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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손석희의 ‘JTBC 뉴스’를 시청하면서

by 낮달2018 2020.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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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전뉴스 속에서 ‘JTBC 뉴스’의 선택

▲ <JTBC> 뉴스는 공중파가 외면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충실히 보도하고 있다. ⓒ <JTBC> 갈무리

아내가 공중파 뉴스를 포기하고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9시 뉴스를 보기 시작한 것은 지지난 주부터였다. 나는 어쩐지 마음이 내키질 않아서 건성으로 흘낏거리기만 했다. 지난 정권과 야합해 태어난 태생이 마뜩잖아서였고 ‘조중동’의 일원인 <중앙일보>가 모태라는 것도 걸렸을 것이다. 지난 24일 밤, ‘9시 뉴스’를 처음으로 시청하게 된 것은 그간 <JTBC> 뉴스가 받아온 평가를 확인할 겸 아내의 권유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공중파 텔레비전 뉴스를 안 본 지 꽤 시간이 지난 듯하다. 지난해 대선이 끝나고 난 뒤부터 나는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나중에는 자연스레 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서울방송(SBS)> 8시 뉴스는 띄엄띄엄 보았는데, 두 공영방송의 빈자리를 메꾸기에는 민간 상업방송 <SBS>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것도 시들해졌었다.

 

공영방송 뉴스의 몰락, ‘동물의 왕국’ <MBC>

 

공중파 방송의 뉴스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이명박 정부부터다. 자신의 언론특보를 이들 공중파 방송의 사장으로 내려보낸 이래, 주군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려 한 이들 사장 덕분에 <KBS>와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공정·불편부당’에서 벗어나 추락하기 시작했다. 케이블 뉴스채널인 <와이티엔(YTN)>도 특보 사장이 부임하면서 공중파 못지않은 전횡을 저지르면서 기자들 여러 명을 내쫓았다.

 

공중파 가운데서는 특히 노조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문화방송(MBC)>은 거의 막장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구성원들의 요구에 대해 경영진은 징계의 칼날을 마구 휘둘러댔고, 현재까지 적지 않은 해직자를 낳은 것은 알려진 대로다.

 

경영진이 권력의 심기를 헤아리는 사이 공영방송 보도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이 여론을 달굴 무렵에 <MBC>의 ‘뉴스데스크’ 상위 10개 리포트 가운데 정작 이를 다룬 아이템은 3개에 그쳤다. 반대로 고양이, 개, 반달곰 등 동물 관련 아이템은 무려 7개나 되면서 뉴스가 ‘동물의 왕국’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던 데에 <MBC> 뉴스의 현주소가 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MBC> 뉴스데스크는 동물 관련 아이템에 집중하면서 '동물의 왕국'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으로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상황은 더 꼬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눈치라도 보았던 <한국방송(KBS)>은 노골적인 친정부, 친 권력 방송의 길을 선택했다. 대통령 취임 이래 <KBS> 메인 뉴스인 ‘뉴스9’에서는 평균 1.8일에 한 번꼴로 박 대통령을 관련 소식을 다루어 그예 ‘땡전뉴스’를 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땡전뉴스’의 재현, <KBS>

 

국가 기간 방송, 공영방송의 맏형으로서 구실을 다해야 할 한국방송의 ‘KBS 뉴스’가 대통령 동정 소식으로 넘쳐나 국정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나마 어쩌다 ‘KBS 뉴스’를 기웃거리다가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곳곳에 널려 있다.

▲ <KBS> 뉴스에서 평균 1.8일 만에 대통령 소식을 다루면서 '땡전뉴스'의 재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정 정파의 이익에 기울어지거나 의도적으로 사실(팩트fact)를 누락하게 되면서 뉴스는 수용자로부터 불신을 받게 됨은 물론이거니와 뉴스 자체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신군부 집권기 동안의 ‘땡전뉴스’가 그랬고, 이명박 정부 이래 공영방송에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000>에는 00가 없다’는 보도 비평이 이어진 것도 그랬다.

 

이명박 정부가 조중동에 허가한 종합편성채널 역시 뉴스를 ‘희화화’하는 데 한몫을 했다. 특히 이들 종편의 보도 프로그램들은 대선 무렵에 함량 미달 정치평론가라는 이들을 불러서 수구, 극우적 발언을 중언부언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강화하고자 하는 보수 세대들에게 일종의 최면제 구실을 하게 하면서 그런 혐의는 더욱 짙어졌다.

