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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식민지 시대 - 항일과 친일34

조선인 최초의 경찰서장 윤종화와 그 후예들 조선인 최초 경찰서장 윤종화와 그 후예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산다.” 이는 우리 근대사의 상처를 환기해 주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속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해묵은 상처를 헤집는 현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의 대부분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오르면 친일 부역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친일파 출신의 선친이나 조부 덕분에 논란이 된 이들도 적지 않다. 가까이는 2015년, 선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평전을 냈다가 해묵은 친일 논란에 휩싸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현 바른정당)가 있다. 기득권층의 연원, 친일 부역의 역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밝힌 김.. 2019. 3. 15.
일제하 군용 비행기 헌납운동과 김용주 일제 군용기 헌납 선동한 친일 부역자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선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병을 독려하고 일제에 군용기 헌납을 선동하는 등 자발적 친일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선친의 평전인 을 펴냈던 김 대표로서는 스타일을 잔뜩 구겨버린 셈이 되었다. [관련 기사] 일제의 ‘군용기 헌납’ 강요 김용주의 친일 행적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이 ‘군용기 헌납’이다. 일제는 만주침략 후 중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대비한 군비증강을 위해 1935년 각 도·부·군이나 단체에 국방비 헌납을 강요하였고 그 선봉에 친일 관료, 지식인, 자본가가 나섰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군용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 인사 100여 명과 친일단체.. 2019. 3. 15.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누가 받았나 유관순 열사 훈격 승급 결정에 부쳐 정부는 어제(26일) 유관순 열사의 독립 유공 훈격을 '독립장'(3등급)에서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한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이 공정하지 않아 '3·1운동의 상징 운동가'로서 그의 공적이 저평가되었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서훈의 승급은 2008년 대한민국장으로 승격된 여운형 선생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2005년에 여운형 선생이 추서 받은 건국 공로 훈장은 2등급의 대통령장이었다. 2008년 2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 서훈의 승급이 행정적으로 처리되지 않은 듯하다. 국가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확인해 보면 여전히 여운형은 2005년 대통령장으로 .. 2019. 2. 28.
77년 만의 귀환 - 석주(石洲) 이상룡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분들이니 이들의 국적 회복은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상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 등 독립운동가 예순두 분. 임시정부 수립(1919) 90년 만이다. 이번에 가족관계등록부가 창설되는 독립지사는 이상룡, 이봉희, 김대락 선생 등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는데, 이봉희1868~1937)는 선생의 아우이고,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은 선생의 처남이다. 석주가 류인식·김동삼 등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1907)를 세웠을 때, 백하는 문중 원로들과는 달리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경.. 2019. 2. 14.
윤동주는 정말 생체 실험에 희생되었는가 후쿠오카에서 순국한 윤동주 시인, 그 죽음의 미스터리 (SBS 특집) 아이들과 함께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을 공부한 것은 지난 학기였다. 그의 시를 읽거나,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나는 거기 각별한 울림이 있다고 느낀다. 특히 「별 헤는 밤」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아주 특별하다. 뭐랄까, 자신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한 시인의 태도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진정성 같은 것을 느끼는 까닭이다. 그와 그의 시가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진정성과 고결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윤동주는 모두 100편에 못 미치는 시를 남겼다. 그러나 현행 18종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을 비롯하여, 「간(肝)」, 「길」, 「또 다른 고향」, .. 2019. 2. 12.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돌, 안익태의 ‘애국가’를 어찌할 것인가 에키타이 안, 일제에 이어 나치 파시즘에도 협력한 사실 확인 최근 이해영 한신대 교수(57·국제관계학부)가 (삼인)라는 책을 펴내면서 새삼 지난 10여 년 동안 논란이 되어 온 친일 음악가 안익태가 재소환되고 있다. 안익태는 우리 ‘애국가’의 작곡자이기 전에 일본의 침략전쟁을 선전하고 ‘일본 정신’이 담긴 음악을 만드는 등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친일 부역자로 에 오른 이다. 새롭게 소환되고 있는 안익태 우리 세대가 안익태(安益泰, 1906~1965)를 ‘애국가’의 작곡자로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고교 시절이었던 듯하다. 어떤 노래를 즐겨 부르면서도 그 작사·작곡자가 궁금해지는 일은 좀체 없다. 그러나 그 시절, 애국가를 만든 이가 안익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산 스페인의 어느 도시에 그의 이름.. 2019. 1. 15.
광복 73돌, 허은·이은숙 여사도 마침내 서훈 받다 2018년 광복절 독립유공자 포상 73돌 광복절을 맞아 정부는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명·애족장 62명) 건국포장 26명, 대통령 표창 58명 등 177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수여한다. 해마다 수여하는 포상이긴 하지만, 이번 포상에는 여성 26명 대거 포함되어 있어 각별한 의미를 더한다. 광복절 독립유공자 177명 포상에 여성 26명 포함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허은 여사와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에게 건국훈장을, 서울 배화여학교 재학 시절 3·1독립 만세운동을 재현했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른 여섯 명의 소녀들(김경화·박양순·성혜자·소은명·안옥자·안희경)에게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다. 1920년 3월 1일, 배화여학교에 다니던 여학생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1년 전의 독.. 2018. 12. 30.
후작에서 자작까지, 경술국치와 조선귀족들 매국의 상급으로 이른바 ‘은사금’과 귀족 작위를 받은 매국노들 영화 이 천만 대 관객을 모으면서 사람들에게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시기 역사를 새삼 돌아보게 한 것은 뜻밖의 덤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 잘 만들어진 한 편의 활극은 흥미진진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인과로서의 ‘지금, 여기’의 문제를 환기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잊힌 이름인 약산 김원봉이나 친일파, 의열단, 반민특위와 같은 현대사의 몇몇 장면들과 함께,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혼곤한 자유의 근원을 잠깐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해방 70년을 맞지만 정말, 우린 온전히 해방되었는가, 여전히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닌가……. 어제, 아베 일본 총리는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식민지배와 침략 등을 적접 언.. 2018. 12. 28.
가네코 후미코, 그는 단지 ‘박열의 아내’가 아니었다 92년 만에 서훈 받는 일본인 여성 혁명가 가네코 후미코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오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박열(朴烈, 1902~1974) 의사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사 없이 옥중에서 죽은 그의 후손(친인척)을 찾는 대로 서훈과 함께 독립유공자의 명패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네코 후미코는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에서 배우 최희서가 분한 박열의 정치적 동지다.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첫 공개 공판에서 조선 예복과 사모관대를 입고 출두한 박 의사와 함께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나와 자신이 “박문자”라고 밝힌 바로 그 여인이다. 박열과 가네코 부부는 이른바 ‘천황’에.. 2018. 11. 13.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지난 21일은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의 순국일이었다. 1908년 경성감옥(뒤에 서대문감옥으로 개칭)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지 꼭 110주기였다. 1세기하고도 10년을 더한 그 날, 구미시 임은동의 왕산 묘소에선 왕산 추모식이 열렸다. 그리고 그것은 110년 만의 추모제였다. 왕산은 흔히들 서대문감옥 ‘제1호 사형수’로 널리 알려진 한말 의병장이다. 그는 1896년 김산(金山, 김천)에서 창의(倡義)한 을미의병이었고, 을사늑약에 이어 고종의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된 1907년에 다시 경기도 연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가을에 전국의 의병들이 양주로 집결하여 13도 의병 연합부대를 편성하니 이것이 곧 십삼도창의군이.. 2018.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