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눈 맑은 사내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by 낮달2018 2021. 1. 23.
728x90

사내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들 .  여학생이 훨씬 많아 보인다 .

남녀학교를 두루 돌아다닌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춘기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정신연령이 훨씬 높다는 통설은 사실에 가깝다. 여학생들은 아주 감성적이면서도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뜻밖에 폭넓은 관점과 태도를 보여준다. 물론 이 통설은 개인차를 무시한다는 전제에서 유효하다.

 

여학생들이 자기 이해를 유독 밝히는 깍쟁이일 거라는 편견은 생각보다 훨씬 뿌리 깊다. 그러나 실제로 여학생들은 ‘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 훨씬 어른스러운 입장과 태도를 보인다. 복잡한 걸 꺼리고 단순한 걸 선호하는 남자아이들은 즉흥성이 강하고 여자아이들은 문제의 전후좌우를 살피고 상대를 배려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대부분 남녀공학으로 운영되는 시골 학교나 중학교에 근무해 보면, 이런 점은 아주 확연하게 눈에 띈다. 이런 학교에서 남학생들은 여학생 앞에서는 쥐약이다. 요즘 여학생들은 예전과 달리 매우 활동적이어서 사내아이들을 주눅 들게 한다. 천하 없이 센 녀석들도 원칙적이고 깐깐한 여학생 앞에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마는 것이다.

 

사내아이들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길 즐긴다. 2층 계단참에서 의심 없이 뛰어내리기도 하고, 복도를 쏜살같이 내닫는 등 천방지축이 따로 없다. 그러다 보니, 그야말로 ‘무개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남학생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아요.”

 

어저께 만난 중학교 여교사 한 분이 그렇게 말했다. 말 안 해도 뻔한 그림이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던 후배의 이야기다. 말썽부린 녀석 하나를 불러놓고 한 5분간 설교를 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하고 물으니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그러더란다. “잘 모르겠는데요…….” 다른 방법이 없다. 후배는 수준을 낮추고 줄인 훈화를 3분쯤 하는 걸로 자리를 끝내야 했다.

 

여학생들은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쉬지 않고 노래를 합창하고, 단체 활동에도 매우 왕성하게 참여한다. 그러나 사내아이들은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줄기차게 주전부리를 먹어대거나, 가져온 만화책 따위를 읽으며 끼리끼리 조용하게 놀고 만다. 여학생들이라면 뚜르르 꿰고 있는 최신 대중가요를 한 곡이라도 끝까지 아는 녀석들도 그리 많지 않다. (이건 어쩌면 사내아이들의 귀여운 점이기도 하다)

 

고등학생이 되면 좀 나아지긴 한다. 그래도 남녀공학인 학교에서는 비슷한 패턴이 계속된다. 머리가 굵어졌다고 담배나 술을 배우는 게 조금 달라질 뿐이다. 그러나 중학생과 비기면 고등학생들은 다 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슬슬 철이 든다면 드는 것이다.

 

초등학교라고 다르랴. 경험은 따로 없지만 거기도 비슷하리라. 지난해 연말에 일제고사 관련해서 여러 분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학교마다 크고 작은 소란이 있었다. 법을 앞세우며 해직 교사들의 학교 출입을 막는 학교 쪽과 교장, 교감 등의 관리자와 마찰이다.

 

그 소용돌이 가운데 선생님의 진실과 용기를 믿는 아이들이 선생님 편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안타까운 풍경이 날마다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눈여겨본 눈 밝은 이가 그랬단다.

 

“요즘은 초등학교도 남학교, 여학교가 따로 있는 거야?”

 

말인즉, 울며불며 선생님을 외치는 아이들이나 교육청 앞의 촛불 문화제에 나와서 ‘선생님을 돌려달라’고 절규하는 아이들은 모두 여자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남학생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교실에 들어가 보았단다.

 

사내아이들은 교실에 끼리끼리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사내아이들은 마치 이 위중한 상황의 바깥,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교실에 있는 듯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그이는 그렇게 되물었다 한다.

 

“사내아이들은 왜 그러지?”

 

현장에 가 보지 않았으니 더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는 어렵다. 왜 아이들이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지도 쉽게 말할 수 있지 않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남녀의 차이가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는 있을 듯하다.

