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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가와바타 야스나리3

[오늘] 파시스트 작가 미시마 유키오 할복하다 [역사 공부 ] 1970년 11월 25일, 작가 미시마 유키오 할복 자살 1970년 11월 25일,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소(지금의 일본 방위성 본성)에서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가 할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질극 끝에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기자들을 향해 미일안보조약과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자위대 쿠데타를 촉구하는 이른바 ‘이치가야 연설’ 5분 뒤였다. 그의 요구에 따라 자위대원 1천여 명이 집결한 가운데 미시마는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전후 헌법의 개정을 촉구하고 ‘자위대가 무사도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라는 등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위대원들 가운데 그의 연설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고 돌아온 것은 야유뿐이었다. 미시마 유키오, 명예롭게 죽지 못했다 .. 2023. 11. 25.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를 보내며 1927년 3월 6일 ~ 2014년 4월 17일 어제 오후에 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8~2014)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림프암으로 투병해 왔고, 2012년부터는 치매 증상으로 집필을 중단한 바 있었다. 마르케스는 멕시코시티의 자택에서 아내와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7년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작가로선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노벨상을 받았고, 우리 나이로 치면 여든여덟, 미수(米壽)를 누렸다. 우리 식으로 보면 호상(好喪) 중의 호상이니 의례적 수사는 생략하자. 나는 그의 대표작 을 만났던 스무 살 무렵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번역본으로는 민음사에서 펴낸 (조구호 옮김, 아래 )이 널리 알려졌지만, 내가 처음 만난 은 김병호가 옮기고 육문사.. 2020. 4. 18.
[오늘] 첫 시상, 이후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 그리고 노벨문학상 이야기 1910년 12월 10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첫 시상식이 열렸다. 알프레트 노벨(1833~1896)의 5주기를 맞아 3,150만 스위스 크로네(약 92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상금은 5개 부문 6명의 수상자에게 돌아갔다. 5개 부문 6명의 수상자 중 알 만한 사람은 물리학상을 받은 엑스(X)선을 발견한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과 평화상을 프레데리크 파시(Frederic Passy, 국제평화연맹 설립자)와 공동 수상한 적십자 창설자인 앙리 뒤낭(Jean-Henri Dunant)이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이 역사적인 상의 첫 시상은 그러나 어수선했던 모양이다. 형식도 그랬지만, 내용으로도 그리 개운하.. 2019.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