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국무총리2

[순국(殉國)] 임정 주석 이동녕·민족해방운동가 김마리아 떠나다 [순국(殉國)] 1940년 3월 13일, 이동녕 치장에서 급성폐렴으로 스러지다 1940년 3월 13일, 임시정부 17대 주석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 1869~1940)이 쓰촨성(泗川城) 치장(綦江)에서 급성폐렴으로 순국했다. 1910년 서간도로 망명한 지 서른 해, 임시정부 수립 이후 풍찬노숙한 세월 스물한 해, 그는 생애 네 번째로 내각 수반을 맡아 분투 중이었다. 이동녕은 구한말 독립협회에 가담해 구국운동을 전개한 이래 임종의 순간까지 독립 전선에 있었다. 그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의 초대 교장이었고 이상설, 이동휘 등과 함께 대한광복군 정부(1914)의 주역이었다. ‘무오독립선언’(1918)에 참여했고, 1919년 상하이 임정 수립 때는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이었다. 11대(.. 2024. 3. 13.
[오늘] 최규하 대통령, 8개월 10일만에 ‘허수아비 옷’을 벗다 [역사 공부 ‘오늘’]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직 사임 1980년 오늘, 오전 10시 제10대 대통령 최규하(1919~2006)는 사임 성명을 발표하고 재임 8개월 10일 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는 사임 이유를 “지난봄 학생들의 소요와 광주사태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정치 도의상의 책임을 통감해 왔고, 역사적 전환기에 임기 전이라도 사임함으로써 평화적 정권 이양의 선례를 남겨 정치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규하, 허수아비 옷을 벗다 정작 쿠데타를 감행하여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학생들의 ‘소요’를 일으키고 광주 학살을 자행하여 집권 기반을 다진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손을 털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먼 허수아비 권력이 책임을 ‘통감’하고 ‘평화적 정권 이양의 선..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