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의 심사위원들의 공감과 수용

안동의 여학교에 근무할 때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 가운데 아버지가 조각가로 미대 교수인 아이가 있었다. 우연히 그 부모를 잘 아는 동료로부터 그 아이가 부모와 함께 미술 전람회에 갔다가 전율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핏속에 잠든 미적 공감이 깨어나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었다.
미술전람회에서 ‘전율’한 조각가 아버지의 딸
‘전율(戰慄)’은 ‘싸울 전, 두려워할 율(률)’ 자를 써서 “① 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림. ②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위의 소녀가 전람회에서 미술 작품을 보다가 전율한 것은 ②의 의미가 되겠다.
그런데 전율이란 아무에게나 쉽사리 오는 게 아니다. 어떤 특정한 충격적 경험을 하면서, ‘폐부를 찌르며 조응하는 내면적 반응’으로서 전율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쯤 겪게 될까. 나는 소년기에 문학에 입문하였지만, 시를 한 번도 제대로 써 보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노년에 들면서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그 까닭을 ‘시를 읽으면서 한 번도 전율해 보지 못해서’라고 가늠하고 있다.
시는 산문(소설)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다.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그 직관(直觀) 말이다. 시구를 읽으면서 이미 그는 그 시의 울림과 의미를 언어 이전의 수준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나는 시적 언어에 민감한 정서, 미적 감각을 지닌 이들은 시적 언어를 일별하면서도 그 공감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걸 일종의 ‘전율’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면서 넘어가는 특정한 시어와 특정한 표현을 시인들은 그것 그대로 이미 내면화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나는 제이티비시(JTBC)에서 방영한 오디션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싱어게인(Sing Again)-무명 가수전’을 흥미롭게 시청하곤 했다. 나는 이 무명 가수들 가운데 누가 노래를 잘 부르는 뛰어난 가수인지보다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곤 한다.
가수든, 작곡가든, 작사가든 심사위원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 없다. 비록 이들은 실용음악으로 대중을 위무하는 대중음악인이지만, 이들이 오래 몸담아온 노래를 통해서 음악에 대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해와 관점을 지니게 된 이들이다. 다소 접근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음악 자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부문의 벽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출연자들에 대한 평가가 다소 다르다 하더라도 그건 본인의 취향이거나, 관심 장르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것 자체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박한 이유는 그런 차이와 본인의 성격에서 빚어지는 차이일 뿐이다.
나는 사실상 출연자들의 등위를 가리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어떤 출연자의 노래가 더 좋아 보이는데도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어긋날 때도 나는 그들의 평가가 기본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넘어갈 뿐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어금버금한 출연자들을 보면서 나는 심사위원들도 그럴 땐 곤혹스럽겠다고 여기기도 한다.
경연을 시청하면서 내가 깊이 ‘공감’한 것들

나는 그들이 음악으로 이룬 성취를 평가할 만한 어떤 전문성도 없고, 특정한 사람에 대한 호오도 따로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 전문성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연을 시청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깊이 공감하는 것은 따로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노래 잘한다’라는 건 우리 같은 비전문가들도 제 나름의 판단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래를 전문적인 음악적 식견과 수준으로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대체로 고개를 주억거리곤 한다.
나는 단순히 심사평보다는 가수가 노래를 부를 동안에 일부 심사위원들이 보여주는 표정과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물론 그들의 다소 낯선 전문적인 심사평도 참고하지만, 정작 나는 출연 가수들의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심사위원이 가수와 작곡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주 예민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표정의 변화에 주목했다.
출연 가수들이 부르는 경연곡을 주의 깊게 듣는 이들의 표정은 심사위원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일부 심사위원의 저절로 급변하는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나는 그런 형식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공감 능력에 경탄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음악을 수용하는, 음감(音感)을 포함한 미적 감각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드러낸 것이었다.
‘싱어게인4’와 직전의 ‘싱어게인3’은 모두 이승기가 진행을 맡았고, 심사위원으로 임재범, 윤종신, 백지영, 김이나, 규현, 이혜리, 코드 쿤스트가 출연했는데, 선미와 태연이 각각 싱어게인3과 4에 각각 출연했다. 이 가운데는 작사가인 김이나,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코드 쿤스트를 빼면 모두 가수다. 윤종신은 작곡가 겸업이다.
이해리와 선미의 전율에 가까운 공감 반응
나는 ‘쉰세대’여서 임재범, 윤종신, 백지영은 알지만 나머지 심사위원은 잘 모른다. 가수라는 걸 확인하고도 그들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조차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극적인 표정과 몸짓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는 이해리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해리는 음악 듀오 다비치의 리더,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고 하는데, 다비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싱어게인3과 4에 출연해 경연을 심사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가 적지 않은 출연자의 노래에 반응하는 모습은 그 자신도 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매우 극적이었다. 우선이 표정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일그러지고, 입이 벌어지면서 턱이 경직되는 듯하고, 손을 모아 입을 가리는 순서로 진행되는 그의 모습을 나는 경이로움으로 지켜보곤 했다.
그다음에 인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는 싱어게인3에 출연한 선미다. 그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거나, 입을 조금 내밀기도 하고, 입을 벌리고 양손으로 볼을 감싸 쥐기도 하는 등의 제스처로 자신의 감정의 파장을 표현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기면 김이나나 백지영 같은 경우는 표정의 변화보다는 주로 심사평으로 자신의 반응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남성 심사위원은 비교적 표정의 변화가 적은 편인데, 그중 윤종신은 성격 탓인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할 땐 미소만 지을 뿐, 다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다. 임재범은 매우 진지한 태도로 짧고 격려에 무게가 실린 심사평을 하는 인데, 가끔 출연자의 노래에 대해 길게 한숨을 쉬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형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규현도 가끔 표정이 굳어지거나 입을 벌리는 등의 변화를 드러냈고, 태연은 놀라듯 입을 커다랗게 벌리곤 했다.
‘공감’에서 ‘전율(戰慄)’까지, 예술가들의 미적 공감, 그 충격적 조응(照應)
이들 심사위원의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이 전문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연 참가자의 음악을 어떤 편견도 없이 직관적인 감정의 파장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은 절대 음감을 지닌 현업 음악인들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표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이라는 편견도, 단지 한때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떤 문제나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의 존재가 그 분야 발전의 전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연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만족과 함께 프로그램에 대한 일종의 신뢰 같은 걸 느낀 이가 어찌 나만이었겠는가.
앞서 말한 여학생이 전시회의 미술 작품 앞에서 보였다는 전율은 노래가 주는 감동과 충격을 표정과 몸짓으로 드러낸 심사위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감’에서 ‘전율(戰慄)’까지, 예술가들의 미적 공감, 그 충격적 조응(照應)은 때로 보통 사람들의 감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2026. 1.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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