 

내가 한 달에 두 번쯤 이용하는 이발소의 텔레비전은 늘 <채널A>나 <TV조선>, <MBN>과 같은 종편에 고정되어 있다. 머리를 깎으면서 그 황당한 토론이나 대담 따위를 듣고 있는 건 보통 고역이 아니다. 나는 60대 후반의 과묵한 이발사의 정치적 성향은 알지 못하지만, 이발소 한쪽에서 바둑을 두곤 하는 그의 지인들이 그 방송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공중파의 변질에다 종편의 막장 보도가 기승을 부리는 사상 초유의 언론 상황이 결국은 <뉴스타파>나 <국민TV>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안매체가 비록 편파와 왜곡의 혐의를 벗지 못하더라도 ‘공중파’가 확보한 영향력에 대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 손석희가 교수직을 버리고 종편의 하나인 <JTBC>로 자리를 옮겼다. 손석희에 대한 기본적 신뢰에도 불구하고 나는 씁쓸해했고, 결국 그가 원하는 ‘공정언론’의 시도도 그 태생적 한계에 직면하리라고 보았다.

 

정치의 영역에서 지겹게 목격해 왔듯 단지 ‘선의’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아내가 <JTBC> 9시 뉴스를 시청하기 시작했을 때, 무심하게 그것을 일별하고 만 것은 그런 속내가 드러난 것이었던 셈이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9시 뉴스는 기존 공중파에서 뉴스를 다루는 형식과는 사뭇 달라서 비교적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오랜 방송 경력으로 그의 등록상표가 된 말투와 표정도 뉴스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진부할 듯도 한 그의 클로징 멘트가 진부하지 않게 마음에 닿아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클로징 멘트에 드러난 게 손석희 앵커의 ‘진정성’인지 ‘중앙일보’와 남다른 관계를 지닌 <JTBC> 뉴스의 각오인지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단지 일신의 안일만을 위해서 <JTBC>에 간 것이 아니라면 그의 결단과 포부의 진정성은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같은 날 방송된 두 공중파 <KBS>, <MBC>의 기사와 <JTBC>의 기사를 비교해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공중파들이 마지못해 정치 관련 뉴스를 뒷순위에 넣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반해 <JTBC>의 기사는 사회적 의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두 공영의 ‘몰락’과 종편 <JTBC>의 ‘부상’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는 ‘JTBC 손석희 뉴스’ 30일을 다룬 기사 “MBC의 비극, JTBC에게 기회로 왔다” 에서 “방송에서 ‘조중동’ 프레임은 깨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사 바로 가기]

 

“시청률은 올랐고,
‘JTBC뉴스’를 바라보는 언론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TV조선‧JTBC‧채널A’, 일명 조중동 방송 프레임도 깨졌다.
MBC에 기대했던 공정 보도를 JTBC가 충족시키고 있다.”
          - 위 <기사>에서

 

문외한이니 미디어 전문 기자의 분석에 따로 보탤 게 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JTBC>와 손석희가 보인 결기가 예사롭지 않고, 공중파에 실망한 시청자들이 <JTBC>로 이동한 것은 분명하다. 삼성의 무노조 전략을 단독 보도한 것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움직임이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이를 기꺼워하지 못하는 기분은 몹시 씁쓸하다. 공영방송이라는 두 공중파의 몰락과 뜻밖의 한 종편의 부상이라는 이 대조적 언론 상황은 2013년 현재 이 나라 방송언론의 현주소를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친여, 친 권력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수구 언론들은 ‘국정원 선거 개입’ 같은 사회적 의제를 축소하거나 죽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정권은 여전히 ‘모르쇠’, 오불관언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JTBC>의 결기가 과연 얼마만 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하여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민주 언론, 공정방송을 통해, 기로에 선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2013년 우리의 여정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소임을 다하는 민주 언론 회복을 위해서 수용자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비판적 의식과 관점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충분치 않다는 것뿐일까.

 

 

2013. 10. 28. 낮달

 


위 글을 쓰고 7년이 지났다. JTBC는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 탄핵 정국 등을 지나면서 부동의 뉴스로 떠올르면서 가장 신뢰받는 방송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약진은 전적으로 손석희라는 앵커의 개인적 이미지와 그의 균형잡힌 보도관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두 공영방송 KBS와 MBC가 적폐를 청산하면서 잃어버린 시청자를 다시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JTBC는 다시 공중파의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손석희가 앵커에서 물러나면서 JTBC 뉴스의 시청률은 1~3%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론인 한 사람의 역량이 뉴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케 한다. 

 

지금도 JTBC의 뉴스는 나름대로 균형과 비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하락한 것은 단지 공영방송의 분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JTBC의 자매 언론인 <중앙일보>가 현 정권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폄훼에 앞장서고 있다는 현실을 시청자들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중앙의 사주 홍씨 일가에겐 이게 꽃놀이패일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이 바보는 아니다. 그 시비를 꿰뚫어볼 만큼은 보고 있다는 얘기다.

 

2020.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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