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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신한청년당2

[오늘] 국내 불령선인 1호 몽양 여운형 테러에 스러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7년 7월 19일, 여운형 열두 번째로 테러로 서거 1947년 오늘은 동대문운동장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한영 친선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미 군정 체육부장이었던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은 이 경기를 참관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겠다며 차를 집으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몽양, 열두 번째 테러에 스러지다 오후 1시께, 혜화동 로터리 근방에서 트럭 한 대가 갑자기 들이닥쳐 여운형이 탄 자동차를 가로막았다. 이어 20대 청년 하나가 튀어나와 여운형에게로 달려가 2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총알은 여운형의 복부와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그는 절명하였다. 그것은 중국(1929)에서의 두 차례를 포함하여 광복.. 2023. 7. 19.
[오늘] “우리는 우리 장단에 춤추자” 남북 모두가 존경한 독립운동가 별세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12월 10일, 납북된 우사 김규식 만포진에서 별세 1950년 12월 10일,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오래 앓아온 심장병과 천식 등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69세. 그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 자주 국가를 지향했고 중도 노선을 추구한 정치가였다. 남북협상의 실패로 꿈을 접어야 했지만, 그는 남북 모두에서 존경받은 민족지도자였다. 1950년 12월 10일,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오래 앓아온 심장병과 천식 등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69세. 그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 자주 국가를 지향.. 2018.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