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거장들 -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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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밝혔듯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아시아 최대 규모 문화공간’이다. ACC의 전시 공간은 전시관인 문화창조원뿐 아니라, 박물관에서도 이루어지고 나머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수준이어서 갖가지 전시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지난 10월 9일, 상설 전시인 ACC 개관 10주년 특별 전시인 <봄의 선언>과 함께 <료지 이케다> 전을 둘러보았고, 유료 전시인 <뉴욕의 거장들>을 관람했다.
<봄의 선언>은 ‘변모해 온 봄의 의미, 함께하는 미래 선언’(<국립아시아문화전당 프로그램 가이드>)으로 생태 위기를 다루는 전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반 시민의 안목으로 전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쉽지 않았다. 위 <프로그램 가이드>의 해설로 대신한다.
〈봄의 선언>은 지구의 위기가 인류 전체로 인한 것이라는 인류세의 담론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본주의 체제의 함정을 발견하고, 국내외 최초로 자본세 이론에 기반한 대규모 전시를 선보인다. 인간-자연의 지배 구조를 통해 이득을 취해온 폭력의 공식은 아시아의 정치 사회 역사적 상황 안에서 그 궤를 함께하며, ‘자연’의 영역에 머물렀던 존재들은 그들의 진짜 이름을 찾고 폭넓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료지 이케다> 전은 “세계적인 오디오-비주얼 아티스트인 이케다의 개인전으로 융복합 예술 분야의 기념비적인 발자취를 조명하는 전시”(프로그램 가이드)다. 이 전시 역시 추상적인 영상을 일별하는 것 외에 관람객이 영상을 통해 어떤 공감을 모색하는 게 쉽지 않다. 관련 작품 사진을 한 장 붙이는 것으로 소감을 갈음한다.


<뉴욕의 거장들 :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국내 최초로 열리는 추상표현의 집중 조명 전시다.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예술가들이 “인간의 투쟁을 추적하고, 종교, 역사, 전통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표현하고자” 한 “뉴욕을 배경으로 활동하던 뉴욕화파 작가들에 의해” 태동한 사조다. 다음은 팸플릿의 해설이다.
1940년대 추상표현주의 사조의 출현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22 세계대전 (1939~1945) 전후 뉴욕에 정착한 작가들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작품 창작 기법을 새롭게 도입하고, 내면의 감정을 응축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들의 역동적인 활동은 뉴욕을 단숨에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시켰고, 이후 미국은 문화적 황금기를 이끌어갈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추상표현주의는 유럽 미술사의 유구한 흐름 속에 미국미술을 최초로 각인시킨 역사적인 미술운동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본 전시는 20세기 현대미술의 창조적 혁신을 이끈 추상표현주의 작가 21인의 핵심 작품들로 구성됩니다. 미술사적 의의와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갖춘 뉴욕 유대인박물관 컬렉션을 바탕으로 엄선된 원화 작품과 다양한 미디어 자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강렬한 색채, 역동적인 화면, 출렁이는 마음의 기운을 응축시킨 작품으로 당시 유럽의 화풍과 확연히 구분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 뉴욕의 거장들과 함께 20세기 중반 현대미술의 세계로 떠나는 뜻깊은 시간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작품이 소개된 작가 중에서 유일하게 눈에 익은 인물은 잭슨 플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이다. 그는 “삼류라고 인식되었던 미국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올리는 데 큰 공을 세운,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부터 “다양한 기법이 난무하던 20세기. 에너지와 감성이 넘치는 ‘액션 페인팅’으로 미술의 역사를 바꿔놓”은 화가로 기려진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불린다. 그는 거대한 화폭에 단순한 사각형의 색면을 칠한 판화로 유명한데,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작품에 사용된 색상으로 명명되었다. 한강 작가는 2013년에 펴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에 수록한 마크 로스코에 관한 시 두 편에서 ‘영혼의 피 냄새’를 언급하기도 했다.















<뉴욕의 거장들>의 입장료는 성인 13,000원인데, 우리 내외는 경로우대 30% 할인을 받아 9,100원을 내고 입장했다. 유료 전시회에 들를 때마다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할 만큼 관람객이 넘치는 걸 보면서 세상은 이미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옛날 이야기지만, 1970년대에 미술 전시회는 늘 무료로 열렸고, 그런 화랑을 돈을 내고 돌아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적잖은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전시회를 즐기고 있다. 개중에는 미술 관련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일반 시민이다. 비록 그림에 관한 전문적 식견이 없다 하더라도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직관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는 얘기다.
어쨌건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그만큼 넉넉하고, 사람들이 일정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화를 누리는 생활을 위해서는 언제든 지갑을 열 수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관람객을 뒤로 하고 우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떠났다.
2025. 11.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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