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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피지배’의 시간을 견뎌낸 슬픈 아시아, 함께할 공감과 ‘반제·반독재’의 연대

by 낮달2018 2026. 1. 21.

김명희의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나라말, 2025)를 읽고

▲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나라말, 2025)

◆…국어과 선배 김명희 선생이 베푼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지난해 11월 15일에 이 책을 우편으로 받아서 오랫동안 책상 위에 쟁여 놓았었다. 짬을 내어서 느슨한 소감이라도 끄적거리려 했는데, 해를 넘기고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뒤늦은, 서평이라기보다 소감이라는 게 더 알맞을 듯한 난삽한 글을 붙인다. 이 글은 제1부 아시아 편을 중심으로 썼다. 익숙한 러시아나 유럽, 미국 편은 굳이 소감을 곁들이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믿어서다. 글을 쓰면서 새삼 나는 우리가 별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시아가 사실은 함께 피지배의 시간을 견뎌냈고, 반제국주의와 반독재 투쟁을 통해 깊이 공감하고 연대해야 할 나라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쓴 느슨한 글인데, 중언부언하느라고 분량만 잔뜩 늘어났다. 예전 같으면 퇴고 과정에서 좀 깡총하게 줄이겠지만, 그냥 느슨한 대로 올린다. 어떻게 하든 그게 ‘나의 글’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 거니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책에 소개된 문학 작품의 한글 번역본도 간단하게 이미지로 소개한다. 여기 붙인 이미지는 따로 출처를 밝힌 것 외엔 모두 책에 실린 이미지를 거칠게(폰으로 찍고, 그걸 보정하는 방식으로) 옮겼다.   

 

김명희의 세계문학 기행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출간

 

문학 작품을 낳거나 배경이 되었던 지역을 돌아보며 문학을 더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했던 국어 교사 김명희가 여행의 과실을 아이들과 나눔으로써 ‘교과 나들이’란 이름을 붙인 문학기행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를 펴낸 건 지난 2012년이다. 그리고 13년 뒤인 지난해, 퇴직 교사 김명희는 그 책의 속편 격인 세계문학 기행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를 내놓았다. [관련 글 : 살아 있는 문학 수업, 김 선생의 교과 나들이]

▲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나라말, 2012)

앞선 책이 국내의 문학 공간을 돌아보았다면, 이번 책은 그가 배낭을 메고 외국 문학의 현장을 누비고, 그 문학을 낳은 땅과 역사 속의 삶과 사회를 복기해 본 기록이다. 나는 이 책에 실린 글의 상당 부분은 월간 <작은책>의 연재로 매달 읽었지만, 한국 문학기행에 이어 세계 문학기행으로 나아간 그의 여정에 적이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과 유럽보다 오히려 더 낯선 아시아의 여러 나라 문학 공간을 답사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혼란스러워졌다’.

 

정작 우리는 아시아에 살지만, 일본과 중국을 빼면 나머지 나라의 문학이나 역사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 우리의 시선은 늘 서구를 향하고, 그들의 문학을 준거로 우리 문학을 바라보려는 시각에도 익숙하다. 독서나 출판이 서구문학에 편중되게 이루어지는지라 우리는 서양 문학을 훨씬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기행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문 대륙 아시아, 그리고 그 문학

 

이 문학기행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문 대륙은 유럽도, 미국도, 러시아도 아닌 아시아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빼고,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의 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아시아 문학을 읽는 데에 번역 문제 등 여러 가지 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고 해도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는 마땅한 변명을 찾지 못한다.

 

굳이 경제 발전 정도를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눈길은 서구를 향해 지나치게 크게 열려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식민지 시대의 종주국이자, 일찌감치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일본의 문학은 너무 익숙하고, 같은 한자 문화권의 중국도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으로 불리는 나머지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 눈길은 무심하고 심드렁하기만 하다. 

▲1980년대에 번역 소개된 <사이공의 흰옷>은 금서가 되었다. 오른쪽은 히틀러의 폭거 앞 비폭력 저항을 다룬 책.

그들의 문학은 교과서에도 다루어지지 않거니와, 굳이 노력하지 않으면 쉬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작 중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쳐 왔지만, 나는 한 번도 그들의 문학에 곁눈조차 주어 본 적이 없다. 내게는 1980년대 중반에, 대학가에서 널리 읽힌 베트남 문학 <사이공의 흰옷>( 응우옌반봉, 1972)을 읽은 기억만이 희미할 뿐이다.

 

지금은 내용조차 잘 기억되지 않는 이 작품은 남베트남의 독재와 외세에 저항한 학생운동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당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반미 항쟁 담론 등과 맞물리면서 대학가에서 널리 읽혔는데, 당시 한국의 군부독재 정부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었다.

