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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새 학기 책 꺼풀? 변소 뒤지? 이젠 ‘시간 그릇’

by 낮달2018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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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나침반, 나의 ‘참교육 달력’ 이야기

▲ 2007년도 전교조에서 발행한 달력은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으로 꾸몄다.

달력은 한 해의 시간표다. 그것은 일상의 가늠자이면서 한 시기의 나침반이다. 물리적인 시간을 길쭉한 사각형의 종이 뭉치 속에 쟁여 넣은 생활의 계획표다. 사람들은 달력을 한 장씩 찢고 넘기면서 세월을 헤아리고 그 무상을 새롭게 이해하기도 한다.

 

교과서 책 꺼풀에도 쓰고, 바람벽에 도배도 하고, 변소 ‘뒤지’로도

 

달력과 관련된 가장 오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의 것이다. 새 학기에 새 교과서를 받아 집으로 가져오면, 누님은 보관해둔 묵은 달력의 낱장을 찢어 아주 튼튼하게 꺼풀을 입혀 주었다.

 

신문지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적당한 두께의 매끄러운 달력 종이는 조악한 품질의 교과서를 보호하는 데는 그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꺼풀을 입혀야 할 책이 몇 권인가, 쓸 수 있는 달력 종이가 몇 장인가를 저울질해 가며 조심스럽게 달력을 마름질하곤 했다.

 

60년대에 시골 마을 가가호호에 보급된 달력은 주로 한 장짜리였다. 한 면에 12달이 들어가는 이 달력은 주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제공했던 것 같다. 타블로이드 판형의 상단 가운데에는 동해의 해돋이 광경과 함께 ‘의원님’의 원형 사진이 박힌 이 달력은 가난한 농가의 신문지로 초벌 도배하거나 맨흙인 바람벽에 겹쳐져 붙어 있곤 했다.

 

▲ 60년대에 유행했던 그림 달력과 일력 .

이 한 장짜리 달력은 이내 산수화나 풍경 사진, 엄앵란이나 전계현 같은 인기 여배우들의 한복 사진이 실린 여러 장짜리 달력으로 진화했다.

 

우리 세대가 알프스의 설경이나 네덜란드의 풍차 따위의 풍정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모두 이 시기 달력의 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 집 안방에 걸렸던 일력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매일 찢어내는 얇고 매끄러운 미농지로 만든 일력 종이는 즐겨 ‘변소’에서 ‘뒤지’로 이용되었다.

 

당시 뒤지는 변소 흙벽에 박힌 대못에 꽂아두는 신문지이기 십상이었다. 아버지께서 넓적한 알루미늄 손잡이가 달린 과도로 신문지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시면 그것을 가져다 변소에다 걸어두는 일은 내 몫이었다. 거칠고 잉크가 묻어나기도 하는 신문지에 비기면 일력 종이는 놀라운 호사였던 셈이다.

 

이후 급속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달력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던 듯하다. 집집마다 거저 얻은 달력이 넘쳐났다. 달력은 기업들의 판촉 수단이 되기도 했는데 판형은 물론 거기 담긴 내용도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달력 풍년은 90년대 말의 이른바 IMF 외환위기 때 된서리를 맞게 된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집집마다 넘치던 달력이 달리기 시작했고 판촉용 달력도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라 무슨 덤처럼 건네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탁상용 달력’이 실용성을 갖춘 판촉용으로 각광을 받은 게 아마 이 무렵이 아닌가 싶다. 사무실 책상마다 하나씩 엄전하게 얹힌 이 탁상용 달력은 직장인들의 훌륭한 메모지였고 주간·월간의 일정표가 되었던 것이다.

 

전교조 달력이 올라간 책상 "나는 당신들의 우군입니다"

 

▲ 참교육 달력 2007년과 2008년 달력의 표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 탁상용과 벽걸이 달력을 제작한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이 ‘참교육 달력’은 전교조가 비합법 조직이었던 시절부터 조합원은 물론이거니와 ‘후원회원’이란 이름으로 활동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공급되었다. 해직교사들의 학교 방문도 관리자들과 부딪치던 시절, 이 달력은 그걸 가진 교사들을 우군으로 증명해 주는 표지이기도 했다.

 

그동안 참교육 달력에 등장했던 그림은 아이들의 그림·판화·교육시와 그림 등이었는데, 이 달력은 해마다 진화를 거듭해 올해에는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신영복 선생은 알다시피 무기 징역 복역 중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서간집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무려 20년 20일을 복역하고 다시 세상에 나온 이 경제학자는 깊은 사색과 성찰을 통해 우리 시대를 명징하게 해석해 왔다.

 

감옥에서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그의 글씨와 그림도 일찌감치 정평이 나 있다. 대학에서 퇴임할 무렵, 어떤 소주 상표 이름을 붓글씨로 써주고 받은 1억원을 대학에 기부하기도 했고 ‘신영복체’라는 이름의 글꼴로 개발될 만큼, 그의 글씨는 독특한 개성과 빼어난 품격을 자랑한다.

 

소박한 그림과 함께 예의 글씨로 써 놓은 것은 선생이 쓴 글을 이루고 있는 글귀들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물론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의 저작에서 가려 뽑은 이 길지 않은 글귀들은 쇠귀 선생의 깊은 사유와 성찰의 오롯한 열매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한갓진 미사여구가 아니라 삶과 시대에 대한 그윽한 아포리즘이라고 하는 게 옳다.

