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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안동 이야기

“너희 집도?” “6천 마리 죽였어요”

by 낮달2018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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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구제역 휩쓴 안동·예천 지역…주민들은 울상, 지역경제 꽁꽁

▲ 12월 25일 안동지역의 현장에서 방역 요원이 구제역 예방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54년 만의 혹한’이라는 성탄절. 많은 가정과 교회에서 ‘구주 오신 날’을 기리고 있을 때,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는 구제역 예방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지난 11월 29일 안동시 와룡면 서현 양돈 단지에서 최초의 구제역 양성반응 판정이 있은 지 꼭 27일 만이다.

 

지역을 얼어붙게 한 것은 수십 년 만의 추위만이 아니다. 양돈 단지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일주일 만에 무려 30곳으로 번졌고, 예천·영양·영주·봉화 등 경북 일곱 개 시군으로 확산하였다. 12월 25일 현재 안동에서는 한우 3만2000여 마리, 돼지 9만4000여 마리 등 총 12만9000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는 전체 가축 16만6000여 마리 가운데 83%에 해당하는 숫자다.

 

구제역(口蹄疫)은 ‘발굽이 2개인 소·돼지 등의 입·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긴 뒤 치사율이 5∼55%에 달하는 가축의 제1종 바이러스성 법정전염병’이다. 가축에게 발병하는 전염병이어서 농촌지역이 아닌 도시민들에게는 상황이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지역 내 도로 곳곳에서 차량 방역을 시행하는 걸 보면서 가까스로 상황을 실감할 뿐이다.

 

공들여 기른 가축, 묻어야 하는 농민들 “피가 마른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피해 농가 조사 공문이 내려왔을 때야 나는 비로소 반 아이들 가운데서도 축산농가가 있다는 걸 기억했다.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아이들 자기소개서를 뒤적이고 있는데 유진이가 교무실로 왔다. 맞다. 차분한 표정이 어울리는 얌전한 아인데 아버지가 양돈농장을 꾸려가고 있다.

 

“너희 집에도 구제역으로 살처분을 한 거야?”
“예…….”
“얼마나?”
“6000두라 하던데요.”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글쎄, 워낙 축산 쪽에 아는 게 없어서 그 숫자가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 6백도 아니고 6천이다. 나는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서 허둥대다 ‘어떡하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는 그래도 생긋 웃는다.

▲ 구제역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군 차량을 이용한 방제작업이 이루어졌다 .
▲ 방역 요원들이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동원해 살처분한 가축을 묻고 있다.

매몰 처분된 가축에 대해서는 시세로 보상한다고 하고 도 교육청에서 피해 농가의 중고생 자녀에 대해서 1년간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를 지원할 예정이라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공들여 기른 가축을 죽여 묻어야 하는 축산 농민들의 심정은 ‘피가 마른다’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지 모른다.

 

그저께 밤에 유진이 아버지와 통화했다.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데 뜻밖에 목소리가 밝다.

 

“어쩌겠습니까.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유진 아버지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20여 년간 축산업에 종사해 왔다고 한다. 보상은 좀 받았냐니까, 가지급금으로 일단 50%쯤 받았다고 한다. 이 가지급금은 한 마리에 소는 300만 원, 돼지는 30만 원씩이다. 나중에 계측 결과를 토대로 시세에 맞춰 정산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 ‘축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는 듯해서 가슴 아프단다. 자기 손해에 앞서 지역부터 걱정하는 마음, 그게 우리 농심의 모습인지 모른다.

 

안동에는 현재 발병 지역을 중심으로 살처분 명령과 함께 지역주민들의 이동 제한 명령이 발효 중이다. 최초 발병지인 와룡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안동시청에 마련된 상황실로 문의하니 안동시청 정보통신과에서 보도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 시청 앞마당에 방역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고 청사에도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시청의 '가축 질병 방역 대책본부' 상황실. 휴일인데도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

방역 차량 여러 대가 대기 중인 안동시청 앞마당에 내리자,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다. ‘모두가 힘을 모으면 구제역을 물리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청사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현관 앞에 비치된 소독기를 거치고 신발 소독까지 마쳐야 한다. 휴일인데도 청사 곳곳으로 직원들이 바삐 오갔다. 정보통신과에서 직원 몇 분과 반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

 

구제역, 지역 축산 기반을 허물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무엇보다도 지역의 축산업에 치명적이다. 특히 그 동안 가꾸어온 ‘안동 한우’라는 브랜드 가치의 하락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사육 한우 4만5000여 마리 가운데 매몰대상이 3만4000여 마리에 이르니 한우 생산 기반이 흔들린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그 부분이 가장 뼈아픕니다. 시에서는 ‘축산 재건팀’을 만들어 사후관리는 물론, 입식 자금 받아서 지원하는 등 축산지원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특히 ‘안동 한우’의 경우는 다른 지역의 소를 들여오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안동에서 유독 구제역이 급속히 확산된 데에는 이 지역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파속도가 빠른 ‘O형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염 지역을 중심으로 이동 제한이 이루어졌지만, 구제역이 확산하면서 안동시 공무원들이 바빠졌다. 관내 64개의 방역초소를 밤낮으로 운영하면서 50대 초반의 공무원이 과로로 쓰러져 숨졌고 다친 사람도 부지기수다.

