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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총파업2

종편과 미디어렙…, 언론노조 총파업 종합편성채널의 개국, 언론노조 총파업 1990년대 초반, 내가 살고 있던 시골에는 지국이 없었다. 나는 이웃 시군으로부터 우편으로 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운 좋으면 당일 오후에 신문을 받을 수 있었지만, 대개는 하루가 지난 ‘구문(舊聞)’을 받아야 했다. 1990년대 ‘신문 없는 날’의 기억 어쩌다 휴간이 겹쳐 ‘신문이 없는 날’이 이어지면 마치 ‘지옥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방송도 권력에 손아귀에서 놀던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 의 존재 가치가 그랬다. 요즘 나는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이 맥없이 무너지고, 가 넘어가더니 그예 도 거의 ‘떡실신’ 상태다. 늦게 배운 도둑질.. 2020. 11. 30.
[오늘] 90년 전 오늘, 식민지 시기 최대규모 ‘원산총파업’ 돌입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월 13일,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선언 1929년 1월 13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산하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 식민지기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장 노동자의 파업에서 비롯된 이 대규모 연대 파업은 8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역의 모든 부문 노동자와 총자본이 맞붙은 유례없는 이 파업 투쟁은 일제의 노동정책은 물론 이후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과 노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감독의 노동자 구타로 촉발 원산총파업은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製油)공장 노동자의 파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함경남도 덕원군 문평리 소재,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 라이징 선(Rising Sun) 석유.. 2019.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