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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5월, 보리와 보리밭

by 낮달2018 20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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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보리밭 이야기

▲ 주변에서 보리밭은 드물다. 참외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의 바다에 떠 있는 고향 마을 앞의 보리밭.

요즘은 보리밭 보기도 쉽지 않다. 어저께 처가에 들렀다가 장모님의 비닐하우스 앞에서 정말 드물게 보리밭을 만났다. 주변은 참외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 천진데 웬일로 보리를 심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일찌감치 팬 보리는 시방 씩씩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늘 그렇듯 그 결과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짙푸르게 불타고 있는 보리밭을 바라보는 마음은 좀 각별하다. 짙은 초록빛은 인간의 마음에 희망과 너그러움을 환기해 주는 듯하다.

 

들에는 ‘보리밭’ 대신 참외 ‘비닐하우스’

 

보리밭을 마주하며 느끼는 기쁨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무덤 주위에 노란 해바라기를 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시 ‘해바라기의 비명’)고 노래한 함형수 시인은 그걸 제대로 알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관련 글 : 해바라기의 비명]

 

농가에서 보리농사를 작파하게 된 시기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고향에서 보리밭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참외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추수가 끝난 들에다 농민들은 보리를 파종하는 대신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겨우내 참외 모종을 키워냈다.

 

무엇보다도 참외 농사는 돈이 귀한 시골 동네와 사람들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 ‘돈 안 되는 보리’ 대신 겨우내 힘들여 지은 참외는 농가에 쏠쏠한 수입을 보장해 준 환금작물이기 때문이다. 참외 농사를 끝내면 사람들은 밭을 갈아엎고 물을 대어 모를 내면서 벼농사를 시작한다. 어느덧 벼에서 보리로, 다시 벼로 이어지던 농사패턴이 벼-참외-벼로 대체된 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 우리 동네 아파트 주변 빌딩 옆 공터의 보리밭. 철판 울타리에 '사교댄스'라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 .

보리, 보리밭의 추억들

▲ 보리깜부기. '흑맥(黑麥)'이라고도 한다 .

어린 시절, 우리는 보리밭으로 이어진 길을 걸으며 보리 이삭을 가지고 갖가지 장난을 치고 놀았다. 막 익기 시작한 누렇고 성긴 수염이 달린 이삭을 따서 동무의 윗도리에 거꾸로 집어넣는다. 맨살에 닿는 거친 이삭의 결도 괴롭거니와 몸을 움직일수록 수염 때문에 자꾸 위쪽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도 만만찮은 괴로움이었다.

 

▲ 이문희 (1933~1990) 장편소설 <흑맥>

보리가 익을 무렵에는 깜부깃병에 걸려서 까맣게 된 이삭 ‘깜부기’가 많았다. 이놈을 따서 얼굴에 문지르면 새까맣게 검정이 묻어났다. 깜부기를 얼굴에 칠해 새까매진 얼굴로 마주 보며 웃던 옛 동무들의 기억도 새롭다. 사람들은 어릴 적에 깜부기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는데 글쎄, 내게는 그런 기억은 없다.

 

깜부기는 벼나 보리 같은 곡식에 번지는 바이러스성 병충해다. 성한 이삭 속에서 까맣게 타 버린 깜부기는 무리 가운데 ‘모자라거나 시원찮은 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깜부기 같은 놈’이라는 비유가 그것이다.

 

작가 이문희(1933∼1990)의 장편소설 <흑맥(黑麥)>(1964)은 서울역 주변의 뒷골목을 무대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흑맥’은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어저께는 출근하다가 아파트 앞 빌딩 옆 공터에서 아주 조그만 보리밭을 발견했다. 감자와 대파를 심은 밭 한쪽, 서너 평쯤의 공간에 보리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었다. 도시 외곽이긴 하지만 도심에서 만난 보리밭은 반갑고 설레었다. 밭 저편에 세워 놓은 철판 울타리의 붉은 녹을 배경으로 서 있는 보리밭은 마치 삭막한 도심에 내려온 무슨 축복 같기도 했다.

 

깜부기와 이문희 장편 <흑맥>

 

한흑구(韓黑鷗, 1909∼1979)의 수필 '보리'는 보리가 가진 ‘덕성’을 예찬한 작품이다. 본명 대신 ‘검은 갈매기[흑구]’를 필명으로 쓴 이 작가는 “자연물을 소재로 서정적인 문장과 산문시적 구성으로 아름다움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리의 순박함과 강인함을 통하여 인생의 의미를 빗대고 있는 이 작품은 제재를 2인칭 청자로 설정하고 있다. 화자가 인격화된 보리에게 담담한 어조로 건네는 독백체 대화는 일상에 묻힌 제재의 덕성을 자연스럽게 환기해 준다. 이 작품에서 ‘보리’는 이성부의 ‘벼’, 김수영의 ‘풀’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상징이다. 무엇보다도 이 글이 노래하는 ‘농부의 삶과 노동의 가치’는 그것만으로 벅차고 아름답다.


