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지하철역 ‘문화·체육 공간’은 좋은데, 웬 ‘FUN STATION(펀스테이션)’?

by 낮달2018 2025. 12. 12.

정책 명을 ‘한글’로 바꾸라는 문체부의 ‘권고’를 사실상 거절한 서울시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2025년 12월 9일, MBC의 '시선집중'에서는 정책명 표기를 두고 대립한 문체부와 서울시 관련 내용을 다루었다.
▲ 서울시의 정책 명이 영자와 로마자로 표기되면서 문체부의 한글 표현으로 교체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서울시는 이를 거절했다.

서울 시민들은 서울시 지하철 역사 혁신 프로젝트(펀 스테이션)인 ‘RUNNER STATION’과 ‘FUN STATION’이라는 표지를 이제는 ‘러너 스테이션(RUNNER STATION)’과 ‘펀 스테이션(FUN STATION)’이라는 형태로 다시 만나게 됐다. 이들 표지를 쉬운 한글로 바꾸라는 문체부의 요구를 서울시가 사실상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관련 동영상 : 펀스테이션, 스마트무브스테이션문체부 권고에도 서울시 국어 대체어 없다 (MBC 251209 방송)

 

펀 스테이션은 뭐고, 러너 스테이션은 또 뭔고?

 

펀 스테이션은 지하철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시민들이 즐기고 운동할 수 있는 문화·체육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펀 스테이션은 지하철역 ‘혁신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되며, 여의나루역 ‘러너 스테이션’, 먹골역 ‘스마트 무브 스테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이를,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역사를 재미있는 랜드마크로 만들고 도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 서울시의 지하철 역사 혁신 프로젝트인 '펀 스테이션'이 문체부의 한글로 바꾸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사실상 거절했다.

그런데 이 낯선 이름의 정책은 실제 로마자로 표기되긴 하지만, 영어에도 없는 조어다. 펀 스테이션은 굳이 번역하자면 ‘재미있는(또는 즐거운) 역’이 되겠고, 러너 스테이션은 이름 그대로 지하철역 내에 있는 러닝장이니 ‘러닝 역’이 되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만 낯선 이름이 아니라, 외국인도 그 뜻을 쉬 짐작하지 못한다. 필요에 따라 만든 외국어를 조합하여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낯선 영자 조어에 문체부 교체 권고, 서울시 사실상 거절

 

문체부는 서울시에 국어기본법과 서울시 국어 사용 조례를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국어기본법은 ‘공문서 작성 시에는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을 사용하고 어문규범에 맞게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제14조)라고 규정하고 있고, 서울시 국어 사용 조례에서는 ‘시장은 공문서 등에 어문규범에 맞는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서울 시민에게 국어 사용의 바른 본보기를 보이며 국어를 지키고 빛내고자 힘써야 한다’(제2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예의 정책 명이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도 아니고, ‘어문규범’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문체부의 요구에 서울시에서는 올해 9·10·11월, 3차례에 걸쳐 전문가 자문회의를 연 결과, 러너 스테이션, 펀 스테이션 등의 용어를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누구인가. 서울시에는 공공언어를 담당하는 공식 자문기구로 ‘국어 바르게 쓰기 위원회’가 있다. 이 기구에는 국어국문학 교수, 국립국어원 연구원, 아나운서, 한글문화연대 연구원 같은 15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이 되어 있지만, 이번 자문위원들은 대다수가 상표 가치나 정체성을 고민하는 업종 관계자라든가 광고나 홍보 업계 전문가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지하철 여의나루역에 개장한 러너들의 공간, 러너스테이션. 러닝 맞춤형 시설과 공간이 기획되고 디자인되어 있다고 한다.

애당초 서울시가 문체부에 진행하겠다고 밝힌 새 한글 명칭에 대한 ‘국립국어원 수용도 조사’와 ‘시민 공모’는 따로 하지 않게 되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러너 스테이션과 펀 스테이션이 가장 정책을 알리는 데 적합하다는 이름이라고 결론”이 나서 “기존 용어를 그대로 쓰기로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자 이름은 그대로 두고, 한글로 영자를 표기하겠다는 서울시

 

다만 서울시는 기존에 사용하던 ‘RUNNER STATION’과 ‘FUN STATION’을 한글 음차 표기인 러너 스테이션·펀 스테이션으로 고치고 영문을 함께 적기(병기)로 했다. ‘스마트 무브 스테이션’은 ‘스마트 운동 스테이션’으로 고치기로 했다. 영어로 된 어휘를 한글로 표기하는 건 그나마 낫긴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문체부는 서울시에 ▷러너 스테이션 등 지하철 역사 혁신 프로젝트로 설치 운영 중인 공공 시설물 명칭 및 표기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또는 병기 방안 마련 ▷정책 명·공공 시설물 명칭 전반에 대해 외래어·외국어 단독 사용 지양 및 쉬운 우리말 사용 ▷한글 중심의 공공언어 환경 조성을 위해 국어 책임관의 역할을 적극 활용 등에 대한 개선 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었다.

▲ 6월 7일에 개관한 지하철 7호선 먹골역 '스마트무브 스테이션'. 스마트한 건강관리가 가능한 공간이라고 한다.
▲ 뚝섬역에 들어선 '핏 스테이션'. 다양한 맨몸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커뮤니티 공간이라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회신 공문을 통해 ‘8월, 관련 별도 용역을 발주하고, 9월에는 용역 착수와 시민 공모를, 10월에는 전문가 자문과 국립국어원 수용도 조사를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11월에는 옥외광고물 디자인을 마련하고, 12월에는 공공 시설물 제작을 설치하겠다’라는 계획도 제출했다. 당시 공문에서 서울시는 “러너, 러닝 크루 등은 한글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이러한 생활 속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과정 자체를 시민 참여로 추진하고 문체부 국어정책과, 국립국어원, 서울시 국어 책임관 등 유관부서와 지속 협의하겠다”라고 밝혔었다. [관련 기사 : 종묘 갈등서울시-문체부, 이번엔 한글로 또 기싸움]

 

미봉에 그친 논란, 국어기본법과 서울시 국어사용조례에 어긋나지 않는 공공언어를 고민할 때

 

그런데 서울시는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문제를 미봉 수준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러너 스테이션과 펀 스테이션을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도 어르신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서울시는 국어기본법과 서울시 국어 사용 조례 위반에도 쉬운 공공언어로의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사업이야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2014년에 직접 국어 사용 조례까지 만들어서 ‘승강장’은 ‘타는 곳’, ‘스크린도어’는 ‘승강장문’, ‘환승’은 ‘갈아타는 곳’으로 바꾸자 했던 서울시가 시장이 바뀌자 정작 영어 상용자도 이해하지 못할 조어로 된 영어와 로마자를 고집하는 상황은 아쉽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상황이 오세훈 시장이 내세운 ‘편한 지하철을 펀한 지하철로’라는 구호를 살리자는 데서 비롯했다는 점도 그냥 넘기기엔 입맛이 쓰다. 

 

 

2025. 12. 11.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