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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의 최후, 글로만 봐도 눈물이 난다

by 낮달2018 2019.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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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태빈의 항일답사 프로젝트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 김태빈 지음 ,  레드우드 , 2017

108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이듬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내준 하얀 수의를 ‘살아서’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안 의사의 거부로 변호에 실패한 일본인 변호사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는 말년에 그를 회고하는 글 <안중근의 사형집행담-백의의 옷을 입고 사형대에>를 썼다. 그 글은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로 시작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여정을 따라가는 <청소년을 위한 연암 답사 프로젝트>(레드우드, 2016)에 이어 김태빈이 펴낸 ‘항일답사 프로젝트’의 제목은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다. 이 명명은 아마 의연하게 죽어간 안 의사에 대한 국적을 넘는 ‘외경과 공감’의 표현일 터이다.(관련 기사 : 연암 박지원의 열하 투어는 반쪽짜리였다?)

 

서울 한성여고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던 김태빈은 2013년부터 3년 동안 북경 한국국제학교에 파견되었다. 그는 이때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연암과 다산, 추사를 공부’했고 233년 전, 연암의 연행 길을 되짚을 수 있었다. 연암 답사 틈틈이 그는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도 찾았다.

 

2016년 서울로 돌아온 김태빈은 <청소년을 위한 연암 답사 프로젝트>를 출간했고 자투리 시간에 돌아본 항일답사를 정리했다. 베이징에서 그는 광복 70주년을 맞았고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사람에게 과거는 또 다른 미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제학교 교사, 학생·학부모와 함께 항일투쟁의 자취를 따라가다

 

나라 밖으로 파견된 국제학교의 교사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그 나라 곳곳을 돌아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름난 중국의 명승과 유적을 찾아 즐기는 대신 재미없고 지루한 중세 선비의 여정을, 나라 잃은 우국 지사들의 풍찬노숙, 그 자취를 뒤좇았다.

 

그가 “망국의 참담함과 항일의 당당함이 공존하던 때로의 여행”(들어가는 글)을 시작한 것은 ‘망각과 무심의 두텁고 부끄러운 더께를 벗기 위해서’라고 고백한다. 그는 ‘그 길 위에서 만난 건 세월만큼 긴 이야기를 품은 공간과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 9월에 펴낸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를 품은 공간과 사람의 기록이다. 그것은 100여 년 전의 상하이에서부터 베이징과 충칭, 하얼빈과 텐진, 그리고 용정을 넘나들며 간난의 시간과 싸웠던 숱한 독립지사들의 풍찬노숙을 꿰뚫는 감동의 서사다.

▲ 상하이 신텐디의 영경방. 임정 청사와 가까운 이곳에 백범의 거주지가 있었다.
▲ 다롄의 뤼순 감옥. 이 감옥에서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세 분이 순국했다.

대부분의 답사는 목표한 공간과 장소에 닿으면서 사람으로 초점이 바뀐다. 그러나 김태빈의 답사는 그 공간과 장소에서 새로이 시작된다. 그는 상하이와 베이징, 충칭과 텐진, 용정의 거리와 골목길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그 공간이 품었던 사람과 삶, 지난 세기의 역사의 자취를 안내하기 때문이다.

 

김태빈의 답사는 몇 개의 일화에 의존해 그 삶을 조망하는 여느 답사와 달리 공간과 장소가 인물의 삶과 맺고 있는 유기적 관계를 들여다본다. 그는 설렁설렁 몇몇 장소를 들여다보고 돌아서는 대신 답답할 정도로 꼼꼼하게 그 지역의 옛 지도를 끄집어내고 사라진 골목길을 복원하며 그 장소가 품었던 한 시대를 반추한다.

 

상하이 신텐디(新天地)에서 옛 임정 청사 자리와 백범의 집과 단재가 머물던 여관을, 백범과 매헌 윤봉길이 마지막 식사를 한 집을 찾아내는 것은 그러한 발품의 결과다. 그는 남들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시간을 줄여서 이런 스쳐 지나가기 쉬운 공간을 찾은 것이다.

 

그런 그이기에 자싱(嘉興)의 임정 피난처에서 목숨을 걸고 백범을 돌보았던 젊은 여사공 주아이바오(朱愛寶)의 뜨거운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베이징 3년의 마지막 해에 베이징에 남은 단재의 자취를 찾아내고 그가 걸었던 거리를 걸으면서 뿌듯해하는 모범 답사자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처분하여 40만 원이라는 거액의 자금을 마련하여 6형제와 딸린 가솔 전부가 망명길에 올랐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는 베이징도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에겐 눈물겹다. 그의 답사가 우당이 한때 살았던 텐진(天津)의 빈민가 샤오왕좡(小王莊)으로 가는 진탕차오(金湯橋)을 건너면서 망명 지사가 겪어야 했던 고초를 떠올리며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김태빈의 항일 답사는 중국의 남부와 중부, 북부 등 3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 중국 남부에서는 상하이와 자싱 등을 중심으로 임정과 김구 선생 등 임정 요인들, 홍커우공원과 윤봉길의 자취를 더듬는다. 상하이 황푸탄(黃浦灘) 의거의 주인공 김익상도 빼놓을 수 없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 아니 죽어서 더 뜨겁게 빛나는 겨레의 별들

 

중국 중부를 담은 2부는 베이징과 텐진에서 활동한 단재 신채호와 이육사, 이회영과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을 찾는다. 또 타이항산(太行山)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던 조선의용대의 마지막 분대장 김학철을 만나고 진자루위(晉冀魯豫) 열사 능원에서 윤세주, 진광화 열사를 찾고 목이 멘다. 그들은 어찌하여 중국의 국립묘지에 묻혀 있던가.

