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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벌초 이야기(2) 다시 ‘벌초’를 생각한다

by 낮달2018 201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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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이야기(2)

▲ 칡으로 뒤덮인 부모님 산소. 내년 봄에는 묘역 주변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지난 일요일에 벌초를 다녀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시작한 작업은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었다. 산소 두 군데를 마칠 때쯤 거짓말처럼 날이 갠 것이다. 아침 내내 퍼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반짝 나면서 우리는 오히려 땀깨나 흘려야 했다.

 

지난 주말에 미리 치렀거나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인지 산에는 벌초하는 이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부산과 대구에서, 그리고 안동에서 내려간 나까지 모두 여덟이 모인 이번 벌초는 일꾼이 많아서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모두 종형제간인데 내가 그중 손위다. 자연히 일은 동생들이 주로 하고 나는 어정거리다가 자투리 일이나 챙기면 된다. 우리가 벌초해야 할 산소는 모두 15기다. 그것도 한군데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네 군데 산에 각각 흩어져 있으니 산소를 찾는 일도 그리 만만치 않다.

 

산소 가운데 비석이나 상석 등 석물을 갖춘 데는 한 군데도 없다. 이름을 밝힐 만한 벼슬을 한 조상도 없었고 우리 집안의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탓일 것이다. 따라서 묘를 찾는 것은 순전히 감에 의존해야 한다. 거기다 요즘 산은 숲이 우거져 길이 있어도 찾기가 쉽지 않다.

 

벌초한 데가 ‘우리 산소’가 맞긴 하는가?

 

그래도 우리는 그간 묘를 못 찾은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여럿이 가다 보니 엇길로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서인지도 모른다. 누가 앞장을 서든 결과는 비슷했다. 혹 길을 잘못 들어도 뒤에서 누군가가 그쪽 아닌 것 같다며 제동을 걸면 용케 제 길을 찾아내곤 했기 때문이다.

 

비가 막 그치고 나서 두 번째 산자락 중턱에 있는 묘소의 벌초를 마치고 일행은 잠깐 쉬었다. 준비해 온 막걸리가 한 순배 돌았다. 부산에서 올라온 아우가 허두를 뗐다. 아우는 우리 집안의 가장 어른이신 내 재종숙의 맏이다. ‘맏이’는 ‘지차’와 생각의 틀거지부터 좀 다르다.

 

“그런데 형님, 아까 저 아래 산소 말이지요. 그게 우리 산소……, 맞긴 합니까? 제 생각에는 그렇게 봉분이 높지 않았거든요…….”
“그래. 그건 나도 미심쩍어. 내가 아재(재종숙) 모시고 벌초 다닐 때 생각해 보면, 봉분이 거의 다 무너진 데다 잔디도 영 시원찮은 산소였거든. 그런데 저 아래 산소는 새로 성토한 것같이 보인단 말이야.”
“…….”

▲ 올해도 2007년도처럼 빗속에서 벌초를 시작했다. 2007년도에는 모두 비옷을 입고 벌초를 했다.

맏이인 아우는 좀 착잡해진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나는 좀 가볍다. 지차여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산소나 벌초 등의 이 오래된 풍속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다. 아우는 우리가 다니는 산소의 내력을 대충 꿰고 있는 눈치지만, 나는 진작 그걸 포기해 버렸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라는 걸 알면 어쩔 것이며, 모르면 또 어쩔 것인가. 13대조까지 연면한 조상들의 복잡한 내력을 갈무리할 만큼 내 신경은 섬세하지 못하다.

 

그러나 아우는 다르다. 벌초하러 귀향할 때마다 부친에게서 듣는 훈계가 적지 않으리라. 내가 늘 ‘아재 돌아가시면 이 벌초, 그만 내버리자’라고 농반진반으로 건네면, 정색을 하고 ‘그래도, 아는 걸 어떻게 버리겠습니까’하고 대답하는 친구인 것이다. 그러나 ‘네 새끼한테 이 벌초 물려주려나?’하고 물으면 그도 대답이 궁해진다.

 

“몰라. 우리가 매년 엉뚱하게 남의 조상 묘나 벌초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몰라…….”
“글쎄, 말이에요. 저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찜찜하네요.”
“그렇다 한들 어쩔 건가. 그 부근에 맞춤한 산소가 없는 건 분명하니. 모르지. 성토한 걸 우리가 모를 수도 있나?”
“그럴 리야……. 혹시 남이 우리 산소를 자기 산소로 착각해 성토를 한 건 아닐까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엎치나 메치나……. 우리가 착각하든, 그들이 착각하든 유택을 가꾸어 주는 일은 좋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자고. 어차피 바룰 수 없는 일이라면…….”
“그러게요…….”

 

화제는 앞으로 벌초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번진다. 그러나 아우는 그걸 길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주 간단히 ‘버리자’라고 말하는 내가 부러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이 문제는 아퀴를 지을 때가 가깝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은 농협에서 하는 벌초 대행도 포화상태인 모양이야. 더는 안 받아 준다더군.”
“그렇다네요. 대행료도 올라서 1기당 6, 7만 원씩 하는 모양이고…….”
“산소를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하는 건 분명한데 말이야…….”

 

나는 ‘파묘(破墓)’(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의 방식으로 선대 산소를 정리한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몇 기 남지 않은 선대 조상 묘소를 파묘하고 유골을 한데 모아 제사를 지내는 거로 산소를 정리했다고 한다. 더는 벌초할 일도 그걸로 골몰할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산소들,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모두가 말을 하지 않을 뿐, 이후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우리 세대야 어쩔 수 없이 때가 되면 형제들이 모이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젊지 않다. 나이 들어 거동이 쉽지 않게 되면 어떡할 건가. 이미 한 세대보다 훨씬 멀리 가 버린 아이들을 불러서 이 짐을 떠 맡긴다?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그걸 입으로 굳이 확인하는 게 마뜩잖을 뿐이다. 해마다 산소를 찾는 발길이 뜸해지고 세월이 흐르면 묘는 잊히게 될 것이다. 관리되지 않은, 주인 잃은 묘소는 결국 폐묘의 과정을 거쳐서 산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얘기는 그런 자연적 폐묘가 아니라 우리 의지로 이 문제를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언제나 답을 찾는 건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선 자리가 참으로 어정쩡한 자리라는 걸, 우리는 결국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사이에 마치 샌드위치처럼 끼인 세대라는 걸 깨달았다. 나머지 벌초를 마치고 오후 4시께 우리는 헤어졌다.

 

내년 이맘때쯤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고 비슷한 주제로 답을 찾지 못하는 얘기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한 살씩 나이를 먹고, 아이들은 자라서 품을 떠날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인가. 고단한 귀갓길에 나는 줄곧 그걸 되씹고 있었다.

 

 

2010. 9.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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