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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친일문학 이야기

‘친일문학’ 이야기 - 글머리에

by 낮달2018 201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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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갈증


▲ 지난해 발간된 교주본 <친일문학론>

중등학교에서 서른 해 가까이 문학을 가르쳐 왔지만 정작 친일 문학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늘 판박이 식의 지식 전수에 급급하다 보니 그랬지만 기실 스스로 친일 문학에 대한 이해가 얕았던 게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친일 문학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서정주의 <송정오장 송가> 정도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경우는 그나마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등 따위로 알려진 게 있어서 대충 주워섬기면 되었지만 막상 누가 친일문인이고 누가 아닌지를 꼽다 보면 이내 이야기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마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정작 제대로 그걸 찾아보지는 못했다. 교단을 떠날 시기를 저울질하게 된 이즈음에 와서 임종국 선생의 역저 <친일문학론>을 사게 된 것은 늦게 든 철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개화 전후의 우리 현대문학사를 설명할 때마다 나는 일종의 갈증을 느끼곤 한다. 신체시와 신소설, 자유시와 현대소설 등 개화기와 현대문학을 여는 첫 작품을 쓴 문인들은 모두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친일 부역자들인 것이다.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를 썼던 육당 최남선은 보람 있게 죽자따위의 글을 써 식민지의 청년들에게 학도병 출전을 권했던 인물이다. 그는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신소설 <혈의 누>(1906)를 썼던 이인직은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로 매국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러일전쟁 때는 일본육군의 통역 노릇을 했고, 한일합병 교섭에 나서기도 한 인물이다.

 

 첫 자유시 <불놀이>(1919)를 발표한 주요한은 황민화 시집까지 낼 정도의 극렬 친일파였다. 최초의 현대소설 <무정>(1917)을 써 일제 강점기 내내 만인의 연인으로 불리었던 춘원 이광수 역시 육당과 함께 초기 민족주의 활동을 벌이다 변절한 대표적 친일 부역자였다.

 

 유독 친일파가 많은 데가 문단이라는 건 글쟁이들은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에 능란한 이들이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나는 단순히 농담으로만 여기지 않는 편이다. 이른바 문약(文弱)’이란 낱말의 함의가 이들 문인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근현대문학의 효시가 된 작품과 작품집. 왼쪽부터 신체시, 신소설, 현대소설, 자유시가 실린 문예지.
▲ 우리 근현대문학을 연 대표적 문인들은 모두 친일 부역자들이었다.

<친일문학론>을 사 놓고도 꽤 오랫동안 미적대다 연말께야 겨우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어쩌면 이 공부가 현직에서의 내 마지막 문학 공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일인명사전>의 기록을 참고해 가며 책을 읽다가 확인한 것은 그때 태어났다는 것, 그때 살았다는 것 자체가 친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문열)은 아니라는 것이다.

 

친일파 연구의 고전 <친일문학론>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던 친일청산 논의에 대한 작가 이문열의 물타기에도 불구하고 친일은 우리 민족사의 오욕이요, 현실이다. 일제의 식민지배 35년이 현실이듯 친일 부역의 길을 갔던 이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비켜간 간 것도 우리 역사의 일부다. <친일인명사전>은 속절없이 흘려보낸 세월 덕분에 단죄대신 선택된 역사적 성찰인 것이다.

 

 고 임종국 선생 필생의 역작으로 불리는 <친일문학론>1966년 초판 출판 이래 1977년 중판을 펴낼 때까지 10년도 넘게 판본을 거듭하지 하고 묵혀지고 있었다. 그것은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은 우리 역사 못지않게 경이로운 일(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의 교주본 발간사’, 이하 인용 부분 같음)이었다.

 

 문학만이 아닌 전 분야에 걸친 친일파 연구의 고전이 된 이 책의 중요성을 친일파 청산의 굳건한 의지와 그 역사적 의의를 자리매김한 점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문학론>을 다시 펴낸 것은 2002년이었고, 이후 이건제 박사가 2년 가까이 저작물과 원자료를 대조하며 내용에 대한 교정과 주해를 추가한 교주본이 간행된 것은 지난해였다.

 

 496쪽의 부피에 저자의 혼신의 노력이 담긴 초판은 드디어 645쪽의 교주본으로 새롭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복사기도 없던 시절 저자가 도서관을 전전하며 방대한 사료를 찾아 육필로 쓴 원저에는 한자와 일어 고유명사 등이 많았다. 이를 한글로 풀고 출처와 인용을 재확인하고, 필사 과정에서의 오류 등을 바로잡고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화 작업을 거치며 드디어 <친일문학론>은 교주본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한편 <친일인명사전><친일문학론>이 일찍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계승하여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민망한 시기로 남아 있는 식민지 시기 인사들의 친일의 행적을 객관적 자료로 추적한 책이다. 여러 곡절 끝에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이 사전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물들에 대해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 행적 등을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

 

을 넘나들면서 게으른 공부를 하다가 이를 글로 써서 정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 마침맞게 그렇게 정리한 글을 갈무리해 둘 공간(블로그)도 있다. 마음을 먹고 이 글을 쓰기까지 또 좋이 한 달쯤이 걸렸으니 과연 끝낼 수 있을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친일문학론>의 작가 및 작품론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는 마지막 부분의 신인 작가론을 빼면 김동인부터 최정희까지 모두 28명이다. <친일인명사전> ‘문학분야에 이름을 올린 작가는 모두 52명인데 필명 등으로 이름이 겹치는 이들을 빼면 40명이다.

 

 양쪽에 이름이 겹치는 문인이 24, <친일인명사전>에만 있는 이는 16명이고, <친일문학론>에만 있는 이는 네 명이다. 김사량, 김소운, 이효석, 최남선인데 앞의 세 사람은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고, 최남선은 중추원 분야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인직도 문학분야가 아니라 유림에 올랐다.

 

오욕의 역사에 대한 성찰 <친일인명사전>

 

작품보다 친일 행적이 두드러져 사전에 오른 이들은 이름도 낯설다. 이들과 함께 문학평론가를 빼면 대략 17명 정도가 비교적 잘 알려진 문인이다. 순서 없이 짚이는 대로 이들이 쓴 친일 문학을 톺아볼까 한다. 일차적으로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친 이들 문인에 대한 정보로 시작하되 두 책의 도움이 빠질 수 없다.

 

 날짜를 기약하지 않고 쉬엄쉬엄 갈 작정이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그들 삶과 문학의 갈피갈피를 기웃거리면서 그 훼절과 배덕에 혀를 차고 고소를 금치 못할 테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문인의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아이들에게도 그 삶의 진면목을 알려주게 될 것이다.

 

 지난 116일은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 민족시인 이육사(1904~1944)70주기였다. 그가 숨지고 난 이튿날(1944.1. 17) 춘원 이광수는 축 입영(入營)의 노보리(깃발)’과 센닌바리를 찬양한 학병에게 보내는 세기의 감격이라는 글을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몸을 던진 민족시인의 삶과 친일 부역 문인들의 삶은 마치 별개의 경로로 전개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실 이들의 삶과 문학은 동시대에 엇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대의 역사지만 친일, 부역의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는 까닭이 여기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2014. 1.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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