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발견] ‘노골(露骨)’과 ‘적나라(赤裸裸)’

그게 그런 한자로 구성된 낱말이었음을 가끔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 최근에 ‘노골’이란 어휘를 쓰다가 아, 하고 무릎을 쳤다. 그게 한자어 ‘露骨’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그건 국어사전을 뒤져보고서 이내 확인되었다.
노골(露骨)과 노골적(露骨的)
‘노골’은 ‘드러낼 노(露)’, ‘뼈 골(骨)’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노’는 흔히 ‘이슬 로(露)’ 자로 많이 쓰이지만, 그 새김에는 ‘드러낸다’라는 뜻도 있다. ‘노천(露天), 노출(露出), 폭로(暴露)’에 쓰인 ‘노’ 자의 뜻은 ‘드러낸다’인 것이다. 드러내는 행위는 몸에 감거나 입은 옷이나 천을 들추어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러나 ‘노골’에 드러난 것은 ‘뼈’다. 뼈는 살이 감싸고 있는 내부, “척추동물의 살 속에서 그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물질”이다. 파생적 의미로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나 핵심”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뼈는 살 속에 숨겨져 있는 물질이어서 다치거나 고의로 살을 벌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뼈를 드러낸다’라는 것은 “숨김없이 모두 있는 그대로 드러냄”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접미사 ‘-적(的)’을 붙여서 ‘노골적’이라는 명사나 관형사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부정적인 속마음을 겉으로 태연하게 드러내는 행위를 표현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여기서 ‘뼈’는 드러내지 않으면 남이 알 수 없는 것이거나, 그 소유자의 본질, 속내, 궁극의 심리를 뜻한다. 그래서 ‘노골적’이라는 표현은 사람이 흔히 체면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부정적 언행을 할 때를 일컫는 말로 쓰이는 것이다.
적나라 (赤裸裸)
체면이나 양심, 도덕 따위를 아예 던져버리는 그보다 더 노골적인 언행을 보일 때 쓰는 낱말로 ‘적나라(赤裸裸)’가 있다. ‘붉을 적(赤)’ 자에 ‘옷벌을 나(裸)’를 잇달아 써 “① 아무것도 입지 아니하고 발가벗다, ②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어 숨김이 없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적’은 발가벗으면 드러나는 피부색을 나타내는 말이다. ‘적수공권(赤手空拳 : 맨손과 맨주먹이라는 뜻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에서도 ‘적’은 “맨손, 피부가 그대로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몹시 가난함”이라는 뜻의 ‘적빈(赤貧)’도 속뜻은 맨살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거듭하는 얘기지만, 이러한 낱말을 반드시 한자를 알아야만 이해하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 한자어의 본뜻과 상관없이 그 말을 배워서 올바른 맥락으로 사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아, 그게 그렇게 쓰는 말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면 그 말을 더 깊이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30년 넘게 모국어를 가르친 퇴직 국어 교사가 늘그막에 다시 음미하는 우리 낱말, 한자어의 발견인 셈이다. 이는 물론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은 아니고, 알면 한층 더 그 뜻을 제대로 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쏠쏠한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2025. 11.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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