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가협회와 합천군 유림회의 성명에 부쳐
최근 한국소설가협회와 경남 합천군 유림회에서 낸 성명이 화제다. 한국소설협회에서는 지난 27일 국회 법사위에서 추미애 장관이 했다는 혼잣말 “소설을 쓰시네”에 대해 항의하면서 공개 사과를 촉구했고 합천군 유림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 재직 때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며, 합천군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두환 흔적 지우기”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것이다.
어떤 단체든 그 단체의 정체성 등과 관련해 의견(입장)을 밝히거나 관련한 사회적 발언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고 권한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사사로운 푸념이 아닌 이상, 이들의 비판도 역시 또 다른 비판 앞에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1. 한국소설가협회의 성명, 그럴 순 있어도 ‘오버’가 아닌지
사단법인 한국소설가협회(아래 협회)의 성명을 이끈 추 장관 발언은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이 법무부 차관에게 추 장관 아들 군 복무 시절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해 질의했는데, 이를 듣던 추 장관이 뇌까렸다는 혼잣말이다. 추 장관은 질의 내용을 가리켜 “소설을 쓰시네”라고 했고, 이에 윤 의원은 “국회의원이 물어보는데 장관이 그 자리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소설가냐”라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이 한편의 소극에서 드러난 야당 국회의원과 법무부 장관의 공방에 대한 평가는 논외의 문제다. 또, 협회에서 야당 편을 들고 있다는, 일부 여당 지지자들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다분히 기계적 중립을 의식한 조치지만, 협회에서는 ‘소설’ 운운한 야당에도 항의를 이어갔으니 말이다. 추 장관의 “검찰개혁 반대 세력의 무차별 공격” 주장에 대해 “재미있는 소설 한 편 잘 읽었다”라고 비꼰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에게는 협회에서 항의 공문을 보내겠다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협회가 문제 삼은 것은 장관의 발언에 드러난 ‘소설’의 의미다. 협회는 성명서(관련 <미디어 오늘> 기사)에서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며 “‘소설 쓰는’ 것을 거짓말하는 행위로 빗대어 발언해 소설가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준 정치인들에게도 엄중한 각성을 촉구한다.”라고 밝힌 것이다. (관련 기사 : 떠들썩한 소설가협회 성명 쓴 이사장 “가만있을 수 없었다”)
협회는 ‘허구’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소설에서 ‘허구’는 “거짓말과 다르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국민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소설을 ‘거짓말’에 빗대어 폄훼”하는 것은 “소설가들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와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는 ‘문학을 융성시키는 일’과도 어긋난다고도 했다.
“정치 입장을 떠나서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소설을 ‘거짓말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하는 현실 앞에서 이 땅에서 문학을 융성시키는 일은 참 험난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치 입장을 떠나서”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장관의 발언을 ‘소설가 폄훼’로 보기 어렵다는 내 생각도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다. 협회에서 소설가 폄훼를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고 해서 장관이 난처해진 것도, 반대로 야당이 유리해졌다고 볼 만한 정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언어로 인용한 말, 전문가 집단의 정색
문학과 소설을 공부했지만, 나는 장관의 발언이 소설과 소설가를 ‘폄훼’했다고 하는 데 동의하지 못한다. 10년 전에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한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과 관련해 아나운서연합회에서 규탄 성명을 낸 것과 이를 동렬에 두고 비기는 건 곤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허구’는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것이 그려내는 삶이란 ‘진실한 이야기’라는 소설 원론을 굳이 이 소극에 적용할 일이 있을까. 장관이 말한 ‘소설’은 곧 ‘허구’를 말하지만, 보통 독자들에게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고 더 쉽게는 종종 ‘거짓말’이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즉 허구를 ‘거짓말’로 읽기도 하는 독자들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라고 해서 그런 독자를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협회에서는 ‘소설 쓴다’를 ‘거짓말’로 단정 지었지만, 추 장관은 ‘거짓말’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가 언급한 ‘소설’은 오히려 ‘꾸며낸 이야기’라는 뜻으로 읽는 게 훨씬 타당해 보인다.
