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 국회 의결로 ‘노동절’ 이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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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고, 이에 따라 법률 명칭도 바꾸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재석 의원 254명 가운데 찬성 209명, 반대 29명, 기권 16명으로 의결했다. 이로써 “이승만·박정희가 지운 ‘5월1일 노동절’…62년 만에 ‘글로벌 표준’ 이름 찾았다”(관련 <한겨레> 기사 : 이승만·박정희가 지운 ‘5월1일 노동절’…62년 만에 ‘글로벌 표준’ 이름 찾았다]
‘메이데이(May Day)’의 역사는 100년을 넘긴 지 오래다. 1890년 5월 1일, 많은 국가의 노동자들이 저마다 자기 나라의 형편에 맞는 형식과 방법으로 메이데이 행사를 벌인 지 올해로 135년째인 것이다. 한반도에서 노동절 행사가 벌어진 역사도 102년을 지났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연맹회가 동맹파업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획했으나 일제가 이를 불허하자 대체한 기념 강연회가 저녁 8시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 노동자 2천여 명 참가한 가운데 열린 것이었다. [관련 글 : 첫 메이데이(May Da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노동절’의 이름을 지운 이로 이승만과 박정희를 든 까닭은 자명하다.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은 메이데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메이데이가 러시아인들이 세계 혁명을 하기 위해 이어 온 것으로 생각한 그는 우리가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 또 이날이 공산당 선전을 위한 날이니만큼 우리는 독자적인 날을 정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약칭 대한노총)’은 1958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함으로써 대한민국에서는 세계의 여느 나라와는 다른 날짜를 메이데이로 기리는 나라가 되었다. 그나마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노동절에서 ‘노동’을 지운 것은 박정희 정부였다. 1963년 4월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라는 내용의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노동’은 ‘근로’로 바뀌었다. “힘써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의미의 ‘근로’가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신을 씀, 또는 그런 행위”를 뜻하는 ‘노동’을 대체한 것이다.
‘근로’는 정부 수립 이래, 정부와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순화(?)된 어휘로 그 안에 이미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객관적 의미로서의 ‘일함’이 아닌, ‘힘써 부지런히 일함’은 가장 완전한 형태의 노동이고 그러한 노동력을 원하는 자본의 요구가 충실히 반영된 의미인 것이다.
그 결과 이 땅에는 법률적으로도 두 개념이 혼용된 결과, 근로기준법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노동관계법이 존재한다. 노동조합법이나 노동쟁의조정법 따위를 ‘근로조합’이나, ‘근로쟁의’로는 바꾸어 쓸 수 없다. 그런데도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뜻을 지닌 ‘노동자’ 대신 ‘근로자’나 ‘산업 일꾼’이 선택되어 쓰이다 보니, 만국 공통의 노동절(메이데이)도 이 땅에서는 ‘근로자의 날’이 되기에 이르렀다. [관련 글 : 노동 2제(題) - 불온한 시대, 불온한 언어]

오랜 세월 근로가 노동을 대체해 쓰이면서 어느 결엔가 우리의 의식은 ‘노동’이 들어간 낱말을 꺼리기에 이르렀다. 노동도, 노동자도, 노동조합도, 노동쟁의도 모두 불온한 언어로 느껴지는 이 오랜 ‘낱말 이데올로기’의 도움을 받으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노무자’, ‘근로자’ 등 여러 용어가 혼용되었습니다. 특히 중일전쟁 이후에는 일제가 강제 동원을 미화하기 위해 ‘근로’라는 용어를 정책적으로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이라는 낱말이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식민 통치 초반에는 ‘노동자’ 외에 ‘노무자’, ‘종업자’ 등 다양한 용어가 혼용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1937) 이후에 일제는 전시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황국(皇國) 근로관’을 내세웠고, 이때부터 ‘근로’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었다.