▲ 일제고사로 교사를 잃은 학생 학부모의 피켓시위. 모두 여학생이다. ⓒ 경향닷컴

지난해 5월부터 몇 달 동안 서울의 밤을 밝혔던 촛불 문화제를 빛낸 아이들이 여자 중고생들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학생의 참여도 활발했지만, 여학생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보였던 듯하다. 야간자습을 빼먹고 집회 장소로 향한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가 사는 소도시에도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촛불은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거기 참여하면서 눈여겨보아도 남학생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들리는 얘기로 인근 남학교에서는 참석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으름장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그래도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던 여학생들은 간간이 자리에 합류하기도 하건만, 사내아이들은 아예 눈에 띄는 일도 드물었다.

 

“학교서 일찌감치 소금을 뿌려놨고요. 이런 데 참석했다가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나, 불이익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부에 불려가는 성가신 일에 말리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의 이기심이 주범일걸요, 아마…….”

“아이들은 영악하다 못해 비겁하기도 해요. 공부 잘하고 말썽 안 피우는 것은 좋은데 한 번씩 아이들이 가진 속물 의식을 확인할 때는 정나미가 떨어지죠…….”

 

의문은 반 너머 풀린 셈이다. 상대적으로 어린 녀석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서, 머리가 굵어진 녀석들은 자기 챙기기 바빴다는 말이겠다. 그래도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을 개념 없는 천방지축으로 키운 것도, 자기 주변 두드려보고 움직이는 애늙은이를 기른 것도 죄다 어른이고 이 사회일 터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몇 해 전에 강의석이란 고교생이 ‘종교의 자유’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것은 일종의 신선한 경이감 같은 것이었다. 얼마 전 대학생이 된 그가 평화주의자로서 군대 폐지를 주장하는 알몸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정작 나라 안은 그의 주장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선택한 시위방식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것 같다. 총학생회 선거가 낮은 투표율로 연기, 또는 무효가 되거나, 단수 입후보자에 대한 찬반투표로 진행되는 게 오늘의 대학과 청년사회의 모습이다. 거기 비기면 강의석의 알몸 시위는 그것 자체로 넘치는 젊음의 표현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고 절규하며 80년대의 군부독재에 맞섰던 그때의 대학생이 50대, 쉰 고개를 넘은 2009년 새해 벽두다. 그 어두운 시대의 거리와 캠퍼스에서 페퍼포그 사이를 바람처럼 달리던 그 푸르디푸른 ‘애국의 청춘’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비록 ‘의기(義氣)’는 아닐지라도 서툰 열정과 배려의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바라볼 줄 아는 눈 맑은 사내아이가 그립다. 반듯하고 야무진 여학생 뒤에 숨어 있지 않고 당당히 어깨 펴고 씩씩하게 세상에 나올 더벅머리 아이들을 그리며, 새로 맞을 기축(己丑) 새해 설날을 기다린다.

 

 

2009. 1. 23. 낮달

 


* 이 글은 가볍게 읽으시길. 여기서 다룬 이야기는 단순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글에 달린 댓글 하나만 붙인다.

 

○○○ 2009/01/24 08:59

논란이 있는 글 같네요.

여학생보다 남학생의 정신연령이 좀 늦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학생들을 여자애들과 비교해 더 무식하고 눈치만 잔뜩 보는 아이들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글의 논점은 여학생들과 비교해 남학생들의 정치적 참여가 떨어지므로, 좀 더 정치적인 참여를 늘렸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신 거 같은데. 그렇게만 보기에는, 너무 대상이 되는 남자 학생들에게 반발감을 심어줄 만한 내용으로, 아이들을 자극해서, 반대되는 반응을 불러올 거 같네요.

 

낮달 2009/01/24 10:14

옳은 지적이십니다.

그러나, 일종의 인상기쯤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

글의 내용만으로 보면 사내아이들은 모두 형편없는 아이로 보아야겠지만, 개중에는 좋은 아이들도 많지요. 어쩌다 아이들이 점점 어려지면서 자기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 않나, 계속 어려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나 안타까움을 드러낸 글입니다.

정치적 참여로 한정하기보다 관계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가는 어른스러움이랄까, 주체적 입장 등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 되어 가는 부분에선 남녀가 굳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고요….

지적 고맙습니다. 거듭 가볍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