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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한국독립당2

[오늘] 임정 지킴이 성재 이시영 선생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53년 4월 17일, 부산 동래에서 별세 1953년 4월 17일, 이태 전인 1951년, 이승만의 전횡에 항의하며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은퇴한 성재(省齋) 이시영(1868~1953) 선생이 부산 동래의 임시 거처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그는 “완전 통일의 그 날을 못 보고 눈감으니 통한스럽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시영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인 이유승의 6형제 가운데 다섯째 아들이다. 8대에 걸쳐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였던 이 집안 6형제는 나라가 망하자 3만 섬의 재산(현재 시가로 6백억 원)을 처분한 뒤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6형제의 ‘노블레스 .. 2024. 4. 17.
[순국(殉國)]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서거 1938년 3월 10일, 도산 안창호 병보석 중 타계하다 1938년 3월 10일,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가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간 경화증으로 파란 많았던 우국의 삶을 마감했다. 그는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복역하다가 같은 해 12월에 병으로 보석 되어 요양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향년 60세. 도산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다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상경하여 언더우드(Underwood, H. G.)가 경영하는 구세학당(救世學堂)(밀러학당, 통칭 언드우드학당)에 입학, 3년간 수학하며 기독교 세례를 받았고 서구문물과 접하게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평양에서 관서지부 조직을 맡게 되었다. 이때 평양지회 결성식이 열린 평.. 202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