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의중 살피는 ‘처세’만 남은 ‘민주공화국’의 초상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처세(處世)’를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감. 또는 그런 일. ≒ 처세상(處世上)”으로 풀이한다. 처세에서 파생한 말로 ‘처세관(處世觀)’, ‘처세도(處世道)’, ‘처세술(處世術)’, ‘처세훈(處世訓)’ 등도 별도 표제어로 실려 있다.
‘처세’의 ‘긍정·부정’적 의미
낱말 ‘처세’의 스펙트럼은 꽤 넓어서 때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고, 부정적인 뜻으로도 쓰인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유비(劉備)를 일러 ‘능굴능신(能屈能伸)’의 귀재로 이를 때 이는,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안다”는 뜻으로 읽힌다. ‘굽힘’을 무조건 ‘비굴’의 징표로 이해하는 것은 경직된 자세라는 뜻도 포함된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처세’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그것은 ‘야비·비열·협잡·아첨·비굴’ 등의 온갖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굽히고 편다고는 하지만, 그 경계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그걸 판별하는 기준은 그 처세가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권력과 힘을 지닌 강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거기 부화뇌동하고자 하는가에 달렸다고 볼 수도 있겠다.
뜬금없이 ‘처세’를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까닭은 지난 3월 15일 창원시 3·15 아트센터에서 열린 제64주년 3·15 의거 기념식에 참석한 한 총리가 자신의 참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는 한 지역 기자의 기사 덕분이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연수 기자가 쓴 ‘한덕수 국무총리의 진면목’이 예의 기사다. [관련 기사 : 한덕수 국무총리의 진면목]
3·15의거 기념식의 한덕수 총리, ‘지역 기자의 시선’
3·15 의거란 바로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거하여 당일 마산 시민이 일으킨 시위 사건이다. 다음은 <민주화 운동 사전>에 실린 ‘3·15의거’ 항목에 대한 해설이다.
“1960년 3.15 마산의거는 3.15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선거 당일인 3월 15일 마산 시민이 일으킨 시위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집단 발포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유혈 민주화운동이다. 이 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의 시신이 약 한 달 후 4월 11일에 발견됨으로써 4.11 제2차 마산의거로 발전하였고 4월 19일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3·15부정선거가 이승만의 독재와 장기 집권욕에 따른 패착이라는 건 초등학생도 알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기념식에서 한 총리가 낭독한 기념사 전문에는 기묘하게도 ‘독재’라는 ‘핵심 표현’이 빠졌다고 했다. 기자는 올해 대구 2·28 민주 의거, 대전 3·8 의거 기념식 축사에서도 ‘독재’라는 표현을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영문인고? 기자는 지난해만 해도 한 총리의 기념사에선 ‘독재정권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경하게 진압하고 결국에는 총격까지 가했습니다’라고 썼다고 했다. ‘독재’라는 표현은 문재인 정권 때인 2022년에는 6번, 2021년에는 5번 언급된 바 있다. 굳이 안 써도 되는 표현을 쓴 게 아니라, 3·15부정선거가 바로 독재정권이 집권 연장을 꾀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선거 범죄’였기 때문이었다.
부정선거에 분노한 민주 시민들의 궐기로 시작된 3.15의거 기념식에서 그의 기념사는 뜬금없이 “대한민국을 원전 선도국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어 총리는 창원에 “‘방위·원자력 융합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글로벌 SMR 클러스터’를 지원하는 등 원전 선도국의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불을 뿜었단다.
3·15의거를 기리는 기념사에서 뜬금없이 ‘원전’ 이야기가 등장했다고 했지만, 기실 그의 연설은 용의주도한 계획의 일단이었다. 지난 2월, 창원을 찾은 대통령이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이라는 주제로 민생토론회를 열었었다. 이날 대통령은 창원을 소형원전 생산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는 거였다.
기념사에 ‘독재’ 대신 ‘원전’이 들어간 까닭은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서 “원자력의 미래를 내다봤던 이승만 대통령께서 1956년 한미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1959년에는 원자력원과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해서 원전의 길을 열었다”며 “실로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기린 바 있었다. 그러니까, 총리의 기념사에 ‘독재’가 등장하지 않고, 뜬금 있는(!) 원전 이야기가 등장한 까닭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거다.
총리는 대통령의 의중을 잘 살피고 있다가 창원에 와서 한 번 더 그 구상을 강조한 것이다. 원전을 6번이나 언급한 총리는 그 원전에 대한 혜안으로 1950년대에 이미 원자력 관련 협정을 체결한 초대 대통령의 명성에 누가 될 만한 ‘독재’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이다.
