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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삶 ·세월 ·노래

두 개의 ‘웨딩 케이크’, 그 삶과 사랑

by 낮달2018 2019.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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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폴리오의 번안곡 ‘웨딩 케이크’

▲ 트윈폴리오는 1967년 송창식, 윤형주가 결성한 듀엣으로 당대 청년문화의 기수였다. .

추석 연휴 때다. ‘트윈폴리오’ 멤버가 나온 한 예능 프로그램을 아주 흥미롭게 시청했다. 어느새 이순을 훌쩍 넘긴 저 70년대 통기타 가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내외는 묘한 감회에 젖었다. 그 시절, 그들이 부른 노래는 우리 세대가 누렸던 젊음과 자유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트윈폴리오, 70년대의 ‘젊음과 자유’

 

70년대 초중반, KBS-TV에서 방영하던 ‘젊음의 행진’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주역들이 바로 청바지에 기타를 메고 나와 이야기와 함께 포크송을 들려주던 트윈폴리오였다. 송창식과 윤형주, 그리고 그들이 부른 노래와 세월이 마치 빛바랜 무성영화처럼 떠오른다.

 

솔로로 활동할 때의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지만, 웬일인지 ‘트윈폴리오’에 대한 기억은 모호하다. 그 무렵만 해도 라디오나 TV가 요즘 같지 않던 시절이었다. 트윈폴리오의 노래로 ‘하얀 손수건’이나 ‘조개껍질 묶어’에 대한 기억은 선명한데 정작 ‘웨딩 케이크’(cake의 우리말 표기는 ‘케이크’다.)는 어쩐지 귀에 설기만 하다.

 

시인 김민정은 <한겨레>에 연재하는 칼럼에서 여섯 살 때쯤, ‘늦은 밤 이모 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그대로 울어버린 적이 있다’고 고백했는데, 이 여섯 살 어린이를 울린 노래가 바로 ‘웨딩 케이크’였다. 시인은 여섯 살 때도 만만찮은 감성을 자랑했던 셈이다. 이 30대 시인도 아는 노래인데 왜 헛갈리는가, 나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Connie Francis(1938~   )

오늘 출근길에 일부러 ‘웨딩 케이크’를 들었다. 연휴 때도 TV에서 이 노래를 들었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웨딩 케이크’는 1960년대 미국의 팝 가수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가 부른 같은 이름의 노래(Wedding Cake)를 ‘번안’한 노래다.

 

무심코 노래를 틀었는데, 아니, 이게 그런 노래였던가. 나는 어느새 가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한 채 귀를 기울여야 했다. 화자는 ‘원치 않는 사람’,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가야 하는 처지다. 그대는 나의 창밖에 ‘웨딩 케이크’만 남기고 떠났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인간을 격동케 하는 것은 위대한 음악만이 아니다. 하찮은 유행가 구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눈물짓게 한다. 그리고 그걸 ‘값싼 감상’으로 폄하하는 것도 그리 온당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가장 약하고 아픈 부분을 저미는 데는 고아한 고전음악보다는 감상적 유행가의 선율이 더 유용한 것이다.

 

노랫말을 ‘읽고 거기 젖었던’ 세대

 

적어도 우리 세대는 노랫말을 읽고 그것에 젖었던 세대다. 트로트든 포크든 우리가 환호했던 노래들은 리듬만이 아니라 가사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김민기와 정태춘의 노랫말을 생각해 보라. 8, 90년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불리던 민중가요에 우리가 매료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가사가 머금고 있던 울림 때문이었다.