이후 ‘근로’라는 낱말은 ‘근로정신대’나 ‘근로보국대’와 같이 강제 노역을 미화하고 노동의 주체성을 폄훼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적 공장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자기 권리를 깨닫고 단체를 만들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했다. 노동 운동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일본인과의 임금 차별에 맞서 192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이는 민족 해방 투쟁의 일부이기도 했다. 결국 식민 통치 정책에 따라 ‘근로’라는 용어가 정책적으로 확산하면서 그 의미와 쓰임새가 변질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해방 후에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못했다. 박정희 정부는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대체한 뒤에 아예 5월 1일로 돌아갈 수 없게 비게 된 그날을 ‘법의 날’로 지정(1964)한 것이다. 미소 냉전 시기 공산 진영이 중요시하는 ‘5월1일 노동절’을 자유 진영의 ‘5월1일 법의 날’로 바꾸려는 미국의 요구가 작동한 것이라고 한다.
‘근로자의 날’은 법률로 지정되어 국가기념일이 되긴 했지만, ‘메이데이’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날이 되었다. 근로자의 날에는 정부에서 ‘산업 전사’와 ‘모범 사용자’에게 공로패를 주는 등 생색을 냈지만, ‘8시간 노동제 관철’ 따위의 의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한 박정희 정권 내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노동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5월 1일’이 복권된 것은 ‘법의 날’로 지정(1964)한 지 30년 뒤인 김영삼 정부 때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계는 세계 각국의 메이데이 기념에 맞춰 ‘5월 1일 노동절’ 복권을 요구했다. ‘법의 날’을 지키려는 법무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1994년 국회는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변경했다.
그러나 ‘노동절’로 명칭을 변경해 달라는 노동계와 민주당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에만 ‘절‘을 붙인다는 이유였다. ‘법의 날’은 한동안 ‘근로자의 날’과 같이 있다가 2003년에 4월 25일(1895년 재판소구성법 시행일)로 바뀌었다.

다시 30년 뒤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올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개칭해 노동 존중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라고 했고, 22대 국회에는 ‘근로자의 날’ 명칭을 ‘노동절’ 또는 ‘노동자의 날’로 바꾸는 법안이 7건 발의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근로라는 용어는 자발성과 주체성이 강조되는 현대 노동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제노동기구나 OECD 회원국 대부분이 노동절(Labor Day) 또는 이에 상응하는 명칭으로 기념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만 ‘근로자의 날’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은 국제적 보편성과 노동인권 인식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 김위상 의원(국민의힘·한국노총 출신)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국가 통제적 의미가 담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몸을 움직여 일함’으로 정의되는 노동이라는 가치 중립적 의미를 담은 용어로 대체하고자 한다”
-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
지난 9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노동절 명칭 변경에 대한 여야의 의견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절로 할 것이냐 노동자의 날로 할 것이냐’, ‘근로기준법,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근로자의 날 등 다른 명칭은 어떻게 할 것이냐’, ‘내년부터 교사·공무원도 노동절 유급휴일을 적용해야 한다’ 등의 논의가 오갔을 뿐이었다.
여야는 일단 노동과 근로가 혼재돼 사용되는 현실을 반영해 ‘기념일에 국한’한 명칭 변경에만 합의했다. 국회에는 노동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공무원·교사 등도 공식적으로 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니 후속 법안의 개정이 빨리 이루어져 명실상부한 ‘메이데이’의 복권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마지 않는다.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이 법안에 반대한 의원은 모두 29명, 국민의힘 28명, 개혁신당 1명이다. 강대식·고동진·곽규택· 김도읍·김민·김선교·김승수·김희정·나경원·박덕흠·박성민·박성훈·박수영·박정하·박정훈·안상훈·엄태영·이인선·이종욱·이주영(개혁신당)·이철규·이헌승·임종득·정성국·조은희·최수진·최은석·한기호·한지아 의원이 그들이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반대 사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근로’가 ‘노동’으로 바뀌는 게 고까운가, 그 고까움에는 어떤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일까. ‘야당’이라서 무조건 반대한 것일까. 언어에 포함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대일까, 아니면 막연한 정서적 거부반응일까. 어쨌든 이 법안의 반대자들에게도 요즘 유행하는 ‘박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2025. 11.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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