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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2제(題)

by 낮달2018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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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뒤에 숨는 한일 양국 정부

▲ 일본 최고재판소는 혐한 단체 재특회에 1억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 <JTBC> 갈무리

1. 일본의 혐한 시위와 아베 정부

 

어제(11일)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이 전한 국제뉴스 하나. 일본 극우세력의 혐한 시위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가 혐한 시위를 벌인 단체에 1억 원대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일본의 극우단체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치 않는 시민 모임)의 혐한 시위 모습

극우단체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치 않는 시민 모임)는 2009년과 2010년 세 차례에 걸쳐 총련 계열의 교토 조선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수업을 방해하고 혐오 발언(“조선학교를 일본에서 내쫓아라”, “북한의 스파이 양성기관이다” 등)을 일삼았다.

 

학교 앞에서 확성기로 고함을 지르고 시위를 막는 교직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등의 행패를 부리자 조선학교 측이 법에 호소하자 법원이 조선학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재특회의 혐한 시위를 ‘인종 차별’로 인정하고, 1,200만 엔(한화 1억1천여만 원)을 조선학교 측에 배상하라는 오사카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지었다.

 

그동안 일본의 양심 세력이 꾸준히 비판을 제기해 왔으나, 우경화 추세와 함께 혐한 시위는 조선학교나 학생을 위협하는 형식으로 계속 이어져 왔다. 이번 판결로 일본 내 혐한 시위는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베 정부는 혐한 시위의 규제 법안을 마련하는데 여전히 소극적이라고 한다.

 

아베 정부와 집권 자민당이 혐한 시위를 방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혐한 시위를 내버려 둔다? 2014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이는 어딘가 낯익은 풍경이지 않은가.

 

2. 대북 전단(삐라) 살포, 손 놓은 정부

▲ 북한 관련 단체들이 살포한 대북 전단이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다. ⓒ 민중의 소리

현재 남북 경색 국면은 일부 북한 관련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때문에 꼬인 상황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전단 살포는 남북 갈등은 물론이고 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지역주민·시민단체 등과의 ‘남남갈등’까지 부추기는 상황까지 와 있다. [관련 기사]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다.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 등을 이유로 북한은 담화문을 통해 강력히 항의할 뿐만 아니라 위협적 발언과 총격까지 감행하는 등의 민감한 반응 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해선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전단 살포 단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헌법’이다. 헌법에 ‘표현의 자유’가 명시돼 있는 만큼 자신들의 전단 살포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다시 이들의 주장(‘표현의 자유’)이 합법적이어서 다른 법적 규제가 불가능하다며 손을 놓은 정부의 명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부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전단 살포를 막은 적(2012년)이 있는데, 이 근거는 ‘국민 안전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면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최근의 전단 살포엔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정부의 의지가 있었다면 전단 살포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아시아경기 때 북한 고위인사들이 방문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한 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킨 게 대북 전단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당시 회담 성사의 전제가 되다시피 한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 통일부의 입장은 한결같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므로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정부가 이들 단체의 전단 살포를 말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전단 살포에 참여한 단체는 모두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다. 행정자치부에서는 지난 4년간 9억3,600만 원을 이들 단체에 지원했고 통일부에서도 전단 살포에 참여한 북한민주화추진연합회 등에 3년간 7억 원을 지원했다고 하니 말이다.

 

3.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필수적인 기본권으로 일러지지만, 헌법에 같은 이름의 조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규정은 크게 세 가지다. 18조(통신의 비밀), 21조(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 22조(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그것이다. [헌법 조문 참조]

 

이는 통신이든, 언론·출판, 집회·결사든, 학문과 예술이든 그것의 본질적인 영역이 바로 ‘표현’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따라서 이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다 보니 정부에서 필요한 규제를 할 수 없다? 얼핏 들으면 감동적인 원론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얘기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두 나라 모두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내세우면서 정작 마땅히 지켜야 할 국가의 의무를 게을리하거나 내버려 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극우세력의 혐한 시위는 일종의 증오범죄다. 그것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한 바와 같이 ‘인종 차별’이며, 인종적 편견을 바탕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그 신상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보편적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재로 받아들이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극우세력들의 준동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뒤에 숨어서 방임하고 있다. 국가의 의무를 말하기 전에 이는 우경화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졸렬하고 비열한 행위일 뿐이다. 하긴 아베 정부는 이미 세계에서 인류에 관한 범죄로 판정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조차 거부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긴 하다.

 

헌법엔 ‘개인의 권리 제한’ 조항도 있다

 

정부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규제하지 않은 걸 일본의 경우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북 간 긴장 완화나 화해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만만찮은 장애였던 대북 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것은 기본권의 제한으로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며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두루 알다시피 정부가 내세운 ‘표현의 자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무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권리가 아니다. 이는 굳이 관련 사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을 다하지 못한 변명으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울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헌법엔 표현의 자유만 있는 건 아니다. 거기엔 국가안전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엄연히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헌법 제37조 2항)

 

2014. 12.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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