 

우울한 시대와 그 징표를 그려냈던 노랫말을 통하여 우리는 젊음과 혁명을 이해했다. 그러나 시간은 절대 머물지 않는다. 어느 날, 안치환의 공연을 보고 난 후 우리는 ‘혁명의 시대가 거(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장한 절규로 80년대의 사랑과 죽음을 노래했던 안치환은 아주 빠른 호흡의 신곡을 경망스러운 대중 가수들과 진배없는 자세로 열창했고 대학생 관객들은 자지러지는 비명으로 거기 화답했기 때문이다.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따귀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해진 우리 앞으로 21세기가 도둑고양이처럼 다가왔다. 언젠가부터 노랫말 따위로는 더는 사람들의 마음속 거문고[심금(心琴)]를 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짧고 빠른 박자와 리듬만으로도 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시대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내 둔감한 귀도 윤형주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와 송창식의 좀 더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려낸다. ‘-네’로 끝나는 종결어미는 문득 기형도의 시 ‘빈집’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두 노래의 화자는 모두 사랑을 잃었다. 차이는 시의 화자와 달리 노래의 화자는 사랑을 잃고 새로운 사람에게로 가야 한다는 점뿐이다.

* 웨딩케이크 듣기 

 

시 ‘빈집’의 화자는 사랑을 잃고 나서 사랑할 때 만난 모든 것들에 이별을 고한다. ‘짧았던 밤’과 ‘겨울 안개’, ‘촛불’, 그리고 ‘흰 종이’와 ‘눈물’과 ‘열망’들에 작별의 인사를 남기면서 ‘문을 잠그’는 그의 사랑은 ‘빈집’에 갇혀서 가엾다.

 

원곡 ‘웨딩 케이크’, ‘결혼 후의 삶’에 대한 노래

 

그러나 노래 ‘웨딩 케이크’의 화자가 잃은 사랑은 훨씬 더 슬프고 가엾다. 그의 사랑은 ‘창문을 두드리’고 웨딩 케이크를 놓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는 그 ‘밤이 지나면’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과 작별하고 스스로 문을 잠그는 ‘빈집’의 화자와 달리 그는 사랑이 남기고 간 웨딩 케이크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릴 뿐이다.

 

▲ 송창식과 윤형주도 세월을 비켜 가진 못했다 .

사랑은 만국의 언어다. 한순간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의 상실, 그 슬픔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이다. 그것은 마치 몸속을 도는 피처럼 우리의 혈관에서 숨 쉬고 있다. 트윈폴리오의 노래 ‘웨딩 케이크’의 노랫말과 선율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거기 새겨진 사랑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코니 프랜시스가 부른 ‘웨딩 케이크’를 들어보았다. 순전히 취향이긴 하지만 나는 트윈폴리오의 그것을 훨씬 따뜻하고 애절하게 느꼈다. 노랫말이 전해주는 가외의 의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코니의 노래에는 트윈폴리오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애수가 전혀 없었다.

 

‘웨딩 케이크’가 번안곡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이 ‘애수’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코니 프랜시스가 부른 원곡에는 ‘사랑의 상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곡의 화자는 결혼을 앞둔 처녀가 아니라 결혼한 지 한 십 년쯤 지난 여성이다. 놀랍게도 원곡 ‘웨딩 케이크’는 ‘결혼과 결혼 후의 삶’에 대한 담담한 고백인 것이다.

 

노래는 ‘식기세척기’도 없이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 여자의 독백이다. 그녀는 남자의 가치는 돈을 버는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물론 모든 ‘여자들은 알고 있’다. ‘웨딩 케이크를 자르는 순간 기쁨과 함께 눈물도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케이크에는 달콤한 겉 부분만 있는 게 아니듯 결혼에는 침대 맡의 사랑스러운 속삭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자는 케이크 한 조각마다 아롱진 일상과 삶을 담담하게 뇐다. ‘결혼이란 많이 주기도 하고 많이 받기도 하는 것이라는 걸’, ‘앞날의 어두운 그림자도 당당히 맞서면 멀리 사라지고 태양이 비추’리라는 것을. ‘모든 건 웨딩 케이크와 함께 시작되었다’면서도 여자가 바라보는 삶은 담담하고 낙관적이다. 그 모든 ‘어둠’과 ‘불안’을 넘어 그녀는 그렇게 제의한다.

