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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함께 읽기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by 낮달2018 202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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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 처음 만난 시로 기억된다. 시보다는 시와 관련된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회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애매하게나마 나는 ‘문학’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학과 동시에 들어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소설에만 치우친 책 읽기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주제로 한 시건방진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짓 만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무렵, 동아리의 친구들에게 거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소설이 이동하의 장편, <우울한 귀향>이었다. 삼성문고로 출간(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의 정가는 160원이다, 세상에!)되었던 그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의 방황과 절망을 꼼짝없이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치졸한 일탈들을 얼마나 화려하게 연출하는가가 우리의 주 관심사여서 우리는 깡소주를 마시고 꽁꽁 언 몸으로 도시를 배회하며 제야(除夜)를 꼬박 새우기도 했다.

 

청소년기를 특징짓는 유치한 방황과 거짓 절망 사이를 위태하게 드나들던 우리에게 ‘노오란 해바라기’와 ‘새파란 보리밭’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의심 없이 스스로 자기 귀를 자른 고흐와 그가 그린 불꽃 같은 그림을 떠올리게 하면서 쉽사리 거기 매료되게 하였다.

 

단호한 명령형의 종결어미를 통해 이 시는 ‘차거운 빗돌’로 표상된 비생명(非生命)을 거부하고, ‘노오란 해바라기’와 ‘끝없는 보리밭’, 그 노란색과 푸른색의 선명한 색채대조를 통해, 죽음을 뛰어넘는 역동적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10여 편의 시를 남겼지만, 이 시 한 편으로만 기억되는 시인 함형수(咸亨洙, 1914∼1946)는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을 함께했는데, 해방 직후 3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그의 무덤가에 노란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이 펼쳐져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2005. 11. 28. 낮달

 


새파란 ‘보리밭’과 노란 ‘해바라기’의 조합은 선명한 색채대조를 통해 기대 이상의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이미지 조합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새파란 보리밭이 봄의 풍경이라면 ‘노오란’ 해바라기는 늦여름이 연출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그리는 이미지를 위해서는 어느 하나가 계절을 바꿔서 자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시의 문맥과 현실의 문맥이 반드시 같아야 하는 법은 없긴 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러한 상황을 독자는 무심히 받아들인다. 두 개의 이미지 조합이 현실에서는 가능치 않다는 걸 지적해 준 이는 천리안 애플 시절의 어느 이웃이었다.

 

5월의 보리밭은 막 패기 시작한 이삭으로 풍성해지기 시작할 때다. 그러나 주변에 보리밭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자투리땅에다 보리를 심은 곳이 있기는 해도, 바람이 불면 마치 도미노처럼 넘실거리는 짙푸른 보리 이삭들의 물결을 보기는 어렵다. 농업과 농촌의 변화는 한 시인의 사랑과 꿈이 깃들 보리밭마저 앗아가고 만 셈인지 모르겠다.

 

2007.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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