올해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한 보수 영화감독이 만든 그의 전기 영화 <건국전쟁>이 올해 들면서 백만 관객을 넘겼다. 여당과 보수 진영 인사들, 보수 언론들이 앞다투어 영화 관람을 독려하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을 기리며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웅변한 때다. 여당 출신 서울시장 오세훈은 이승만 기념관 용지로 서울 종로구 ‘열린 송현’ 녹지광장을 거론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보수 언론들은 새삼스레 토지개혁과 대미 외교력 등을 들며 그의 업적이 과소 평가되고 있다고 강변한다. 영화의 부제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그런데 영화는 그리 실팍(?)하지 못했던 듯하다. 한 고교 역사 교사의 영화 ‘관람기’는 ‘실망’과 ‘충격’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풀었다.[관련 기사 : 학생들과 함께 본 ‘건국전쟁’, 충격적인 한 줄 평]
이승만의 공적으로 부르대는 ‘농지개혁법’(1949)의 제정을 두고 ‘관람기’는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의 역할을 환기한다. 조봉암은 4·19혁명을 한 해 앞둔 1959년 이승만에 의해 ‘사법 살인’을 당한 바로 그 사람이다.[관련 글 : 최초의 사법 살인, 조봉암 서거 60주기]
‘관람기’는 6.25전쟁 발발 직후 한강철교 폭파를 최고 지도자로서 당연한 결정이라고 두둔한 것에 대해서도 귀를 의심할 만큼 황당한 내용이라 지적했다. 영화의 압권은 “전후 1950년대 높은 교육열을 이승만의 업적으로 미화하고, 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의식이 4·19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라고 소개한다. “이승만의 교육 정책이 이승만을 권좌에서 내쫓으면서 결실”을 이루었다는 기가 막힌 논리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공은 ‘자신 덕’, 과는 ‘남 탓’이라는 거잖아요.”라고 정리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에둘러 왔지만, 한덕수 총리가 3·145의거 기념식에 와서 ‘독재’라는 낱말을 제외한 연설을 하고, 원전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이 밝혀진 셈이다. 기자는 한 총리가 대통령의 뜻을 잘 살펴서 “창원에 온 김에 다시 한번 그 구상을 강조”했다고 썼다. ‘독재’ 표현이 빠진 건 올해 대구 2·28 민주 의거, 대전 3·8 의거 기념식 축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단다.
기자는 “‘독재’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원전은 여섯 번 언급한 한 총리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윤석열 정부 5개 정부에 걸쳐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역임한 진기록을 보유한 원로”(나무위키)인 한 총리의 “남다른 처세술”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승만 재평가에 동참한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의 ‘혜안’을 칭송하며 그 기림에 열을 올린 사실을 흔히 ‘바지 총리’로도 불리는 한 총리는 흘려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독재정권이 집권 연장을 꾀하다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의거 기념사에서 ‘독재’를 지적하는 게 대통령의 칭송에 재를 뿌리는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권력 의중만 살피는 ‘처세’만 남은 ‘민주공화국’의 초상
결과적으로 보면 총리는 이승만을 재평가하고픈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느라, 3·15의거 기념식에서 ‘독재’를 의도적으로 빼는 걸 서슴지 않았다. ‘뜬금없이’가 아니고 ‘뜬금 있는’ ‘원전 선도국의 기반’을 현지에 마련하겠다는 사자후를 뿜은 것이다. 자신이 모시는 권력의 심기를 살피느라 그는 정작 기념식에 모인 시민들을 보지 않고, 현장에 없는 ‘청자’에게 기념사를 바친 것이다.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고, 그의 의중을 거듭 따르는 등 대통령 보좌 총리의 아름답고 지극한 열성은 청중석에 터져 나온 ‘독재’라는 말로 훼손되었다. 몇몇 참석자들이 행사 중 “이승만 독재자!”라고 외쳤는데, 이들이 손에 든 종이에는 ‘한 총리님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을 영웅이라고 하는데 기념사 전에 입장을 밝혀주십시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단다. 경호원이 이들을 제지하면서 소란이 일었지만, 총리는 흔들리지 않고 준비한 기념사를 읽어나갔다고 한다.
기자는 이런 상황을 상세하게 전하면서 총리의 “단단한 멘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보좌하는 최고 권력의 의중을 살피기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의거의 역사성과 그 의미를 새롭게 새기는 게 온당한 일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한 거였다.
국무위원 청문회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역사와 민족 정체성, 또는 통일 정책, 외교에 관한 소신을 묻는 데 후보자가 권력의 의중을 살펴 ‘적절하지 않다’라는 뻔한 소리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일이다. 그리고 그게 비난받을 일 없는 ‘처세의 지혜’로 여겨지는 21세기 한국의 풍경이 우리의 부끄러운 초상이다. ‘선진국’ 반열에 든 걸 으스대는 한국의 ‘후진성’이다.
총선이 끝나고 4·19혁명 64주년을 맞는다. 기념식에 참석하는 이가 대통령일지, 국무총리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도 기념사에선 ‘독재’가 빠지게 될까.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민중의 함성에도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은 기려지고, 이승만 재평가는 이어질까. 현 정부가 민낯으로 보여주는 ‘몰역사’의 풍경을 우울하게 바라보는 아침이다.
2024. 3.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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