라, 말을 병기로 한 열전이 이어지고 있다. ‘말’은 때로 ‘총탄’이 되고 ‘폭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후보들 간 우열과 무관하게 그들이 쓰는 말도 무성하다. 말의 쓰임새를 환기해 본 두 장면 얘기다.

 

#1.‘○○○ 의원’과 ‘의원 ○○○’ 사이

▲ 국회의원이 자신을 소개할 때는 "국회의원 아무개입니다."가 맞다.

자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뛰는 정당 관계자 가운데 말을 무기로 대선전을 수행하는 이들도 꽤 많다. 대체로 선거 대책 본부의 대변인실이나 미디어 본부 등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때가 때인지라 언론에 자주 불려 나온다. 그런데 이들이 방송에 나와서 하는 자기소개를 들으면 어쩐지 불편해질 때가 많다.

 

(1) 전재수 : 네, 부산 북구 출신 전재수 국회의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2) 이용주 : 네, 안녕하십니까? 전남 여수 출신의 이용주 의원입니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4.10. 방송)

 

(3) 이재정 :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이재정입니다.

- <미디어몽구> 문재인 후보 유세 현장 동영상 중에서

 

보통 우리는 직위(지위)를 먼저 대고 이름을 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위의 (1), (2)에서 보는 것처럼 두 야당 국회의원은 이름 뒤에 자신의 직위를 붙였다. (3)에서는 직위를 먼저 대고 뒤에 이름을 말했다.

 

어느 쪽이 더 듣기 편한가. 이름의 앞뒤 가운데 어디에 지위를 붙이는가가 다를 뿐이지만 이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럴 의도가 있든 없든 지위를 뒤에 붙이는 방식은 다소 권위적이고 자신의 지위를 앞세운다는 느낌이 크다. 그러나 앞에 지위를 붙이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방식이다. [관련 글 : ‘자기소개’의 두 가지 방식, 혹은 태도]

 

1980년대 5공 청문회 당시, 국회의원들은 발언에 나설 때 ‘본 의원’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당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이라고 자신을 칭하던 전두환을 불러 따지던 상황이었는데 어쨌든 그것도 참 묘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요즘 자신을 그렇게 말하는 의원은 없다. 의원 개인이 ‘헌법기관’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언어 표현의 민주화도 상당 부분 이루어진 셈이다. 언제쯤 어색하고 듣기 불편한 국회의원들의 자기소개가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바뀌게 될까.

 

# 2. ‘버릇없다’와 ‘예의를 지키라’ 사이

▲ 버릇 논쟁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어제저녁 JTBC의 대선후보 토론회를 보다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보들끼리 공방을 벌이다가 신경전을 벌이는 대목이었다. 거두절미한 양인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 문재인 : 이보세요, 제가 그 조사할 때 입회했던 변호삽니다.

· 홍준표 : 아니 말씀을 왜 그렇게 버릇없이 해요. ‘이보세요’라니.

 

홍준표 후보의 주장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홍 후보를 ‘이보세요’라는 호칭으로 불렀고 이에 발끈한 홍 후보가 ‘버릇없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그 대목에서 나는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도 내 지적에 맞장구를 쳤다.

 

“홍준표가 문재인보다 나이가 아래인 듯싶은데……, 버릇없다고 해서 되나?”

“글쎄 말이에요. 조금 거시기하네.”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요 포털에 ‘홍준표 후보 나이’가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고 하니 말이다. 홍 후보는 1954년 12월생, 문 후보는 1953년 1월생이니 연도만으로 보면 1년 차이지만 생일이 1월과 12월이어서 실제는 두 살쯤 차이가 난다.

 

그러나 같은 60대인데 한두 살 차이로 그걸 통상의 연령별 서열 형식으로 바라볼 일은 없겠다. 같이 대선에 나선 이들이니 나이 차이와 무관하게 서로가 동등한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버릇없이’는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버릇없다’는 ‘윗사람에 대하여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나 교양이 없다.’라는 뜻의 형용사다. 우리말에서 화자와 청자 사이의 위계에 따라 쓸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만약 ‘이보세요’가 불손한 표현이라면(이 표현 역시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예의를 지키라’고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걸 ‘버릇없다’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2017. 4.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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