 

"작은 봄꽃 한 송이를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도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더구나 추운 겨울을 겪어야 합니다.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키기 때문입니다." (3월)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장미가 아니라 함께 핀 안개꽃입니다." (5월)

"백천학해(百川學海), 모든 시내가 바다를 배우는 까닭은 바다가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도 같습니다." (7월)

"붓글씨를 쓸 때,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字)의 실수는 그 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 자로 보완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행(行)의 결함은 그 다음 행의 배려로 고쳐갑니다. 이렇게 하여 얻은 한 폭의 서예작품에는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고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는 다사로운 인정이 무르녹아 있습니다." (11월)

▲교사 책상 위에 놓은 참교육 달력은 아주 요긴한 교육 활동의 보조자 역할을 한다 .
▲ 2007년도 참교육 달력 열두 장마다 담긴 건 쇠귀 선생의 아포리즘이다 .

 

[2007년] 신영복 선생의 말씀을 나누면서 시작하는 하루

 

책상 앞에 놓인 달력에 담긴 선생의 말씀을 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치곤 했다. 그러다 선생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을 누구와라도 나누고 싶어졌다.

 

지난 2월 말, 나는 그 두 달쯤 전에 연 내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3월 달력을 스캔해 올리고 ‘삼월을 맞으며’라는 글을 썼다. 그리고 아홉 달, 나는 무슨 약속인 듯 숙제인 듯, 월말이면 다음 달치의 달력을 스캔하고 거기 담긴 말씀을 되뇌는 글을 썼다.

 

쇠귀 선생의 사유와 성찰을 아둔하게 되짚어 본 시원찮은 글이었지만 선생의 글과 그림이 깊고 그윽하여 이웃들이 즐거이 읽어주었던 것 같다.

 

선생의 글이 가진 함의는 넓고도 깊다. 그러나 그 바탕은 늘 공동체의 선과 이해, 대중에 대한 굳건한 믿음, 역사와 진보에 대한 희망으로 넉넉하다.

 

선생은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連帶)가, 실천적 연대보다 입장의 동일함"을 ‘관계의 최고 형태’로 이해한다. 그는 또 ‘지식은 책속에 있지 않고 ‘경험과 실천’ 속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대상에 대한 인식과 서술’은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랑은 장미가 아니라 함께 핀 안개꽃’이라는 쇠귀의 글에 붙여 나는 그렇게 썼다.

 

▲ 블로그 글 목록. 밑줄 친 글이 달력과 함께 쓴 것.

"저 홀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장미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핀 ‘안개꽃’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는 지은이의 진술과 이어지는 ‘사랑과 연대’의 꽃이다. …우리는 아주 습관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사랑’과 ‘투쟁’을 반대편에 놓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

쇠귀 선생의 말처럼, ‘증오가 사랑의 방법’(<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역설이 진실이듯, 투쟁이 사랑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랑은 투쟁’이면서 동시에 ‘투쟁은 사랑’이다. 투쟁은 단순한 사랑의 수단을 넘어 그 과정이면서 목적이다. 그것은 사랑의 진정성과 완결성에 대한 뜨거운 반대증명이기도 하다." - ‘5월, 그 함성으로’에서

 

그리고 어느새 한 세상이, 한 시대가 저무는 12월, 다음 시대를 예비하는 만만찮은 시간의 격랑 속에 우리는 서 있다. 지난 시절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새로 맞이할 시대에 대한 맹목으로 이어지는 이 반동의 흐름 가운데 선생이 쓴 ‘지남철’을 읽는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指南鐵)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만일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2월)

 

지남철의 떨림은 ‘불안’이나 ‘유약’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지워진 책무의 명징한 깨달음이요, 늘 그것을 잊지 않고 있음의 징표다. 따라서 그것은 한 시대를 온전히 바라보고 지켜야 하는 지식인의 자세라고 선생은 말하는 것이다.

 

선생은 또 그렇게 말했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이라고. 반드시 기온 탓이 아니라도 쓸쓸하고 우울한 계절, 2007년의 막바지에 나는 문득 이 겨울에 자랄 우리의 성장, 그 나이테를 생각해 보았다.

 

[2008년] 이번엔 도종환 시인의 시와 송필용 화백의 그림

 

역사나 세상의 부침과는 무관하게 시간과 세월은 무한 반복의 순환을 계속한다. 어저께 나는 2008년도 ‘참교육 달력’을 받았다. 이번에는 어렵던 비합법 시절, 참교육의 깃발을 지켰던 도종환 시인의 시와 송필용 화백의 그림으로 꾸민 달력이다.

 

조그만 2008년도 탁상 달력 속에서 도종환 시인은 노래한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 ‘희망의 바깥은 없다’ 중에서

 

달력은 가둘 수 없는, 그러나 그것으로 아퀴지어지는 우리들 삶, 그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한장 한장, 넘기고 찢으면서 쌓이는 세월의 잔해와 함께 우리들 삶도 깊어지고 두터워진다. 지난달의 낱장을 넘기며 그 행간에 적힌 메모 두어 줄, 동그라미와 화살표 몇 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세월과 작별하고 이렇듯 무심히 다가오는 새날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 2008년도 참교육 달력은 도종환 시인의 시와 송필용 화백의 그림으로 꾸몄다 .

 

2007. 12. 19. 낮달

 

 

 

새학기 책꺼풀? 변소 뒤지? 이젠 '시간그릇'

시간의 나침반, 나의 '참교육 달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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