보리

한흑구

▲ 한창 익어가고 있는 보리. 2007년 6월, 안동 영남산.

1

보리.

너는 차가운 땅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 왔다.

이미 한 해도 저물어,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날, 농부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속에 깊이 묻어 놓았었다.

 

차가움에 응결된 흙덩이들을, 호미와 고무래로 낱낱이 부숴 가며, 농부는 너를 추위에 얼지 않도록 주의해서 굳고 차가운 땅속에 깊이 심어 놓았었다.

“씨도 제 키의 열 길이 넘도록 심어지면, 움이 나오기 힘이 든다.”

 

옛 늙은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농부는 너를 정성껏 땅속에 묻어 놓고, 이에 늦은 가을의 짧은 해도 서산을 넘은 지 오래고, 날개를 자주 저어 까마귀들이 깃을 찾아간 지도 오랜, 어두운 들길을 걸어서, 농부는 희망의 봄을 머릿속에 간직하며, 굳어진 허리도 잊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2

온갖 벌레들도, 부지런한 꿀벌들과 개미들도, 다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몇 마리의 산새들만이 나지막하게 울고 있던 무덤가에는, 온 여름 동안 키만 자랐던 억새 풀 더미가 갈대꽃 같은 솜꽃만을 싸늘한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물도 흐르지 않고, 다 말라 버린 갯강변 밭둑 위에는 앙상한 가시덤불 밑에 늦게 핀 들국화들이 찬 서리를 맞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고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大氣) 속에서도 솔잎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이제 모든 화초는 지심(地心) 속에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그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 왔다.

날이 갈수록 해는 빛을 읽고, 따스함을 잃었어도, 너는 꿈쩍도 아니하고, 그 푸른 얼굴을 잃지 않고 자라 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엎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

 

지금, 어둡고 찬 눈 밑에서도, 너, 보리는 장미꽃 향내를 풍겨 오는 그윽한 유월의 훈풍(薰風)과, 노고지리 우짖는 새파란 하늘과, 산 밑을 훤히 비추어 주는 태양을 꿈꾸면서, 오로지 기다림과 희망 속에서 아무 말이 없이 참고 견디어 왔으며, 오월의 맑은 하늘 아래서 아직도 쌀쌀한 바람에 자라고 있었다.

 

3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오랜 것은 아니었다.

어느덧 남향 언덕 위에 누렇던 잔디가 파아란 속잎을 날리고, 들판마다 민들레가 웃음을 웃을 때면, 너, 보리는 논과 밭과 산등성이에까지, 이미 푸른 바다의 물결로써 온 누리를 뒤덮는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아지랑이를 몰고 가는 봄바람과 함께 온 누리는 푸른 봄의 물결을 이고,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새말간 봄의 춤이 흘러넘친다.

이윽고 봄은 너의 얼굴에서, 또한 너의 춤 속에서 노래하고 또한 자라난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너의 푸른 얼굴들이 새날과 함께 빛날 때에는, 노고지리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너의 머리 위에서 봄의 노래를 자지러지게 불러 대고, 또한 너의 깊고 아늑한 품속에 깃을 들이고, 사랑의 보금자리를 틀어 놓는다.

 

4

어느덧 갯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이 그의 그늘을 시내 속에 깊게 드리우고, 나비들과 꿀벌들이 들과 산 위에 넘나들고, 뜰 안에 장미들이 그 무르익은 향기를 솜같이 부드러운 바람에 풍겨 보낼 때면, 너, 보리는 고요히 머리를 숙이기 시작한다.

 

온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장미의 그윽한 향기를 온몸에 지니면서, 너, 보리는 이제 모든 고초(苦楚)와 비명(悲鳴)을 다 마친 듯이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성자(聖者)인 양 기도를 드린다.

 

5

이마 위에는 땀방울을 흘리면서, 농부는 기쁜 얼굴로 너를 한 아름 덥석 안아서, 낫으로 스스릉스르릉 너를 거둔다.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6

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에서 묵은 이미지 몇 장을 찾았다. 2006년 6월에 찍은 학교 뒷산에서 만난 보리밭이다. 앞으로 보름 남짓이면 올 보리도 저렇게 넉넉한 누런빛으로 익어갈까. 비록 소량의 수확에 그칠지라도 언 땅에서 지난겨울을 이겨낸 ‘보리의 가을’은 충분히 넉넉하리라.

▲ 맨 윗 사진의 푸른 보리밭이 약 한 달 후(6.9.)에 이렇게 바뀌었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 풍경은 묘한 포만감으로 다가온다.

2012. 5.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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