결국, 한국소설가협회에서 느닷없이 낸 항의 성명은, 국회에서의 여야 공방이 소극이었던 것처럼 또 다른 한 편의 소극으로 끝날 듯싶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과 정부 각료가 대중의 언어로 인용한 ‘소설’을 전문가 집단인 소설가협회에서 정색하고 항의한 것은 오히려 ‘과잉 반응’으로 정리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2. 합천군 유림회, 가다듬어야 할 것은 ‘수오지심’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를 살아온 국민들의 경험칙은, 안보는 튼튼하여 베개를 높이 했고, 치안은 안정되어 생활하기 편했고, 집값은 안정되어 계획구매가 가능한 희망의 시대였고, 물가도 안정되어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마치 요순임금 치세를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합천군 유림회(아래 유림회)에서 <합천신문> 최근호에 실은 “전두환 대통령 흔적 지우기를 추진하고 있는 언론 등 외부단체 규탄 성명서”의 일부다. 유림회는 성명에서 최근 합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두환 관련 기념물을 철거해야 한다’라는 논의를 절대 반대한다며 “전두환 대통령 흔적 지우기를 추진하고 있는 언론 등 외부단체의 만행을 규탄”했다. (관련 기사 : 합천군 유림회 “전두환 대통령 재직시 태평성대 구가”)
두루 알다시피 합천은 전두환의 고향이다. 합천에는 그의 아호를 따서 붙인 ‘일해공원’(옛 새천년 생명의 숲), 그가 쓴 ‘창의사(彰義祠)’ 현판, 합천군청 뜰의 ‘기념 식수 표지석’, 그리고 군에서 관리하는 생가가 있다. 성명은 진보 정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이런 흔적들 지우기를 촉구한 데 대한 유림회의 대응이다.
유림회는 전두환 흔적 지우기를 가리켜 ‘분탕질’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추진하는 이들을 ‘철 지난 홍위병’이라 깎아내리면서 이 “묵과할 수 없”는 “외부단체들의 만행을 규탄하고, 이에 동조하는 합천인이 있을 시에 이를 단호히 배격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유림회는 또 이 시민단체들을 ‘외부단체’라며 이들에게 “역사를 파괴하거나 조작하지 말라”, “무슨 권한으로 합천인을 지배하려 드는가”라고 경고했다. 외부단체들은 “합천인의 자존감을 더 이상 훼손 말고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야기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합천의 역사인 전두환 대통령의 역사를 물리적으로 지우려 든다면 합천 유림은 죽창이라도 들 각오로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지역 유림은 조선왕조의 지배 이념이었던 ‘성리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단체다. 모르긴 해도 합천 유림회의 지향이 ‘민족의 전통을 바탕으로 인의예지를 윤리의 근본으로 삼’고자 하는 성균관 유도회의 윤리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지역성과 애향심에 매몰된 뒤틀린 역사의식
그러나, 이번 성명에서 드러나는 것은 지역성과 애향심에 매몰되고 경직된 역사의식이다. 유림이라면 응당 사단(四端)과 사덕(四德)을 추구해야 마땅할진대, 성명에는 맹목적 지역성에서 비롯된 배타주의로 무장한, 군사 쿠데타로 단죄된 전직 대통령을 두둔하는 결기만 보일 뿐이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여 대통령을 역임한 전두환은 비록 뒷날 사면되기는 했지만,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내란죄와 반란죄의 수괴였다. 또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그 일부를 추징당했으며, 현재 광주 민주화운동의 책임을 추궁받고 있는 범죄혐의자다. 그런 그의 치세를 ‘태평성대’라고 칭송하는 유림회의 몰역사적 인식 앞에서 말을 잃는다. 헌정을 파괴한 내란의 수괴라도 태평성대를 이끌었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를 ‘합천의 역사’라고 우러르는 유림회의 역사의식은 “죽창이라도 들 각오”라는 결기 앞에서 마침내 희화화된다. 그 ‘죽창’은 임금의 실정과 지방 수령의 가렴주구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마침내 창의하면서 든 민초의 병기였다. 이미 국민에게 버림받은 독재자를 엄호하는 데에 그런 ‘죽창’이 가당키나 한가.
조선조의 성리학도 정치의 근본을 백성[민(民)]에 두고, 통치자가 민본·위민의 원칙을 저버리고 부당한 통치를 했을 때 그 통치권은 소멸하고 새로운 통치권을 세운다는 ‘혁명’을 용인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끌어내린 두 차례의 반정(反正)이 그 실례가 아닌가.
헌정을 파괴하고 군부독재와 공포정치로 일관했던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한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그를 다시 역사의 법정에 세워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히려 하는 이때, 합천에서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은 유림이 마땅히 나서야 할 ‘파사현정’의 자세가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일러 ‘역사 왜곡’이라고 한다면 공자가 설파한 ‘정명(正名)’은 어찌 되는가.
합천군 유림회에서 이 몰역사적 성명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유림이 절대 가서는 아니 될, 유학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지금 합천군 유림회에서 가다듬어야 할 것은 사단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일 뿐이다.
2020. 8.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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