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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유대인 학살2

[오늘]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 마침내 법정에 서다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4월 11일, 아이히만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되다 모사드, 15년 추적 끝 학살자 아이히만 체포 압송 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검찰이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한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1962)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아이히만은 ①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수백만 명 학살, ② 치클론-B 독가스 도입 및 운용, ③ 리투아니아 8만 명 학살, ④ 라트비아 3만 명 학살, ⑤ 벨라루스 4만5천 명 학살, ⑥ 우크라이나 7만5천 명 학살, ⑦ 키예프 3만3천 명 학살 계획 입안 등 모두 15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에 대한 단죄는 1946년 9월 30일, 뉘른베르크(Nuremberg) 전범 재판을 통해 이.. 2024. 4. 11.
[오늘]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 교수형 선고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12월 15일, 예루살렘 법정 아이히만에게 교수형 선고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정부가 연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은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에게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이히만이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린 평화는 짧았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Simon Wiesenthal)과 이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 2019.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