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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의문사3

[오늘] 장준하, 월간 <사상계> 창간하다 1953년 4월 1일 - 장준하, 피난 수도 부산에서 를 창간 1953년 4월 1일, 장준하(1918~1975)는 피난 수도 부산에서 월간 종합잡지 를 창간했다. 장준하는 애초 1952년 8월, 당시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원장 백낙준)의 기관지였던 을 단독 인수하여 본격 종합 교양지를 발행하게 된 것이었다. 은 6·25전쟁 중 국민사상의 통일, 자유민주주의의 확립 및 반공정신 앙양 등 전시하 지식인층의 사상운동을 주도하며 통권 4호까지 발행한 잡지였다. 연구원으로 잡지의 책임 편집을 맡고 있던 장준하가 이를 인수하여 로 제호를 바꾸어 창간하게 된 것이었다. 독립 잡지 양심 세력을 대변하다 은 정부 기관지였지만 이를 바탕으로 창간된 는 백낙준과 장준하가 사재를 털어 만든 독립적 잡지였고, 이후 이승만.. 2023. 4. 1.
23년, 그 ‘어머니의 눈물’ 일흔여덟 어머니 가슴속 아들은 여전히 스물여덟이다 살아 있다면 아들은 쉰둘이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슴속에 아들은 23년 전 스물여덟 살로 살아 있다. 사고로 운신할 수 없는 남편을 부양하며 마산에서 함안까지 오가며 생선을 팔았던 어머니. 대우중공업에 다니던 아들이 집에 다니러 온 날, 아들이 좋아하는 돼지불고기를 해주려고 평소보다 일찍 생선 노점을 접고 돌아왔지만, 아들은 반대로 어머니를 만나러 시장에 가서 길이 엇갈렸다. 그리고 그 불발로 끝난 만남이 모자가 나눈 마지막이었다. 며칠 뒤, ‘민주노조’를 꿈꾸던 아들은 실종되었다. 아들은 결국 아홉 달 만인 이듬해 3월 유골로 돌아왔다. 검찰은 아들이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어머니는 그걸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 2021. 9. 8.
1945년 8월, ‘독수리작전’과 장준하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 무산 해방, 그러나 무산된 ‘독수리 작전’ 역사에서 가정이란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일인가. 소련이 한 주일쯤이라도 늦게 대일본 선전포고(1945.8.8.)를 하였더라면,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8.6.)가 한 주일쯤 일렀더라면……. 안타까운 것은 장준하 선생 등이 광복군 장교로 미국 전략사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 미국 CIA의 전신) 훈련을 받고 참여한 국내 진공 작전이 무산된 점이다. 장준하(1918~1975), 김준엽(1920~2011, 전 고려대 총장) 등이 1944년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배속된 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광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2019.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