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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주례사 - 서로에게 ‘올바른 상대’ 되기

by 낮달2018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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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결혼식 주례사를 쓰면서

▲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글과 아무 관계가 없다.

결혼 철이다. 4월, 강변의 벚꽃이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는 지난 주말, 여제자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하객이 아니라 주례 노릇을 했으니 ‘다녀왔다’란 표현은 거시기할지도 모르겠다. 2001년에 한 제자 녀석의 혼인을 주재한 이래 두 번째니 꼭 10년 만이다.

 

제자들로부터 의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은 드문드문 받긴 했지만, 대부분은 단박에 거절해 버리곤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그런 엄숙한 의식을 주재한다는 게 체질에 맞지 않는 데다가 스스로가 그런 노릇에 합당한 인물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판의 놀이판처럼 바뀐 결혼식 풍속도

 

존경할 만한 인품을 갖고 있지도, 제대로 된 남편으로 훌륭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오지도 못한 사람에게 주례란 넘치는 지위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두 번이나 그걸 수락한 것은 상대의 부탁이 워낙 간곡했기 때문이다. 첫 주례는 스스로 점수를 매겨도 거의 낙제점이었다.

 

주례사는 내용으로 보면 혼인 의례를 주재한 이가 신혼부부에게 주는 축하와 당부의 말이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요즘 결혼식에서 주례사는 요식 절차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 훨씬 강하다. 그것은 주례사가 혼인 당사자인 신랑 신부에게 의미 있는 충고가 되기보단 늘 그만그만한 의례적 수사에 그쳐온 오랜 역사 때문이다.

 

엄숙한 의례에서 각종 해프닝, 이벤트로 꾸려내는, 마치 한 편의 ‘놀이판’처럼 변해 버린 결혼식 풍속도도 거기 일조한다. 결혼식이 일종의 이벤트성 행사로 바뀌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웨딩케이크를 자르고, 민망한 과제를 내어 신랑 신부를 골탕 먹이고, ‘축가’가 요란하게 불리는 형식으로 변화한 결혼식 풍경은 이 의식에서 ‘엄숙’을 뺀 대신 혼인을 ‘흥겨운 축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객들은 그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혼인 의례의 주인이 부모에게서 신랑 신부로 옮아가면서 결혼식이 ‘가문의 것’에서 ‘개인의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게 이 땅의 21세기 혼인 풍속도의 변모다.

그런 흥겨운 형식 가운데 낀 주례사는 일종의 ‘시대 지체(遲滯)’ 같아 보인다.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대 변화를 담아낼 방도를 달리 찾지 못해 구색으로 존재하는. 개중에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나, 친구를 주례로 세우는 파격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혼식에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주례사는 늘 공중에 떠 있다. 주례는 준비된 식사를 엄숙하게 풀고 있지만 정작 그걸 귀담아듣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신랑이나 신부의 모습을 빼꼼히 일별하고는 식당을 찾기 바쁜 일반 하객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랑 신부의 가족이나 친지들도 주례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경황없는 상황이니 신랑 신부인들 느긋하게 그걸 듣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축제의 형식에서 주례사는 ‘시대 지체’

 

첫 주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고 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데뷔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즉흥으로 할지 따로 식사를 준비할지를 고민하다가 아주 준비한 식사를 간단히 낭독하는 것으로 주례의 소임을 마쳤다. 그러나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 않았다.

 

두 번째 주례를 부탁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극구 사양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에 이태나 담임으로 만났던 여제자의 부탁이 워낙 간곡해 결국 나는 그 제안을 받고 말았다. 결혼식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어서 나는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느긋이 기다렸다.

 

사흘 앞으로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슬슬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원고를 보고 읽는 형식보다 내용을 요약한 메모를 보면서 즉석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단 초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계획은 어긋나 버렸다.

 

원고가 만들어지는 순간, 내용은 거기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나는 초고를 만든 걸 후회했다. 결국, 간단한 메모를 중심으로 하되, 원고를 참고하는 방식으로 나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청중과의 교감이 빠진 말하기의 끝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눈앞의 신랑 신부도, 무심한 얼굴로 객석에 앉은 하객들도 내가 교감할 수 있는 청중은 아니었다. 서두를 떼다 말고 나는 내 주례사의 운명을 직감했다. 한두 번 사이를 두거나 객석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부리는 거 말고 나는 좀 건조하게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여전히 선생님 목소리는 쨍쨍했어요.”