 

“풍성한 과일과 값싼 생활비,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기억되는 나라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려는 발걸음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남아 문학에 관심을 돌”려 “작품 속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산 시대와 공간을 찾아 지도책과 지구본을 옆에 끼고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게 정작 작품을 읽는 시간보다 몇 배나 오래 걸렸”는데, 그는 “역사를 모르고는 아무것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들어가는 말’, 아래도 같음)을 깨닫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풍성한 과일과 값싼 생활비,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기억되는 이들 나라의 삶과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왕에 발표한 글에서 그가 아시아 부분을 전부 새로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문학기행이 숱한 여행자들의 한갓진 동남아 여행기와 구별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 2.28을기념하는상징탑. 2.28은 국민당 정권의 차별과 수탈에 맞선 본성인들의 무장봉기다.

 

타이완의  2.28 사건(1947), 말레이시아 <해 질 무렵 안개 정원>


저자의 첫걸음은 타이완의 2.28 사건(1947)의 배경이었다. 국민당 정권과 외성인의 차별과 수탈에 맞선 본성인들의 무장봉기인 이 사건은 문학작품과 영화 <비정성시> 등으로 환기되고 변주된 바 있다. 그것은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릴 만큼 발전을 거듭한 타이완이 지우지 못한 지배와 탄압의 상처고, 그 치유를 위한 문학적 대응이다. 비슷한 시기 한국 제주도에서 일어난 4·3항쟁(1948)도 비슷한 역사적 사건으로 오래 제주인들의 가슴에 트라우마로 남은 것과 견주어지는 대목이다.

 

말레이시아에선 <해 질 무렵 안개 정원>(탄 트완 앵)의 배경인 카메론 하일랜드를 찾아, 시공을 뛰어넘어 ‘아시아 공통의 역사적 아픔 ’을 확인한다.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의 결선 진출작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말레이시아 정글을 배경으로 ‘전쟁의 상처와 증오’라는 아시아의 아픔을 ‘기억과 망각 그리고 예술’로 치유하는 과정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는, 비극과 전쟁의 역사로 얼룩진 땅이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을 ‘람보’ 류로나, 한국소설 <머나먼 쏭바강>, <하얀 전쟁> 등, 국외자의 시선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당자들의 아픔과 고뇌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이공의 흰옷>과 같은 베트남전 참전자나, 보트피플로 살아남은 사람 등 베트남 사람의 시점으로 쓴 작품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 빈호아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한국도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베트남의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 위키백과 사진

베트남과 한국의 악연, 그리고 그 증거들,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베트남은 한국과도 악연을 나눈 나라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전에 뛰어들면서 한국군이 자행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로 이루어진 악연은 학살 마을의 벽화와 증오비, 위령비 등으로 박제되었다. 식민지 피지배와 수탈,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공유했지만, 베트남전 참전으로 가해자가 되고 만 우리가 현대사의 질곡을 베트남 문학으로 성찰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하는 순간이다.

 

인도네시아 문학기행은 에카 쿠르니아완(1975~ )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라는 문학 작품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은 네덜란드 식민 시대부터 일제 식민지를 거쳐 광복기와 그 이후까지 5대에 걸친 한 여성의 이야기다. 식민 통치기를 거쳐 독재 시기까지를 살아낸 여성의 삶을 오로지 피해와 희생으로 얼룩진 고난의 연대기다. 그가 감내해야 했던, 상상을 뛰어넘는 잔혹한 삶과 상처의 시간을 우리는 단지 짐작만 할 뿐이지만, 우리가 그들과 함께 가혹한 피지배 역사의 피해자라는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한때 류큐 왕국이었던 오키나와는 일본에 강제 병합된 뒤 태평양전쟁 당시 주민들이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막기 위한 총알받이’가 된 뒤틀린 역사를 거쳐야 했다. ‘옥쇄’라는 이름으로 집단 자살을 강요당하기도 하면서 주민 1/3이 희생되었고, 끌려온 조선인 다수도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었으니, 이 낯선 땅도 우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오키나와, 하이타니 젠지로 <태양의 아이>, 캄보디아

 


교육자이자 평화운동가인 하이타니 젠지로(1934-2006)의 소설 <태양의 아이>는 “애초 일본인이 아니면서 일본인 역할을 해야만 했
던 사람들의 비극, 즉 ‘오키나와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그 비극의 일단을 증명하는 시설이 평화기념관 야외에 23만 명의 이름이 새겨진 ‘평화의 초석’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자 1만 명 이상의 조선인 이름이 새겨진 이 돌은 아시아의 근현대가 지배와 피지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환기해 준다.

 

작가의 캄보디아 문학기행은 1975~1979년 폴포트의 크메르루주 공산 혁명군의 학살을 다룬 바데이 라트너의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1970년대 후반 캄보디아의 비극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찾는 주인공 라미의 시선을 통해 역사의 고통과 인간 정신의 강인함을 그려냈다.

