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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신록6

달제 저수지, 그 연못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칠곡] 북삼읍 인평리 달제(달지못)의 왕버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용하다는 약방이나 의사가 제 터에서보다 다른 고장에 먼저 알려지듯, 명승도 타관 사람들에게 먼저 알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체로 사람들은 입소문이나 유명세를 좇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고향 앞 샛강에 있던 미루나무숲이 주말이면 대구나 인근 도시에서 온 나들이객으로 북적였던 것도 같은 경우다. [관련 글 : ‘샛강’, 사라지거나 바뀌거나] 혹시 인근에 풍경 좋은 데가 있나 싶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게 된 곳이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 895-1의 저수지 ‘달제’다. 한자어인 듯한데, 사람들은 ‘달지못’, ‘달비못’ 등으로 부른다는 조그만 연못이다. 칠.. 2023. 11. 15.
순애보(殉愛譜) 묘비명과 4월의 신록 “내가 한 십 년쯤 아프기라도 하면 당신은 내가 꼴도 보기 싫겠지?”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내게 불쑥 그렇게 묻더니 대답 따위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듯 아퀴를 지었다. “아니, 십 년이 뭐야, 1년만 자리보전을 해도 진절머릴 낼 거야, 당신은. 틀림없어.”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이 궁해서 웬 뜬금없는 얘기냐고 퉁을 주었더니 아내는 이번에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요기 앞산 어귀에 잘 가꾼 무덤이 있잖우? 등성이 오르기 전에. 거기 비석에 쓰인 글 읽어 본 적 없지? ‘무정한 당신’이라는 그 묘비 말이우.” “글쎄. 그런 묘비명이 있었나?” “그게 말이우. 삼십 년을 병고에 시달렸다는 마누라한테 바치는 묘비명이라는 거 아니우. 세상에 십 년도 아니고 삼십 년이래. 당신 .. 2022. 4. 20.
학교 뒷산을 오르다 깃대봉이라 부르는 뒷산 교무실의 내 자리에 앉으면 학교 강당 뒤편에 바투 붙은 산기슭이 보인다. 손을 뻗치면 닿을 듯한 산마루에는 정자 하나가 올라앉았다. 첫 출근 때부터 한번 오르리라고 별렀지만, 좀체 짬이 나지 않았다. 주당 꽉 찬 스물다섯 시간, 두 시간을 달아서 쉬는 시간도 거의 없는 탓이다. “저 산, 이름이 뭐지요?” “글쎄요……, 그냥 ‘뒷산’이라고 하지요.” “얼마나 걸리지요?” “1시간이면 됩니다. 괜찮은 산입니다.” 산 이름을 물으니 당혹스러워한다. 간단히 ‘뒷산’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건 워낙 나지막한 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사는 동네의 뒷산인 북봉산이나 인근 원호리 부근의 접성산 줄기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자리에 이 산은 솟아 .. 2022. 4. 20.
신록과 녹음의 산길에서 산을 타고 가는 출근길의 신록과 녹음 봄이 깊어지면서 출근길의 산은 한층 더 푸르러졌다. 겨우내 황량하고 칙칙했던 산빛을 그나마 유지해 준 것은 소나무였다. 4월을 넘기면서 새로 돋아난 가지와 새순으로 숲은 충실해졌다. 날이 갈수록 새순의 연록은 조금씩 짙어지면서 튼실해졌다. 시나브로 이루어진 이 변화를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것처럼 느낀다. 사람들이 봄이 짧다고 느껴서 ‘봄인가 싶더니 이내 여름’이라고 푸념하는 것은 자신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무심했던 탓이라는 걸 잘 모른다. 5월, 날마다 산어귀에 들어서면 눈앞에 싱그럽게 펼쳐지는 초록의 숲과 나무 앞에 압도당하는 느낌은 놀라움이고 쉬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감이다. 그득한 숲 내음 속에 한창 꽃을 피우는 아까시나무꽃의 향기도 그윽하다. .. 2021. 5. 12.
우리 반 고추 농사(Ⅰ) 신록(新綠), 고추 심기 4월도 막바지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열공’ 모드로 들어갔고, 며칠 동안 출제 때문에 끙끙대다 다시 맞는 날들이 어쩐지 수상하고 어수선하다. 한 학기가 ‘꺾여서’인지 다소 숨 가쁘게 달려온 두 달간의 팍팍한 시간이 불현듯 막연해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가, 블로그를 살피고 돌보는 일도 시들하고 심드렁해졌다. 모두들 바쁜 모양인지 오블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느껴진다. 이웃들 집을 한 바퀴 도는 일도 뜨악해지고,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 근방에도 가지 않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신록이 그나마 변치 않는 감격을 선사해 준다. 학교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은 조그만 숲인데 이 숲은 시방 .. 2020. 6. 17.
순애보(殉愛譜) 묘비명과 4월의 신록 동네 뒷산의 순애보 묘비명 “내가 한 십 년쯤 아프기라도 하면 당신은 내가 꼴도 보기 싫겠지?”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내게 불쑥 그렇게 묻더니 대답 따위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듯 아퀴를 지었다. “아니, 십 년이 뭐야, 1년만 자리보전을 해도 진절머릴 낼 거야, 당신은. 틀림없어.”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이 궁해서 웬 뜬금없는 얘기냐고 퉁을 주었더니 아내는 이번에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요기 앞산 어귀에 잘 가꾼 무덤이 있잖우? 등성이 오르기 전에. 거기 비석에 쓰인 글 읽어 본 적 없지? ‘무정한 당신’이라는 그 묘비 말이우.” “글쎄. 그런 묘비명이 있었나?” “그게 말이우. 삼십 년을 병고에 시달렸다는 마누라한테 바치는 묘비명이라는 거 아니우. 세상에 십 년도 .. 202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