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대구·경북은 ‘보수꼴통’? 맞잖아!

by 낮달2018 2020. 10. 24.
728x90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대구·경북의 ‘보수꼴통’  논란

▲ 동창 체육대회의 전두환. 뒤편에 봉황 장식이 선명하다. ⓒ 대구공고총동문회 누리집

국정감사에서 나온 야당 의원의 ‘대구·경북은 보수꼴통’ 발언으로 대구 경북이 ‘들끓고 있단다’. 아니, 지금 우리 주변은 조용하고 잠잠한데? 물론이다. 대중들이야 그런 발언에 귀를 쫑긋 세울 만큼 한가하지 않으니 말이다.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보수꼴통’ 논란

 

발단은 이렇다. 대구시와 경북도 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권영길(민주노동당), 김상희(민주당) 의원의 질의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구·경북은 보수 세력의 총본산이라고 하는데, 두 분 교육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심지어 폄하하는 용어로 수구꼴통 본산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억울하지 않나?” (이상 권영길)

“과거 대구·경북은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였는데 발전이 안 되고 낙후돼 있다. 보수꼴통적 사고 때문에 대구가 이 지경이 됐다.”(김상희)

 

대중들이야 잠잠할 수밖에 없으나 가만히 있어선 안 되는 곳도 있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다. 두 의회에서는 서둘러 성명을 내거나 사과 요구 서한을 보냈다는 것이다.

 

“두 의원의 지역 모독 발언에 550만 시·도민들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즉각적인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 (대구시의회)

“민노당 권 의원은 소속당의 대표를 역임하신 바 있으며 민주당 김 의원은 제1야당의 명망 있는 비례대표로 책임 있는 국민의 대표인데 국감장에서 지역민을 ‘보수꼴통’이라고 매도해 대구 경북 민의 자긍심과 명예에 상처를 줬다.”(경북도의회)

 

▲ 대구공고 총동문회가 제작한 DVD

두 의원이 자신의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고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일단 파문은 가라앉고 있는 듯 보인다. 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양 시도 의회에서 성명과 사과 요구를 했다고 하긴 하지만 어쩐지 그건 그냥 그렇고 그런 요식행위가 아닐까 하는.

 

‘보수꼴통’에서 그들을 화나게 하는 건 ‘꼴통’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보수’라고 불리는 데 대해서는 별 이의가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신의 보수가 이 나라의 발전에 매우 유효한 태도라는 자부심조차 가진 게 틀림없다.

 

나는 궁금한 게 정작 ‘꼴통’ 노릇을 한 대구·경북 사람들은 이런 식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다. 글쎄, 내 주변에 물어볼 만한 사람들은 죄다 최소한 ‘꼴통’은 면한 사람이라 그렇다. 어제부터 ‘어떻게 생각해? 대구·경북이 보수꼴통이라는데’ 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거의 비슷하다.

 

“맞잖아요?”

“제대로 봤네.”

“보수라면 할배라 부르겠다. ‘수구’ 아니야?”

 

꼴같잖게 이런 문제에 가타부타하는 건 별로 재미없겠다. 어떤 형식으로든 한 지역이 보여주는 정치적 성향 판단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보수’거나 ‘수구’라는 판단을 하는 것은 그간 이 지역이 보여준 여러 정치·사회적 선택에서 비롯한다.

 

여당이라면 작대기만 꽂아 놓아도 당선된다는 각급 선거의 결과를 굳이 들 일은 없겠다. 나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며 여전히 이 지역에서 사는 지역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남 한쪽의 설명할 수 없는 보수성과 수구적 사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 ‘보수꼴통’ 논란 앞에서 문득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 1. 전두환 대신, ‘그 사람’이라면 밀어줄라요

 

대구·경북 지방에는 더러 떠도는 이야긴데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5공 청문회가 한창이던 시절, 동대구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전두환이, 참 그 인간 도둑놈이데요. 우째 그리 뻔뻔한 동…….”

“그렇지요. 그런데 그런 인간에게 이 지역 사람들은 목을 맸잖아요?”

“글쎄, 말입니다. 그런 도둑놈에게 속은 거지요. 그런데 참, 이번 청문회 보면서 느꼈는데요. 그 사람 만약 대통령에 나서면 한 표 찍어줄랍니다.”

“누구…요?