 

크메르루주는 화폐제도의 폐지·도시 주민의 강제 농촌 이주 등의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내세워, 기존의 산업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기업인·유학생·부유층·구 정권의 관계자 등을 반동분자로 몰아서 학살했는데, 이로써 캄보디아 인구는 약 25% 급감했다. 이 학살의 기억을 다룬 작품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닮은꼴로 진행된 학살과 함께, 잔혹한 역사를 넘어 인간 회복과 그 치유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소개되기도 했던 태국-버마의 철도. 많은 포로들의 주검이 쌓였던 '죽음의 철도'의 현재 모습

 

태국-버마 철도에 얽힌 소설과 회고록, 수기

 

태국으로 가는 지은이의 발걸음은 시골 마을 칸차나부리에 머문다. 그곳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1943년 태국 시암의 칸차나부리에서 태국-버마의 철도 건설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와 일본군, 그리고 조선인 감시원 이야기의 현장이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소개되기도 했던 이 죽음의 철도 건설 과정은 호주 출신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과 영국인 포로 에릭 로맥스의 수기 <레일웨이 맨>(1998), 그리고 현지의 연합군 포로수용소 감시원 출신의 조선인 이학래(1925~2021)의 회고록 <전범이 된 조선 청년>으로 각각 보고되었다.

 

이학래는 일본군에게 죽지 않으려고 포로들을 가혹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인임에도 연합군 포로들로부터 강한 증오와 저주를 받았고 결국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도리고 에반스는 이학래의 회고록 속 던롭 중령이었고, 이학래는 이 소설에서 조선인 감시병의 모델로 등장한다. [관련 글 : 60년 넘게 일본 정부와 싸운 92‘BC급 전범이학래]

 

자신을 고문한 일본군에 대한 에릭 로맥스의 복수심은 반세기 뒤에 일본군을 만나서 사죄와 용서를 나누며 스러졌고, 이학래도 뒷날 호주에서 던롭을 만나 깊이 사죄하면서 동시대의 젊은이들은 전쟁 속에 빚어진 원한을 화해로 매조졌다. 태국 문학이 아니라 태국을 배경으로 한 외국 문학의, 격랑의 시대를 함께한 이 이야기는 서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닐라 중심가에 세워진 독립 영웅 호세 리잘 공원의 조형물.

필리핀, 호세 리잘의 <나에게 손대지 마라>

 

필리핀 문학기행은 필리핀의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저술가, 시인인 호세 리잘의 국민 소설 <나에게 손대지 마라>(1887)로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스페인 식민 지배 아래 필리핀 사회의 부패와 모순을 비판하며 필리핀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그의 작품은 “아시아인들에게 민족주의 정신을 일깨운 최초의 소설”이라고 한다.

 

이 작품이 불온 소설로 치부되면서 작가 호세 리잘은 반란의 배후 조종자라는 죄명으로 총살되었는데, 그가 죽은 12월 30일은 ‘리잘 데이’로 국가 공휴일이 되었다. 그의 소설 한국어 판본을 읽고, 그걸 지니고 인트라무로스의 리잘 박물관을 찾은 저자를 바라보는 현지 학생들은 환성을 질렀단다. 새롭게 부상한 아시아의 소프트파워 강국 선진 한국의 관광객이 찾아와 자신들이 영웅으로 숭앙하는 호세 리잘의 작품을 읽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아이리스 장의 동상(부분) 그의 저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의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이제항(리지샹) 위안소'는 유적진열관으로 바뀌었다. 입구의 '위안부' 동상.

중국, 아시아의 홀로코스트, 일본군 위안소

 

지은이의 발길은 중국도 지나치지 않는데, 그는 난징에서 ‘아시아의 잊힌 홀로코스트’를 환기하면서,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를 통해 그 끔찍한 살육과 분노, 슬픔을 가늠한다. 난징의 아시아 최대 규모인 ‘이제항(리지샹) 위안소’의 자료를 전시하는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에서 난징과 세계를 넘는 ‘여성들의 평화’를 소망하는 저자의 기원이 인류의 보편적 지향이라는 사실을 독자는 확인할 수 있겠다. [관련 글 : 난징의 능욕’,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 부음에서도 밝히지 못한 이름, 말을 잃었다]

 

중국과 망명지의 여성들, <세 여자> 그리고 타이항산

 

그는 또 조선희의 장편 소설 <세 여자>의 배경이 된 중국 옌안(延安)의 조선의용군 격전지인 마전리 운두저촌을 찾는다. 거기는 식민지 시대 독립과 무산계급 해방을 꿈꾼 세 명의 지식인 여성, 주세죽-허정숙-고명자의 삶과 투쟁과 일정하게 이어져 있다. 옌안과 타이항산은 팔로군과 조선의용대가 항일 투쟁을 벌인 주 무대로 허정숙은 여기서 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과장을 맡아 항일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 중국 팔로군과 조선의용대가 항일 투쟁을 벌인 주 무대가 된 옌안의 타이항산 협곡. 여기서 윤세주와 진광화 등 의용대원이 전사했다.

