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X-10으로 ‘D-SLR 세계’에 입문하다
그저께, 그러니까 12월 8일, 금요일에야 내 오랜 기다림이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 오전에 무려 20여 일 만에 내 첫 D-SLR 카메라 GX-10이 도착한 것이다. 연애하던 때를 빼면 기다림 따위에 이만큼 목을 늘어뜨린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렌즈를 장착한 바디를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사진가들의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묵직한 ‘그립감’!),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손에 든 대포(‘똑딱이’라 부르는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 대응하는, SLR 디카를 가리키는 변말이다.)는 똑딱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의 인도자에 걸맞은 크기와 묵직한 중량감으로 다가왔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져 최저가로 사 놓은 UV필터, 2G짜리 SD카드까지 끼우고, 셔터를 반쯤 누르자 자동으로 초점을 잡으려 혼자 바쁘게 회전하는 렌즈의 기계음과 초점이 잡혔을 때의 전자음 앞에서 나는 거의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날 밤은 내내 설명서를 읽고 카메라를 조작해 보는 거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시나브로 냉정해졌다. 좋은 기계가 반드시 좋은 사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이튿날, 가족과 함께 봉화 닭실마을[유곡(酉谷)]을 들렀다. 바람도 쐴 겸, 충재 권벌 선생의 유적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다. 청암정(靑巖亭)은 바야흐로 보수 중이어서 비계(飛階) 속에 갇혀 있었고, 산바람이 매웠다.
컴퓨터로 사진 파일을 확인하면서 나는 이 낯선 기계와 친숙해지는 데는 만만찮은 시간이 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썩 다른 사진을 기대했지만, 모니터에 떠오른 사진들은 그 용량만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계는 정직하다. 그것은 미리 입력된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일 뿐, 렌즈로 포착하는 순간의 풍경을 결정짓는 빛의 크기와 방향, 셔터 속도 따위를 제대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은 사진가의 몫인 것이다.
누차 말했듯, 나는 사진이 갖는 유용성을, 여느 사람들과 같이 일상의 모사(模寫)나 재현(再現)에 두는 편이다. 흐르는 시간 속의 삶을 포착하고, 그것을 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사진의 기능과 힘은 넉넉하다.
삶을 구성하는 일상의 장면을 한 프레임의 이미지로 가두는 일은 단순한 작업에 불과하지만, 그 장면에 배어 있는 삶의 부피와 무게는 만만찮으며, 그 기억의 갈무리는 오랜 시간을 넘어 추억으로 재현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제 나는 GX-10의 사용자가 되었다. 무엇이 달라질까. 나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자신도 몰라보게 변해 버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여전히 일상과 풍경을 기록하듯 찍을 터이고, 비록 순간의 모사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면서 긴치 않은 흰소리를 늘어놓는 일을 작은 즐거움으로 여길 것이다.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모니터로 확인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것이 ‘감정의 복기(復碁)’와도 같다는 것이다. 바둑 기사들이 대국 후에 복기를 통해 긴 싸움의 경로를 탐색하고 성찰하듯 나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서 그 정지된 순간 속에 머물다 사라진 감정의 결과 마음의 행로를 더듬으며 우리의 삶과 일상이 가진 얼개를 무심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삼성 사용자 포럼이나 펜탁스 포럼의 갤러리에 오르는 아름답고 멋진 사진을 바라보며 그런 작품들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지는가를 배우고 익히겠지만 일상의 삶과 풍경을 가리지 않고 파인더에 담는 내 사진 찍기의 형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찍기는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내 보잘것없는 ‘세상 읽기’의 한 방편이고 그것은 진부한 내 텍스트보다 훨씬 깊고 그윽하게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는 까닭이다.
2006. 12.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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