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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괜찮은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이상한 판결’들

by 낮달2018 2026. 5. 18.

상식과 국민의 눈높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재판들

▲ 국민들은 사법부를 신뢰해 왔지만, 근년 들어 사법적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때론 국민들의 눈높이와는 다른 판결이 적잖다.

어린 의붓딸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등 상습적인 학대를 일삼다가 기소된 양아버지가 있다. A씨(49)는 사실혼 관계인 아내의 딸 B양을 2013년 12월부터 약 1년 5개월간 10여 차례 걸쳐 신체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았다. 학대가 이뤄진 기간 동안 B양은 3~5세였는데, A씨는 ‘말을 듣지 않는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B양을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붓딸 상습학대한 양부의 1심 집행유예, 2심에서 바로잡혔다

 

그는 B양을 통돌이 세탁기에 넣어 기기를 작동시키거나, 접착테이프로 몸통을 벽에 붙여 못 움직이게 하거나, 소주를 강제로 마시게 한 뒤 가혹 행위를 하는 등 학대를 일삼았다. 아이를 때리는 등의 신체적 학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상천외하고, 잔인한 학대였다.

 

그런데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심의 결과는 기자들이 놓쳤는지 보도가 되지 않았던 거 같다. 이 판결이 드러난 것은 항소심에서 그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으면서다. 지난 6일, 광주지법 형사3부는 A씨(49)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에게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함께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내렸다.

 

재판부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학대행위를 반복적으로 했다”라며 “B양은 현재도 상당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정황을 찾기가 어렵다”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 3살 의붓딸 세탁기 넣고 돌린 40대 계부2심서 실형 선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건 다행이긴 하다.

▲ 지난 5월 6일, MBC 라디오의 '시선집중'에서는 의붓딸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는 만행을 저리른 양아버지 관련 재판에 대해 논평했다.

들끓는 분노, ‘법관의 독립’에 막혀 출구가 없다

 

MBC 라디오 ‘시선집중’의 김종배 진행자는 이 소식을 전하며 잔뜩 분개했다. 그는 “법과 상식의 간극이 넓고도 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상식에 입각해서 말해 보겠다”라며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이뤄진 인면수심의 범죄’, “형량 이전에 죄목이 잘못된 거 아니냐. 이 사건은 살인미수로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요지의 논평을 이어갔다.

 

분노한 청취자, 유튜브 구독자들의 댓글이 폭발한 것은 당연하다. 다른 일을 하면서 방송을 듣다가 일을 멈추고 나는 솟구치는 분노를 삭여야 했다. 도대체, 이런 “판사○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중얼거리면서 혼자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정말 이런 황당한 판결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독립된 사법부, 법관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니 가타부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나. 판사들은 자신의 판결이 논란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인사조치나 징계를 당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제106조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 선고가 아니면 파면되지 않고, 징계처분이 아니면 정직·감봉 등의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논란이 있다고 해서 사법행정권자가 판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 이는 ‘사법권 침해’에 해당한다. 특정 사건의 판결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고 해서 이를 ‘좌천’이나 ‘인사조치’로 연결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복은 ‘항소’나 ‘상고’ 등의 상소 제도를 통해 상급 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저울과 칼을 든 것은 그것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법관의 징계는 판결 내용이 아닌 법관 개인의 중대한 비위나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있을 때만 법관징계법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부쳐진다. 징계 사유는 ‘법관이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와 ‘직무를 게을리하거나 현저하게 불성실하게 진행한 경우’ 두 가지뿐이다.

 

과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재판)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하여 인사 불이익을 준, 이른바 ‘사법농단’으로 불린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법부가 권력을 남용해 헌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로 규정되어 대대적인 수사와 재판을 받은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판결만 그런가, 구속과 압색 영장 발부·기각도 엿장수 마음대로

 

판결만 그런 건 아니다.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 발부나 기각도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느낌을 주는 사례가 좀 많은가 말이다. 내란수괴를 풀어준 판사나, 징역 15년 구형에 1년 8개월을 선고하는 판사, 내란중요임무종사죄를 다투는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위법성 인식 여부 및 혐의 다툼” 사유로 기각한 판사들…….

 

검찰이나 특검, 그리고 피해자 등 당사자의 반발 정도만 보도할 뿐, 이런 상황을 언론 등에서 정식 의제로 삼거나, 본격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이유도 역시 재판의 독립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사 개개인이 판결이나 결정을 좀 더 무겁게 여기고 상식과 국민의 눈높이를 헤아리는 태도가 진정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이런 판결이나 결정을 접하면서 국민은 씁쓸하고 분노하고, 기가 막혀서 입속으로 욕설을 삼킬 수밖에 없다. 하긴 수십 년 법관 경력에 대법관의 지위에 오른 이들 가운데서도 기막힌 판결의 흑역사가 회고되기도 하니 더는 이를 말이 없다.

 

판결의 ‘흑역사’도 만만치 않다

 

현직 대법관 가운데도 판사 시절, 버스 회사의 돈 800원을 빼돌린 버스 기사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유흥주점에서 85만 원 상당의 접대와 향응을 받은 검사의 면직 처분은 지나치다며 부당하다고 판결한 이가 있다. 일반 시민과 공직자의 비위를 다루는 잣대가 달라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내지 ‘법관의 이중잣대’라는 거센 비판과 논란을 낳았던 이는 오석준 대법관이다.

 

천대엽 대법관은 과거 판사와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할 당시, 독재 정권 시절 검찰이 조작한 간첩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하거나 관여했다는 과거사 논란이 있었다. 훗날 재심을 통해 무죄가 밝혀진 수많은 ‘법원의 흑역사’ 사건에 대해 대법원 최종심으로서 검찰의 공소장과 판결을 기계적으로 답습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해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판사 시절도 아닌, 대법관으로 근무하던 때, 10대 여학생을 임신시킨 40대 남성에 무죄 확정 선고한 적도 있다. 대법관에 오른 이들이 이 정도면, 이 밖에도 드러나지 않은 판사들의 황당 판결, 상식과 국민의 눈높이에 반하는 판결은 얼마나 많을까.

 

법관은 판결의 ‘책임을 자문’해야 한다

 

판사들은 공부 잘하고,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범죄자에게 형을 선고하는 매우 엄중한 지위에 올랐다. 때에 따라서는 피고의 생살여탈권을 가지기도 하는 자리라서 그들은 혹시 자신을 권한을 신의 그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이들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Equality before the law).”라거나 “법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와 같은 법언(法彦)을 내면화해 재판에 임한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판결을 내려도 그 결과의 책임을 묻지 않고 오직 그의 양심을 절대적으로 신뢰받는 우리의 판사들은 피고 눈의 ‘티’는 보지만 자가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처럼 보인다.

 

사회적 절대 신뢰 앞에 이들이 보답하는 길은 “네 개의 덕목이 재판관에게 속하니, 공손히 듣고, 현명하게 대답하며, 신중하게 심사하고, 공정하게 판결하는 것이다.”(소크라테스)나 “정의를 신속하고 값싸게 내리기는 쉽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낫다.”(피터 밀렛)는 걸 늘 명념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2026. 5.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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