“아, 장세동. 그 사람, 진짜 사나(이)지요. 딱 됐십디다.”

“…….”

 

적어도 5공 청문회에 불려 나온 장세동은 이 지역에선 ‘스타’였다. 도합 수십 개의 ‘똥별’(장군)들이 비굴한 미소를 흘리며 자신의 ‘면책’을 강변하고 있을 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만하게 청문에 응한 권력자의 수족은 이 지역 시골 사람에게는 마치 ‘의리의 화신’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장세동이 지역의 술집 마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수도 서울과 멀리 떨어진 이 남부지방의 순박(?)한 주민들은 ‘깡패의 의리’와 ‘대의명분’, ‘절조’를 종종 혼동하곤 한다. 권력을 위해서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학살조차 그들의 판단에 아무런 변수가 되지 못한다. 광주는 여전히 이 지역에선 ‘사태’다. 광주항쟁을 ‘진압’한 것은 ‘각하’의 ‘용단’이라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 모교 방문 전두환의 화려한 나들이, 4박 5일

▲ 대구공고 동창회 체육대회 . '각하 내외분 만수무강' 현수막 앞에 말을 잊는다.

 

“전두환은 지난 9일 대구공고 51회가 개최한 ‘졸업 30주년 기념 사은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이튿날에는 모교에서 열린 총동문회 체육대회에도 참석했다.”

“동문들은 전두환의 팔순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들고 입장했다.”

“동문들은 운동장 바닥에 엎드려 전두환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학교 곳곳에는 전두환의 건강을 기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일부 동문은 입장하며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 쓰인 현수막을 들었다.”

“동문들의 큰절을 받으며 손을 흔드는 전두환 내외의 뒤편에는 대통령 문장인 봉황 장식이 선명했다.”

 

전두환은 이 학교 동문회 누리집과 참석 동문들에게는 여전히 ‘각하’다. 행사를 마친 동문이 올린 글을 보면 ‘성은’에 대한 ‘감읍’이 넘친다. 이들 앞에서 역사는 시방 멈춰 있다. 이들에게는 신군부가 주도한 쿠데타, 광주학살, 이후 군부독재의 기억조차 동문의 권력과 연관된 시간일 뿐이다.

 

동문뿐이 아니다.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두환을 ‘경상도 대구 출신의 권력’으로 이해하고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시절을 일종의 ‘태평성대’로 이해하기도 한다. 무지렁이 서민들만이 아니다. 알만한 이들도 ‘전통’이라고 하면서 묘한 회고의 정서를 내비치기도 하니까 말이다.

 

시간이 멈춰 있는 곳, 그것이 대구·경북이다

그게 대구·경북이다. 부산·경남이 이번 6·2 지방선거를 통해서 한 꺼풀 그 구각을 벗어 던졌다면 여전히 대구·경북의 몸은 둔중하다. 지역 기반의 여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통해서 이들은 권력을 창출한 지역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비록 그 권력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권력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기도 한다.

 

서민들이 계급 배반 투표에 임하는 것은 상층계급에 편입되고 싶은 소망과 무의식의 반영이라고도 한다. 정작 권력의 과실을 누리지도 못하면서 지역 사람들이 끊임없이 ‘경상도 권력’을 지향하는 것도 그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세대들도 기성세대의 성향과 태도를 무반성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딸애는 자기 주변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정치의식’에 기겁을 하곤 한다. 일부겠지만 이들의 ‘몰역사적’, ‘탈정치적’ 태도는 이 시대착오적 지역 문화의 튼실한 자양분이다.

 

인근 지역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시민운동과 농민운동의 활동가는 모두 낙선했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득표율로. 대도시인 대구는 그나마 체면치레라도 했지만, 농촌 지역인 경북은 여전히 깜깜하기만 하다. 이 지역이 ‘보수꼴통’에서 최소한 ‘꼴통’을 벗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 지역에 살면서 저들의 ‘수구적’ 사고나 태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의 면책을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각 개인의 성향과 무관하게 한 지역 공동체가 드러내는 정치적 이념적 태도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오랜 구각을 깨고 변화를 선택하는 게 언제쯤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이 이르면 이를수록 이 나라의 역사와 민주주의는 그 내용에서 한 단계 상승된 변화를 보이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동력은 결국, 이 지역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에서 나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2010. 10. 22.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