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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그도 그 ‘험한 꼴’의 일부가 아닌가?

by 낮달2018 2020.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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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보수우익’의 ‘백기사’?

▲ <조선일보>의 인터뷰 기사 ⓒ 조선닷컴

<조선일보>가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 기사(2010.9.5)를 실었다. 글쎄, <조선>이 굳이 이문열을 만난 것은 인터뷰 서두에 나온 대로 ‘인사청문회-유명환 딸 특채 파동’ 등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이 ‘보수우익 작가’로부터 ‘쾌도난마’식 해법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문열은 요즘 같은 ‘보수가 몰리는’ 시기에 등장하는 우익의 ‘백기사’ 노릇을 계속해 왔으니 말이다.

 

그는 현시기에 대해서 “정말 험한 꼴을 못 봐서 그렇다”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물론 이 비판이 겨냥하는 곳은 보수 진영이다. “좌파에 정권뿐만 아니라 국회 권력까지 다 넘겨줘 봐야 정신 차릴까? 한심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정신 차릴 주체’를 따로 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 보수는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배와 같다’라며 보수가 져야 할 책임을 더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그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수십만 부가 팔려나간 데 대해 ‘정의’와 ‘국가’의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대한민국은 없거나 있다 해도 절명 직전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을 나서서 지키려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그 나라가 온전히 존속될 수 있겠는가?”라며 국가 없는 정의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한다.

 

그는 “좌파에게는 이념만 있다. 정의도 없고 대한민국은 더더욱 없다”라고 단정하면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좌파나 젊은이의 견해를 보라.”라고 일갈한다. 그는 자신이 지원하는 “‘부악문원’(이문열이 지은 문학서원)에 오는 작가 지망생이나 신진작가 10명 중 9명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 그런 판에 무슨 정의요 대한민국인가?”하고 탄식한다.

 

그의 ‘대한민국’과 우리의 그것은 무엇이 다른가?

 

나는 그의 대한민국과 나를 포함한 그가 비난하고 있는 ‘좌파’나 ‘젊은이’들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구성원으로서 ‘나’가 국가를 인식하는 형식으로서의 ‘국가 정체성’이란 단일한 형태로만 드러나지 않으며 다양한 층위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자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발표를 믿고 옹호하는 것이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는 유일한 잣대인 것처럼 보인다. 정부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게 국가를 부정하거나 친북 의식이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가 우려한 ‘험한 꼴’을 일으킨 도그마의 출발점이다.

 

그는 자신의 부악문원에 오는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조차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정의’와 ‘대한민국’을 부정해 버리는 비약도 서슴지 않는다. 나는 그가 말한 작가 지망생들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평균적 국민의 인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이들로 보는 게 훨씬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소통에 대해서도 “책의 내용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이 작가와 관련된 일방적인 비난성 댓글들이 도배”되는 데 대해 ‘불통(不通)’이라면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그들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내가 화가 나는 사람들은 좌파도 아니면서 부화뇌동하는 ‘덩달이’들”이라고 했다.

▲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해 다른 의견을 표명해도 그는 무조건 '좌파'로 규정하는 듯하다.

글쎄, 그가 인터넷에서 당하는 근거 없는 비난과 불통 상황에 대한 그의 반론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고, 책임은 당사자들이 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반대자’들을 무조건 ‘좌파’로 규정하거나 ‘부화뇌동자’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그것은 그가 말한 ‘우리 사회의 양식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러 우중으로 매도되기도 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세상과 삶을 평균적인 상식과 순리로 이해하는 이들이다. 여름휴가 때 작가를 초대한 대통령을 압도적 표 차로 뽑은 것도 그들이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참패를 안긴 이들도 그들이다. ‘경제 살리기’를 기대하며 표를 던졌지만, 그들 가운데 70%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그것이 이른바 ‘민심’이고 ‘여론’이다.

 

그런 민심을 헤아리는 것이 정치와 권력의 구실이고 임무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지 못한 결과가 민심의 이반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결과적으로 천안함이든 청문회, 유명환 파동이든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잘못은 전적으로 정부와 권력에 있다.

 

‘험한 꼴’을 낳은 건 성찰 없는 권력

 

결국 이문열이 염려한 ‘험한 꼴’이 국민의 마음을 살펴 얻지 못한 결과라면, 그런 험한 꼴을 초래한 것은 권력과 기득권 계급의 ‘성찰’ 없는 독주다. 그리고 반대파들을 ‘비국민’, ‘무정의’의 ‘좌파’로 모는 이문열 식 현실 인식과 태도 역시 그 일부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후배 작가들의 태도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요즘 후배 작가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다수는 ‘보수 꼴통이다’라며 슬슬 피해버리고 그나마 소수들도 그저 자기 학급의 우등생 대하는 정도”라고 술회했다. 그는 그게 몹시 섭섭했던 모양이지만 나는 차라리 거기서 안도감을 느꼈다.

 

작가란 모름지기 세계와 질서의 파괴자이며 창조자다. 따라서 작가는 세계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파악하여야 하며, 그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2010년 현재, 작가 이문열이 보여주는 퇴영적이며 편향적인 극우 보수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최소한, 존경받고 계승되어야 할 유산이 아닌 것은 스스로 명백하지 않은가.

 

그는 다음 작품의 구상과 관련해 “지난 10여 년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소설적인 인물”이 ‘황장엽 선생’이고, “그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북분단 60여 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그 삶에 비극과 결단, 권력과 배신 등이 다 녹아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작가로서 그가 무엇을 쓸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다. 그러나 ‘남북분단 60여 년’이 고스란히 드러난 인물이 어쩌면 황장엽뿐일까. 글쎄, 작품의 저변에 깔린 의미보다는 그저 작가의 이야기를 좇는 데 급급한 얼치기 독자로선 그가 그려낼 황장엽은 <영웅시대>의 주인공 이동영과 대척점에 서게 되지 않겠는가를 씁쓸하게 예측해 볼 뿐이다.

 

사족 하나. 그는 항간의 문화관광부 장관 하마평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그와 관련된 아무런 제의도 받은 바 없고’, ‘그런 제의가 와도 안 한다’라고 밝혔다. 글쎄, 이 답이 얼마만큼 진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드러낸 그의 속내 가운데 이는 우리가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배우 출신의 전임 장관이 보여준 ‘완장’의 횡포가 어떤 형식으로 우리 문화예술계에 어떤 퇴행을 가져왔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0. 9.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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