 

“그래요. 우리가 같이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해요. 웨딩 케이크와 함께 시작된 우리의 모든 일들을요.”

 

회고와 추억, ‘유행가의 힘’

 

원곡과 번안곡의 거리는 그들과 우리의 정서만큼이나 멀어 보인다. 삶의 곡절을 바라보는 따뜻한 긍정과 낙관이 바다를 건너서 이 땅에서는 ‘사랑의 상실’로 고쳐진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인가. 남녀가 함께 꾸려가는 동반적 삶의 출발점인 ‘웨딩 케이크’는 70년대 한국에선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이 촉촉하게 젖어 드는 노래를 통해서 우리의 젊음과 사랑을 회고한다. 가눌 수 없었던 열정과 꿈을, 끝내 스러져간 젊음의 시간을 추억한다. 그것이 우리가 부르는 이 시대의 노래, 유행가의 힘인 것이다.



웨딩 케이크 - 트윈폴리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랑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
마지막 단 한번만 그대 모습 보게 하여 주오. 사랑아
아픈 내 마음도 모르는 채 멀리서 들려오는 무정한 새벽 종소리
행여나 아쉬움에 그리움에 그대 모습 보일까 창밖을 내어다 봐도
이미 사라져 버린 그 모습 어디서나 찾을 수 없어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우-


The Wedding Cake (1969) - Connie Francis

Don't be troubled 'bout me cause I'm tiredFrom workin' 'round the houseWhen day is done
하루가 끝나고 내가 집안일에 힘들어 해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Don't think you failed me cause you can't affordThat dishwasher to make my life more fun
식기세척기를 사줄 능력이 안 되어 나를 실망시켰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

You know, the measure of a man isMuch more than just the money he can make
남자의 가치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로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And every woman knows a lot of joy and tearsCome with the wedding cake
여자들은 다 알고 있어. 웨딩 케이크를 자르는 순간 기쁨과 함께 눈물도 찾아온다는 것을

The wedding cake is not all icingAnd love and tender whispers in the dark
또 케이크에는 달콤한 겉부분만 있는 게 아니듯 결혼에는 침대맡의 사랑스런 속삭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One slice is concern for all your dreams prayedThey won't come true and break your heart
케이크 한 조각에는 이루어지지 못해 마음 아팠던 당신의 모든 꿈이 담겨 있고,

Another slice is feedin' kids and wipin' nosesCryin' when the doorbell rings and there are roses
또 다른 조각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느라 애쓰는 모습, 문밖에 놓여 있는 장미 한 다발에 눈물짓는 모습도 담겨 있지

Every woman knows a lot of give and takeComes with the wedding cake
여자들은 다 알고 있어. 결혼이란 많이 주기도 하고 많이 받기도 하는 것이라는 걸

It's facin' shadows of the futurePrayin' they will fall away as we walk toward themSearchin' for the sun
앞날의 어두운 그림자도 당당히 맞서면 멀리 사라지고 태양이 비추겠지

And it's long and anxious hours with the wolf at the door.Hugs and kisses when, at last, we see the dawn
깊고 오랜 어둠, 불안한 시간을 견디면 우리는 끌어안고 입맞춤하며 밝은 새벽을 볼 수 있을 거야

So when the hands of time trace tellin' lines upon our faceAnd lace our hair with strands of gray
시간이 흘러 우리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우리 머리칼은 잿빛이 되었을 때

We laugh and say for all who will partakeIt all comes with the wedding cake
우리는 함께 하는 모든 이에게 웃으며 말하겠지 모든 건 웨딩 케이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Yes, for all who will partake It all comes with the wedding cakeYes, for all who will partake It all comes with the wedding cake (fade)
그래요 우리가 같이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해요웨딩 케이크와 함께 시작된 우리의 모든 일들을요

 

 

2010. 10.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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