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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전업주부2

삼식(三食)이의 ‘가사노동’ 연금생활자의 일상 퇴임한 지 얼추 1년 반이 지나며 연금생활자로의 일상은 얼마간 길이 났다. 퇴임 직후에만 해도 이런저런 생활의 변화를 몸과 마음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부조화가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제 몫을 하는 게 인간의 적응 능력인 것이다. 퇴직자 가운데서는 직장사회와 동료들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게 괴롭지는 않다. 마지막 학교에서 근무하던 네 해 가까이 나는 스스로 고립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떠나는 연습을 거듭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고 하기보다는 곤혹스러웠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10여 시간을 보냈던 학교를 떠나면서 이전에는 사적으로 쓰기 쉽지 않았던 낮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더는 .. 2019. 9. 25.
주말 노동 아내의 요청으로 멸치를 다듬다 지난 9월의 일이다. 아내는 집에 없었다. 군에 있던 아들 녀석이 예고 없이 특박을 나왔고, 딸애는 스파게티를 해 달라는 제 동생의 주문에 따라 주방에서 음식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아예 좌정해 버렸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티브이를 켜 놓고 멀거니 화면에 눈을 주고 있는데 문득 아내의 부탁이 떠올랐다. “언제, 시간 나면, 냉동실에 있는 멸치, 똥 빼고 다듬어 놓아 줘요. 하지만 대가리를 버리면 안 돼요.” 즐겨 먹는 된장이나 국 따위에 통으로 든 멸치를 나는 혐오하는 편이다. 국물에 푸근히 몸을 담가서 우려낸 국물 맛에도 불구하고 물에 불은 놈들의 허여멀건 배때기를 바라보는 기분이 영 께름칙해서이다. 똥을 뺀 멸치를 분쇄기로 갈.. 2019.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