마전리 운두저촌은 1942년, 김원봉이 조직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머물렀던 고장으로 일본군의 대규모 소탕 작전으로 장자령 전투에서 윤세주, 진광화 등 많은 의용대원이 전사한 곳이다. [관련 글 : 조선의용대의 영혼윤세주 열사, 타이항산에서 지다]

 

운두저촌에는 ‘조선의용군 옛터’ 빗돌과 한국과 중국이 같이 세운 ‘조선의용군 태항산 지구 항일전 순국선열 전적비’가 서 있다. 반대쪽 마을로 가는 길목, 벽돌로 지은 당집 담벼락에 조선의용대가 쓴 한글 구호가 작가를 붙잡았다. 그것은 타이항산에서 조선의용대가 세운 용맹과 희생을 기리고자 현지 주민들이 박제해 놓은 기록이다.

 

“강제병(强制兵) 끌려 나온 동포들은 팔로군이 있는 곳마다 조선의용군이 있으니 총을 하늘로 향하여 쏘시오. 조선말을 자유로 쓰도록 요구하자.”

▲ 마전리 운두저촌의 당집 벽면에 하얀 페인트로 쓰인 한글 표어. 조선의용대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고자 한 글귀다.

허정숙은 조국으로 돌아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주세죽은 소련 모스크바에서 망명자로 살다가 외롭게 죽었다. 중국과 소련, 카자흐스탄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 망명자의 연대기는 망국민의 뿌리 뽑힌 삶과 함께 이들이 꿈꾼 세상과 현실의 간극을 아프도록 환기해 준다.

 

피지배 시기를 견뎌낸 슬픈 아시아

 

일제의 포로수용소 감시인으로, 망명 독립운동가로 이국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다른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라는 피지배 시기를 견뎌내야 했던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저마다 피억압 시대를 겪은 아시아 제국의 역사는 슬프다.

 

동시에 그것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반제국주의와 반독재 투쟁을 통해 깊이 공감하고 연대해야 할 나라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야만적 인디언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기병대 영화에 박수를 보내던 신생 독립국의 관객들이 그것이 ‘평정’이 아니라, ‘학살’임을 깨닫고, 자신의 처지가 기병대가 아니라 인디언의 그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력의 상승이 우리를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나 북미의 구성원으로 옮겨가게 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책을 새롭게 읽으면서 나는 가끔 책을 놓고 골똘하게 생각하곤 했다. 작가가 떠난 문학기행은 가이드를 따라 편하게 도는 여정이 아니다. 그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 적지 않은 공부를 한 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여정을 따라 떠나는, 고행이 덤으로 딸린 여행이다.

 

독자야 ‘그만’이지만, 결코 편할 수 없는 여정을 선택한 작가

 

독자들이야 작가의 여정을 편안하게 따라가면 그만이지만, 작가에게는 결코 편할 수 없는 여행이다. 이러한 여행을 기획하고, 관련 문학 작품을 읽고, 그 나라의 역사와 삶의 얼개를 파악하는 일 따위를 즐거이 받아들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작가는 그것을 해내고, 한 권의 책으로 독자와 만났다. 서두에서 내가 혼란스러워졌다라고 한 것은 그러한 작가의 태도 앞에서 문득 자신이 돌아봐져서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을 애써 공부하며, 그 기행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문학, 삶과 투쟁을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의 그것을 성찰한 작가의 여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나는 골방에서 자료를 섭렵하여 쓰는 책보다 발로 숨 가쁘게 뛰어서 이루어낸 이 문학기행이, 그 성패에 떠나 그것 자체로도 매우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261쪽의 지면 곳곳에 시원하게 박힌 원색의 사진 이미지들이 좋았다. 글쎄, 언제 그런 기회가 있다면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시원스럽게 쓰는 그런 책을 한 권 내고 싶기도 하다. 문학기행의 텍스트가 얼마간 딱딱하고 지루하다면(앞서 <작은책>에 연재한 글을 읽고 ‘재미없다’라고 평한 오랜 벗 장은 이번 글은 재미있다고 말해주었다.) 천천히 책속의 이미지 도판을 훑어보는 것도 독서의 한 부분이 되는 데 손색이 없다.

 

나는 지난해에 낸 두 번째 책으로 내 출판 이력을 닫았지만, 70대 중반의 작가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그 여정을 접을 것 같지 않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글감이나 여정이 책이 되어 나오는 어느 봄날을 떠올리며,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를 다시 뒤적여 본다.

 

 

2026. 1.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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