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국뽕’인가, 성숙한 ‘시민의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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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물건에 손댈 일이 없는 사회
얼마 전, 아침 운동을 하는 동네 중학교 운동장 수돗가 근처에 얌전히 접힌 2단 우산 하나가 여러 날 놓여 있었다. 아마 운동하러 온 사람이 가져왔다가 빠뜨리고 간 우산이었다. 평일이었고, 아이들이 체육활동을 하고 지나가는 길목이었는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그 우산은 화단의 회양목 사이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나흘쯤 지난 다음에 가니, 주인이 찾아간 듯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운동장을 걷는 이웃이 “거참, 며칠 아무도 안 건드리더니 주인이 찾아갔나 보네.” 하길래 모두 그랬는가 보다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두어 차례 우산을 두고 가거나, 발을 씻고 나서 손수건을 흘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이나 그다음 날에 다시 운동장을 찾으면 흘린 물건은 아무 손도 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오래 전 일로 딸애가 마트에 다녀오다가 승용차 지붕 위에 사 온 컵라면 6개들이 꾸러미를 놔두고 들어왔다가, 다음날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되찾은 적이 있었다. 누군가 별생각 없이 가져갔을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던 나는 내가 여전히 1990년대 이전의 사고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산도 흔한 물건이고, 까짓것 컵라면도 귀하고 값 나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아무의 손도 타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가 빠뜨리거나 흘린 걸 굳이 몰래 챙겨야 할 만큼 궁색한 이는 없다는 뜻일까. 설사 ‘견물생심’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만약 ‘불법 습득’이 알려지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수치심과 불명예가 더 크고 두려워서였을까.
나는 나라 안에서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휴대전화나 지갑, 가방이나 노트북을 자리에 남겨두고 볼일을 봐도 그걸 잃어버리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유튜브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나는 그간, 커피 전문점에서 노트북을 쓰다가, 잠깐 다른 볼일을 봐야 해서 부득이 짐을 꾸려 나온 적이 있으며, 도서관에서 점심 먹으러 가면서 노트북만 펼쳐놓고 나올 수 없어서 아예 자리를 떴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물건을 잃었던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물건을 펴 놓고 자리를 비우는 게 안전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하지 못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안전한 카페’ 관련 영상을 보고서 나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은 놀랍게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물건으로 자리를 맡아두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믿어지지 않는 안전’이 곳곳에 있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때문이라는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사실이 일정한 영향을 끼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당장 남의 물건에 손을 댐으로써 빚어질 수 있는 자신의, 더럽혀지는 ‘명예’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지 않았을까.
줄서기가 습관이 된 시민들
사람들이 ‘줄’을 ‘제대로’, 그리고 ‘잘’ 서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의 줄서기는 이미 자리를 잡아서 아무도 그걸 새삼스러운 일로 인식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줄서기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그런 질서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가끔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온 편이지만, 그걸 이용하면서 무질서로 인해 불편하였던 적이 전혀 없다. 그건, 나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아주 자연스레 질서를 지키고 있음을 무심히 겪고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아, 정말 사람들이 줄을 잘 서는구나, 하고 느낀 게 20여 년 전에 서울에 들렀다가 사당역 근처에서 경기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여러 개의 줄을 기다랗게 서는 걸 보고서였다. 저마다 목적지가 달라도, 사람들은 푯말 앞에 의심 없이 줄을 서고 버스가 도착하면 그 줄이 일정하게 줄어드는 게 참 신기했었다.
1960·70년대의 끔찍한 교통 지옥
나는 1960년대 말에 대도시의 중학교를 진학해 3년 내내 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아침 등교할 때의 버스 타기는 거의 전쟁 같았다. 탈 사람은 많았고, 버스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회사로 출근하는 어른들도 그 승차 전쟁에서 승자가 되어야만 했다. 넘치는 인원을 태우기 위해 버스 차장과 조수는 문틀에 매달려 승객들을 차 안으로 욱여넣어야 했다.
운 좋게 버스에 탄다고 해도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차 안의 상황도 여전히 지옥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이 한 무리씩 하차하고 나면 그나마 숨통이 틔었지만, 이내 내가 하차할 정거장에 이르곤 했다. 정거장에 나와서 첫 차를 못 타게 되면 출근이나 등교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등교가 날마다 벌어지고 치러지는 전쟁이라면, 명절을 앞두고 귀향 버스를 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전쟁이었다. 대구 북부정류장은 대목 밑이면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사람들로 미어졌다. 모두 한껏 차려입고 고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었는데, 버스는 완행 일색이라 좌석표도 따로 없었다. [관련 글 : 한가위 풍경, ‘귀성(歸省)과 ‘귀향’ 사이]

줄을 선다고 해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심심찮았고, 줄 따윈 일찌감치 포기하고 창문으로 기어올라 자리를 점유하는 용감한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명절을 맞아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 새치기도, 낯 붉히는 시비도 용서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시외버스에 직행 노선이 생기고, 승차권에 좌석번호가 표시되기까지는 그로부터 좋이 10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좌석이 표시된 승차권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차례를 다툴 일을 없애버렸고 늘어난 차편은 기다려 다음 차를 탈 수 있다는 심리적 여유를 제공해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해졌다.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부 정권 때 질서를 지키자는 구호와 캠페인이 국민운동 차원으로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새롭게 시민들이 주도해 간 질서는 관 주도의 운동과 달리, 경제적, 시간적 삶의 여유로 너그러워진 시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는 게 안정적 삶의 기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결과였을 것이다.
‘지혜가 짧아지는 가난’ 대신 ‘마음이 슬기로워진 축복’

명심보감에 나오는 “인빈지단 복지심령(人貧智短 福至心靈 :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지고, 복이 이르면 마음이 슬기로워진다)”이라는 구절은 한국인들이 혼란스러운 빈곤의 시기를 지나 삶의 여유를 되찾은 1990년대 이후의 안정적인 관용의 시절을 잘 설명해 주는 글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매우 극적인 사회적 변화를 함께 겪어왔다. 나는 1984년에 교단에 나가, 2016년에 퇴직했는데, 한 세대가 바뀐다는 32년 동안, 내가 겪은 학교의 변화도 드라마 같았다. 시골 여학교에 임용되어 근무하면서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적지 않은 아이들을 만났으며, 아이 여럿을 둔 가정에서는 급식비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학비가 면제되었고, 무상급식으로 아이들은 급식비 부담에서도 벗어났다. 그건 미리 예견한 일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었고, 그런 급격한 변화는 학교가, 아니 나라가 넉넉해져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어느 날 정신을 수습해 보니, 우리는 선진국의 국민이 되어 있었고, 우리가 동경하거나 경원했던 나라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우리의 저력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물론 개개인의 생활이 모두 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우리는 지금 남의 물건을 탐내거나,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지 못해 질서를 거스르거나 하지는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해졌다.
남의 물건이 부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 하나로 내 삶이 더 좋아지지 않을뿐더러, 그런 순간의 욕망이 자기 삶과 명예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자제하거나 삼간 것이다. 그것은 ‘복이 이르면 슬기로워진다’라는 저 명심보감의 명제와 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곳곳에서,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이 자연스러운 질서와, 배려와 존중으로 우리는 지금 저도 모르게 선진 한국의 국민으로서 다시 서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여유와 관용이 떠받치는 안정적인 사회의 삶은 다른 한편으로 이른바 ‘한류’, ‘소프트 파워’의 발현으로 더욱 상승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바라보는 세계의 평가 앞에서 민망한 ‘국뽕’이라며 굳이 손사래를 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굳이 부정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6. 7.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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