 

그의 발길은 독립투쟁의 방편으로 삼은 이념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갈피에서 잊히고 있는 이들의 흔적에도 닿는다. 중국군의 공식 군가인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은 중국 인민의 영광과 영예였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조국으로 향하는 대오가 함께 부를 노래, ‘조국 향해 나가자’를 작곡한 이도 정율성이었다.

 

중국에 임정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충칭(重慶)에서 김태빈은 다시 백범과 약산 김원봉을 소환한다. 학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중국에 배치되자 6000리 길을 걸어 충칭의 임정으로 찾아온 장준하와 김준엽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목 놓아 통곡하는 청년과 임정 요인들을 바라보며 독자들도 더불어 눈물짓지 않을 도리가 없다.

 

3부에서는 중국 북부의 ‘의거와 순국의 현장’을 찾는다. 하얼빈과 뤼순의 안중근·신채호, 명동과 용정의 윤동주, 다롄의 이회영이 그들이다. 죽음 앞에서조차 의연했던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최후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저도 몰래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단재를 보내고 벽초 홍명희가 그랬다. “살아서 귀신이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단재는 살아서도 사람이고 죽어서도 사람이다.” 만리 이역, 적의 감옥에서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아야 했던 이 투사들이야말로 ‘살아서도 사람, 죽어서도 사람’, 아니 죽어서 더 뜨겁게 빛나는 겨레의 별이기 때문이다.

▲ 타이항산 윈터우디춘 마을에 쓰인 한글.(위) 밀양 항일 테마 거리에 재현한 구호(아래)

김태빈의 항일답사는 중국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 남부와 중부, 북부 등 각부의 끝에 부록으로 국내의 관련 답사 ‘루트(route)’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떠날 수 있는 김구와 임정 요인, 이회영과 안중근, 그리고 윤동주 루트와 안동·대구의 이육사 루트다. 이를 ‘이원(二元) 답사’라 할 수 있을는지.

 

그것은 단순히 중국 답사를 기워주는 양념이 아니다. 중국을 돌았던 꼼꼼한 그의 발품은 서울과 대구와 안동에서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안동에서 육사 답사를 한나절 동안 함께 한 나는 그의 빈틈없는 여정 관리에 감복해 마지않았다. 그에게 책상에 앉아서 떠나는 도상 답사란 애당초 없는 것이다.

 

부럽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공감의 역사’

▲ 책 뒤에 붙인 ‘서울 항일답사 지도’. 윤동주 루트다.

책 뒷부분에 실은 ‘상하이-서울 항일답사 지도’는 이 책이 매우 친절한 답사 안내서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이는 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베풀어지는 친절일 터이다. 천연색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이 답사 지도에도 그의 꼼꼼함은 그대로 미쳐 있다.

 

무엇보다 그의 답사는 제자들은 물론, 학부모들과 함께한 사제동행, 사친(師親) 동행의 답사다. 그는 북경 한국국제학교의 담임 반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지로 상하이와 난징을 선택했고, 학부모들과 함께 타이항산과 하얼빈을 찾았다. 그것은 아이들, 학부모와 함께 배우고 나누는 공감의 역사다.

▲ 하얼빈 답사. 자오린 공원 안 안중근 의사의 유묵 ‘청초당’ 비석 앞에서의 기념 촬영.
▲ 연세대에서 윤동주가 이양하 선생과 문과 학생들과 찍은 사진(위)과 저자가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아래)

그의 사제동행은 중국에서만이 아니다. 돌아와서도 육사의 따님 이옥비 여사를 모셔 특강을 들려주고 담임 반 아이들을 데리고 윤동주의 자취를 찾기도 했다. 나는 그가 아이들과 함께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윤동주와 연희전문 문과 학생들이 이양하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과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근년에 피식민지 시기의 근대사가 새로이 조명되면서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암살>과 <밀정>이 각각 일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냈다. 거의 한 세기 이전의 역사가 새삼스레 소환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증거’로서의 역사는 성찰을 통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안중근의 하얼빈은 정율성을 기억하는 공간이기도 한데 우리에게 정율성은 낯선 존재다. 이데올로기가 역사조차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역사는 ‘화석’이 아니라 지금도 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할 기억이라고 김태빈은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새 시계를 백범의 헌 시계와 바꾸고 떠난 윤봉길과 살아서 어머니가 보내준 수의를 입고 죽어간 안중근을 망국의 비애로 떠올린다. 뤼순 감옥에서 ‘정 어렵거든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라는 편지를 부인에게 남기고 떠난 단재를 떠올리면서는 우리는 차마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세기 욕된 망명의 세월을 오롯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의 결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평범하지만, 오롯이 진실로 모이는 역사적 공감이며 겨레로서의 보편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저들 우국지사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며 우리는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2017. 11. 4. 낮달

 

 

독립 운동가들의 최후, 글로만 봐도 눈물이 난다

[서평] 김태빈의 항일 답사 프로젝트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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