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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올해의 사자성어,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

by 낮달2018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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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지향을 잃고 각자도생 해야만 했던 시간

<교수신문>이 해마다 설문으로 선정하는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발표했다. 견리망의는 전국의 대학교수 1,315명이 설문에 응해 응답자 중 30.1%(396표)를 얻었다. [관련 기사 : 의로움을 잊고 오로지 이익만 챙긴다]

 

견리망의라면 단박에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견리사의(見利思義)’다. 견리사의는 『논어』의 자로(子路)와 공자의 대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지만, 우리에겐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危授命)’으로 더 친숙한 사자성어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상반되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

 

두 성어는 ‘사(思)’와 ‘망(忘)’, 단지 글자 한 자 차이지만, 그 뜻은 완전히 상반된다. 견리사의가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지만, 견리망의는 그 의로움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견리망의가 겨냥한 것은 우리 사회지만, 구체적으로 겨누는 것은 ‘정치인’이다.

 

교수들은 “대통령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공직자의 개인 투자와 자녀 학교 폭력에 대한 대응, 개인의 이익을 핑계로 가족과 친구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라고 꼬집고 있다. 공익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는 세태를 ‘망의’로 압축한 셈이다.

 

교수들은 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은 더욱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이익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인데, 그럴수록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시민들의 삶이 고단할수록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 견지해야 할 자세를 이른 것이다.

 

견리망의를 선택한 교수들은 “이익 추구로 가치 상실의 시대가 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사회의 나아갈 방향이 불확실해졌다”라고 논평했다. 국정 비전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개선의 가능성마저 막힌 상황이니 더는 말할 게 없다.

 

공익보다 사익에 집착하는 세태 

 

그러나 견리망의의 어원과 유래는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자가 어느 날 까치 한 마리를 발견하고 새총으로 새를 잡으려고 한다. 그런데 장자가 목격한 것은, 까치가 나무 그늘에서 사마귀를 잡으려 하다가 자신을 잊고 있고, 사마귀는 그 앞의 매미 한 마리를 노리느라 자신을 잊고 있는 것이었다. 까치와 사마귀, 매미는 물론 장자 자신마저도 새를 얻으려는, 눈앞의 이익에 정신이 팔려 나중에 산지기의 나무람을 들었다는 얘기다.

 

장주(莊周)가 조릉(雕陵)의 울타리 안에서 산책하며 노닐 적에 남방에서 온 기이한 까치 한 마리를 보았는데, 날개 너비가 7척이고 눈의 크기는 지름이 1촌이었는데 장주의 이마를 스쳐 지나가서는 밤나무 숲에 머물렀다. 장주가 말했다.

 

“이 새는 어떤 새인가. 날개는 큰데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눈은 큰데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하고는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살금살금 걸어가서 새총을 잡고 당겨 새를 잡으려 머물러 있다가, 매미 한 마리가 막 시원한 나무 그늘을 얻어 자기 몸을 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매미 뒤에는 사마귀가 도끼 모양의 발을 들어 올려, 매미를 잡는다는 이득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고 있었다. 이상한 까치는 바로 그 뒤에서 사마귀를 잡는다는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고 있었다. 장주는 깜짝 놀라

 

“아! 물(物)이란 본시 이처럼 서로 해를 끼치는 관계로구나. 이욕(利欲)에 빠진 두 가지 다른 종류는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구나.”

 

하고는 새총을 버리고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데 산지기가 쫓아와 장주를 호되게 꾸짖었다. 장주가 돌아와 사흘 동안 기분 나빠했다. 제자 인저(藺且)가 찾아가 물었다.

 

“선생께서는 요즈음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기분 나빠하십니까?”

 

장주가 말했다.

 

“나는 바깥의 형체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을 잊어버리고 탁한 물만 보다가 맑은 연못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우리 선생님에게서 ‘세속에 들어가서는 세속을 따라야 한다.’라고 들었는데, 지금 나는 ‘세속의 금법(禁法)을 어기고’ 조릉 울타리 안에 들어가 노닐다가 ‘막 그늘을 차지하고 자신을 잊어버린 매미처럼’ 자신을 잊어버렸는데 마침 괴이한 까치가 내 이마를 스치고 가기에 어느새 밤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노닐다가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고 있었는데, 산지기가 나를 밤을 훔친 범죄자로 처벌해야 한다고 꾸짖었기 때문에 내가 기분 나빠 하는 것이다.”

 

     - <장자(莊子)> 산목(山木) 편 8장, <나무위키>에서 재인용

그밖에도 ‘적반하장’, ‘남우충수 등 부정적 세태 다룬 말들

 

견리망의 외에 표를 받은 사자성어 중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라는 뜻이다. 이는 “국제외교 무대에서 비속어와 막말해 놓고 기자 탓과 언론 탓, 무능한 국정운영의 책임은 언제나 전 정부 탓, 언론자유는 탄압하면서 기회만 되면 자유를 외쳐대는 자기기만을 반성해야 한다”라고 지적과 함께 추천되었다.

 

그다음 ‘남우충수(濫竽充數)’는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실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며 “속임수는 결국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할 뿐”이라고 의미에서 표를 얻었다고 한다.

 

나머지 사자성어 중 ‘도탄지고(塗炭之苦)’는 ‘진흙 수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코로나19와 전세 사기 등으로 인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생고는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괴로워져만 가는 국민의 생활고를 나타내기 적합하다”라는 의미에서 추천되었다.

 

마지막 ‘제설분분(諸說紛紛)’은 ‘여러 가지 의견이 뒤섞여 혼란함’이라는 뜻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서 자기의 의견만 주장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의견이 정제되지 않고 뒤섞여 다툼으로써 사회가 혼란스럽고 어지럽다”라는 의미에서 추천되었다고 한다.

 

한 해 동안의 나라와 국민의 삶과 형편을 사자성어로 압축하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정치와 어려워진 경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삶을 단지 넉 자의 성어로 줄이는 게 한갓진일인 듯해 오히려 민망하고 외람된다.

 

정치든 경제든, 새해에는 사람들 모두가 희망 한 자락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 12.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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