▲ 엘리자베스 키스의 동판화 <신부>의 부분

 

결혼식에 참석한 남녀 제자들이 입을 모아 한 얘기로 내 주례사는 그저 그랬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걸 예상했으므로 나는 이내 아주 가벼워졌다. 그리 무거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게 부담이 되었던 것은 분명했으니까.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다. 물론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법륜 스님은 이 책에서 ‘상대에게 기대어 덕 보려는 의지심이 아니라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마음일 때 결혼하라’고 하고, ‘스스로 행복한 상태에서 결혼해야 결혼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설파했다고 한다.

 

나는 ‘결혼’에 관한 몇 개의 경구를 엮은 주례사를 썼다. 하이네로 시작하여 브리크너로 끝나는 내 이야기의 열쇳말은 ‘사랑’과 ‘행복’, 혹은 ‘성공’이었다. 나는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인 하이네는 “결혼은 어떤 나침반도 일찍이 항로를 발견한 적이 없는 거친 바다”라고 했다. 연습을 거쳐서 하는 게 아닌 이상 결혼이 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거친 바다’로 비유된 결혼 생활은 연애 시절의 환상을 깨기에 충분한 곡절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결혼, 서로에게 '올바른 상대' 되기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오래된 명제도 불러냈다. 그것은 ‘그렇게 되는 게 바람직하’고 그걸 지향하여야 한다는 뜻이지 부부가 한마음, 한 몸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전제했다. 오히려 결혼이란 서로 다른 두 남녀가 가족을 이루면서 ‘같아지기’보다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가 나와 같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갓 결혼한 부부가 자주 다투는 것은 ‘사랑이란 같아지는 것’이라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 다르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돌처럼 한번 놓인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빵처럼 항상 다시 새로이 구워져야 한다.” 르권의 이 말은 사랑이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항상 그 당사자들의 노력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늘 사랑으로 새로워지는 과정에서 “결혼이란 단순히 만들어 놓은 행복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노력해서 행복의 요리를 둘이서 만들어 먹는 것”(피카이로)이라는 경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결혼은 역시 새로운 출발일 뿐이다.

 

내 이야기는 브리크너의 경구로 마감되었다. “결혼에서 성공이란 단순히 올바른 상대를 찾음으로써 오는 게 아니라 올바른 상대가 됨으로써 온다.”는 그의 지적이 가진 울림은 꽤 크다. ‘올바른 상대’는 처음부터 있지 않다. ‘살아가면서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올바른 상대가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올바른 상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며 주례사를 맺었다.

▲ 부부란 서로 마주보기보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젊은 부부는 내가 한 얘기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나는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이성일 뿐이라는 걸 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적 진실로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그들은 너무 젊고, 살아야 할 날은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게 ‘결혼’이고 ‘인생’일지 모른다.

 

신혼부부는 이튿날 호주로 밀월여행을 떠났다. 나는 신부에게 돌아오면 메일로 내 주례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그들은 내가 한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주례사를 하나하나 새기며 듣는 신혼부부란 없는 법이니까.

 

제자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인천과 광주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친구가 둘, 아직 아이가 없는 기혼자가 둘, 미혼인 친구가 셋이었는데 미혼 중 하나는 청일점 남자 동기였다. 우리는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참석하지 못한 저희 친구를 주제로 정겹게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남제자가 승용차로 나를 바래다주었다. 이태 동안 반장을 맡았던 신실한 친구다.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느냐니까 없다고 했다. 아마 조만간 이 친구도 내게 주례 노릇을 부탁해 올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사제 간이 아니라 워낙 서로를 잘 아는 사이라서 나는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내년이면 이곳을 떠날 것 같다는 얘기며, 옮기면 이태쯤 후에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는 여느 때처럼 진지하고 깍듯하다.

 

우리는 좀 간곡한 작별 인사로 헤어졌다. 운전 조심하라고, 건강하시라고 반드시 의례적이지만은 않은 인사를 나누고서.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그는 직장으로 돌아갔고, 신혼부부는 호주에서 꿈같은 밀월여행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결혼이 거친 바다라는 하이네의 언급이 가진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아픈 만큼 단단해져 갈 것이다. ‘올바른 상대’가 되어간다는 게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때야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주례를 맡았던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인생을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 나는 이들 신혼부부 앞의 삶이 부디 아름답고 풍성하기를 진실로 바라고 있다.

 

 

2011. 4.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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