 

가축의 살처분에 동원되는 공무원들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비록 축생에 지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일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다. 밤샘 살처분과 매몰에 동원된 공무원들에게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낀 짐승이 심하게 몸부림 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못할짓’이기 때문이다. 안동시에서 지난 14일 ‘2010 구제역 합동 축혼제’를 치른 것은 매몰 가축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 지난 14일, 안동시청에서 살처분된 가축들을 기리는 축혼제가 베풀어졌다.

감염 지역으로 이동 제한이 장기화되면서 지역의 문화 행사나 모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안동 예술의 전당 완공 기념으로 공연될 예정이었던 ‘조수미 콘서트’, 발레 ‘호두까기 인형’, ‘송년 음악회’ 등의 행사가 취소된 것이다.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시청 소공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우리 학교 아이들의 미술 전시회도 교내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관내 5일장 폐쇄, 지역경제 급격히 위축

 

또 관내 재래식 5일장이 무기한 폐쇄되면서 지역 경제는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육류 소비가 가파르게 줄면서 육류 전문 음식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상대적으로 횟집이나 해물을 취급하는 음식점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의 1200여 명 공무원들이 방역작업에 묶이면서 연말 경기도 위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송년회, 회식 등으로 음식점이 반짝 경기를 타야 하는데 육류 기피에다 회식도 급격히 줄어 버렸으니…. 구두 닦는 사람들조차 요즘 연말 경기가 왜 이러냐고 울상이지요.”

“한의원도 한산합니다. 어저께 간신히 시간을 내서 한의원에 갔는데 북적여야 할 병원이 한산한 거예요. 주요 고객인 시골 노인들이 못 나온 거죠. 이동 제한 명령에 걸린 것도 걸린 거지만 상황이 이러니 노인들이 스스로 이동을 자제하시는 거지요.”

 

구제역 사태가 불러온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 시청 직원 가족의 이야기다. 의성 출신의 신랑과 예천의 신부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을 마치고 올 무렵 구제역이 확산되었다. 양가 모두 소를 기르니 이 신혼부부는 발이 묶였다. 친가는 물론이고 처가에도 가지 못하니 아직 양가 인사도 못 했단다.

 

구제역은 타 시·군으로 확산하고 전국적으로도 4개 시·도에까지 번졌지만 안동 지역 상황은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살처분과 매몰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발생한 문제도 간단치 않다.

 

먼저 방역에 협조하여 매몰지를 내준 농민의 피해가 있다. 냄새와 땅 꺼짐 현상은 물론이고 3년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매몰지의 ‘침출수’와 그로 인한 지하수 오염이다.

 

가축 매몰은 비닐을 깔고 생석회를 덮은 후에 이루어진다. 같이 묻은 관정을 통해서 솟아난 침출수를 저류조에 모은 다음, 일정한 시간 경과 후에 최종적으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처리하게끔 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지하로 스며드는 침출수를 모두 막을 방도는 없으니 이는 필연적으로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 접종 현장에서 방역 요원이 구제역 예방 백신을 들어 보이고 있다 .

25일부터 안동과 예천 지역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미 예천지역의 일부 한우 사육 농가에서 백신 접종을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백신 접종 후 바이러스 검사를 거쳐 가축을 출하하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접종으로 소비자 신뢰가 저하되어 전체 축산물 소비가 줄어드는 을 우려하는 것이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 잃어”…백신 접종이 끝이 아니다

 

백신 접종은 소, 돼지, 사슴 등 모든 우제류에 접종하여야 하고, 접종이 이루어지고 나면 우리나라는 ‘구제역 청정국’을 지위를 잃는다. 이 때문에 축산물 수출이 막혀 ‘축산 붕괴’의 우려가 있다는 게 백신 접종 반대 농가의 주장이다. 결국 접종이 구제역 상황의 종결점은 아닌 것이다.

 

▲ 안동시 공무원들이 달고 있는 리본

구제역 예방 백신 접종은 안동 지역 내 한우 1만7000여 마리 전체에 대해서 실시된다. 31일까지 1차 접종이 실시되고 한 달 뒤인 내년 1월 25일부터는 2차 접종이 시작된다. 접종한 소는 2차 접종 2주일 후 항체 형성 여부를 검사하여 구제역 의심이 없으면 도축장으로 출하할 수 있다.

 

구제역 발생은 올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그러나 방역시스템 개선을 위한 관련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발생 초기의 방역 공백과 초기 대응의 부실도 넘어야 할 산이다.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시청을 나오면서 직원들마다 가슴에 단 ‘구제역 조기 종식’ 리본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까닭은 그래서다.

 

시청을 떠나면서 보도자료로 내준 ‘12/25 종합상황 보고서’ 속의 각종 수치를 곰곰 들여다본다. 이 수치들은 중앙정부로 수합되어 다른 시도의 통계 숫자와 합산되어 전체 상황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정책 당국자에게 이 수치들은 단순한 보고용 데이터에 그칠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 축산 농가들에 이 수치는 그들이 흘린 땀과 보람이요,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의 눈물이다. 온 나라를 꽁꽁 얼어붙게 한 한파와 함께 나라 안의 구제역 상황이 말끔히 물러나고 정리되어야 하는 까닭은 그것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2010. 12. 27.

 

 

"너희 집도?" "6천마리 죽였어요"

[르포] 구제역 휩쓴 안동·예천 지역...주민들은 울상, 지역경제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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