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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토요 휴무와 ‘성(聖) 금요일’

by 낮달2018 202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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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요 휴무 앞 금요일에 ‘성’을 붙이는 이유

▲ 토요 휴무일은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학교에 주5일제가 시작되고 반년이 지났다. 매주 토요일마다 등교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출근할 필요가 없는 교사들에게도 이 제도는 복음이다. 예전 같으면 엿새 동안 할 수업을 닷새에 몰아서 해야 하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매주 이틀을 쉴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러나 이 제도는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전임 학교도 그랬지만 학교는 법적으로 쉬게 되어 있는 토요일에도 아이들을 ‘자율학습’의 이름으로 등교시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들은 등교해서 오전 내내 ‘자습’해야 한다. 이들을 ‘감독’하기 위해 학년별로 몇 명씩 담임교사들이 당번을 선다.

 

본교에선 비담임이니 내겐 토요일 출근의 부담은 전혀 없다. 대신 부설 방송고 담임을 맡고 있어서 2주마다 일요일 근무가 기다리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평균 4시간 수업을 해야 하는 일요일 근무도 만만치 않지만, 다행히 토요일에 하루를 쉰 뒤여서 부담이 덜할 뿐이다.

 

토요 휴무 전날, 성 금요일

 

지난 1학기는 좀 끔찍했다. 주당 25시간 수업이었으니 종일 수업을 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동안 쭉 사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해 오면서 그 정도의 수업 부담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독 올 1학기가 힘들었던 것은 남학생과 수업하는 데 쉬 적응하지 못해서지만, 근력이 지난해 같지 않은 탓도 있다.

 

2학기 들면서 수업이 줄었다. 정규수업도 한 시간 줄고, 보충은 두 시간이 줄었다. 월요일 0교시 보충수업도 없어졌다. 월요일 첫 수업은 3교시부터다. 갑자기 주어진 이 넉넉한 시간 앞에 나는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거의 매일 비는 시간이 두 시간 달아서 있으니 수업 준비하는 시간도 넉넉해졌다.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은 금요일이다. 0교시와 8교시 보충수업까지 있는 날이다. 그런데도 금요일은 아침부터 몸이 가볍다. 한 주가 끝나는 날이고, 다음 날 토요일은 휴무이다. 이제야 이 ‘성(聖) 금요일’의 의미가 새록새록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8교시 수업을 마치면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낀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은 기분은 정말 설명하기 어렵다. 목까지 차오르는 행복감에 나는 가슴이 뻐근해지곤 한다. 금요일이 이렇게 행복한 줄은 정말 몰랐네…….

 

토요 휴무는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쉬고도 다음 날 다시 종일을 쉴 수 있다는 뜻이다. 토요일 밤 자리에 들면서 나는 내일 다시 눈을 떠도 휴일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감격한다. 휴일이 이렇게 길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요즘이다.

 

1학기 때는 수업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날이 많았다.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오늘 수업이 몇 시간인가를 헤아리면서 어떻게 힘을 배분할까를 고민하곤 했다. 어쩌다가 보충수업을 쉬게 되는 날엔 아이들처럼 기뻐하기도 하면서 나는 내 일상이 ‘지리멸렬’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었다.

 

정을 떼려고 그러는가, 아니면 일찌감치 마음이 멀어지면서 몸도 멀어진 것인가. 돌이켜보면 지난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련하기만 하다. 2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진다. 전 학기에 비기면 훨씬 여유로워지긴 했는데도 가끔 수업이 빠지는 걸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어제도 태풍 때문에 정규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하교시키는 바람에 보충 한 시간을 건졌다. 수업에 대한 괴로움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교사들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처럼 학교에 변고가 일어나기를 바라거나 부러 눈병 걸린 아이들과 접촉하여 일부러 ‘감염’되지 않는달 뿐이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 OECD 최고 수준

 

휴무, 휴식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물론 몸과 마음의 신호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의 노동강도도 만만치 않다. 단지 지금까지는 젊음과 건강이 그걸 넉넉히 견디게 해 주었을 뿐이다. 새삼 교직 노동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엄살을 떨 생각은 없다.

 

현대와 기아자동차 노사가 ‘야간근무 폐지’에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4.6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뉴스도 이어진다. 다만 최근 5년 사이 근로시간 감소 속도는 가장 빨랐다는 소식은 다소 위로가 될까.

 

여전히 야간근무와 40시간을 훌쩍 넘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 앞에 ‘성 금요일’ 운운은 사치다. 토요 휴무와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일요일에도 등교해야 하는 고3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종이 울린다. 나는 습관적으로 교과서를 챙겨 교실로 향한다.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졸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가면서 중세 문학을 가르쳐야 한다. 마치 무덤과도 같은 그 침묵의 시간마다 나는 다시 이 ‘혹성탈출’의 시간을 가만가만 헤아려본다.

 

 

2012. 9.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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